사순절 특새/2022 아브라함 묵상

2022 사순절 아브라함 묵상(23) -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크지만.

다솔다윤아빠 2024. 7. 31. 00:32

@ 2022 사순절 특새(23-220328)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크지만(21:8~13).

 

* 어떤 "지하도로 입구에 대형 트럭이 꽉 끼어서, 전진은 물론 후진도 할 수 없어서, 경찰까지" 출동했다.

- 곧이어 "기술자가 와서도 방법을 찾지 못하는데, 한 어린아이가 트럭 기사에게 아주 기막힌 지혜를" 알려준다.

- 아이는 "'타이어 바람을 조금만 빼세요!' 말했고, 정말 타이어 공기를 조금 빼니, 트럭이 움직일 수" 있었다.

-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갈 때, 지하도에 꽉 낀 트럭처럼,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순간이 참으로" 많다.

 

* 문제는 "자기 위주와 방식대로 갈등을 해결하려 해서, 서로 다름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 그러나 "우리가 갈등 상황에서 조금만 마음의 바람을 빼면,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하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 많은 분이 "갈등을 관계가 깨지는 시작으로만 생각하여, 갈등을 나쁘고 피해야 할 것으로만" 본다.

- 그러나 "많은 경우, 서로 조금만 바람을 빼면, 갈등은 성장과 배움, 하나 됨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 구체적으로 "갈등을 피할 수 없지만, 갈등을 향한 관점을 바로 정립하면, 갈등도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선물, 이삭이 자라서 젖을 떼서 큰 잔치가 벌어졌다!" 말씀한다.

- 유대 사회에서 "아이가 젖을 떼는 시기는 보통 3~4세 정도이고, 젖을 뗌은 한 단계 성장했음을" 뜻한다.

- 실례로 "사무엘이 실로에 올라간 시기도, 젖을 뗀 후라고 말하며, 젖을 뗀 시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 이삭이 "젖을 뗌은 참으로 귀한 일인데, 불행히도, 이복형이었던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 이에 "사라가 분노하며,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결과가 되었고,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 그래서 "이삭이 젖을 떼서 연 잔치가, 갑자기 큰 갈등의 장이 되었고, 가족 일부가 쫓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 생각할수록 "사라도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고, 하갈과 이스마엘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 나아가서 "아브라함은 이로 인해 큰 근심에 빠졌고, 마침내, 다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 물론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그러나 "갈등을 통해 서로가 큰 상처를 받고, 훗날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지혜로운 "영혼은 환난과 고난, 갈등을 통과하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성장해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간다.

- 이처럼 "갈등으로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갈등을 통해 얻고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사람은 "누구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갈등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사순절 "23일째, 사순절은 갈등을 이겨야 할 절기인데, 삶에서 당하는 갈등을 어떻게 이겨나갈지!" 살펴보자!

 

1. 갈등이 있지만, 극단적으로 가지 말고, 마음을 넓혀야 한다.

 

* 본문 9절은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말씀한다.

- 여기서 "놀리는지라, 과거 성경은 희롱으로 표현하는데, 원어 차하크는 '장난친다. 조롱하다.'라는 뜻"이다.

- 학자들은 "당시 이스마엘이 상속권을 빼앗겨서, 의도적으로 이삭을 조롱하고 멸시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당시 "이스마엘의 나이는 17~18세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근거는 이스마엘은 14세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 성경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어떻게 놀렸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지만, 그 모습이 사라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이로 인해, 사라는 주저하지 않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 과거에도 "사라가 임신한 하갈을 쫓아냈었는데, 과연 이 일이 이스마엘을 쫓아낼 만큼 정말 큰일"이었을까?

- 물론 "신학적인 해석으로, 약속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육체의 자녀를 쫓아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어린 동생을 놀려서, 어머니와 쫓겨나는 이스마엘이, 과연 훗날 이삭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 실제로 "만일 사라가 조금만 마음을 넓게 가졌다면, 이 갈등은 크게 확장되지 않았겠다는 아쉬움이" 크다.

- 문제는 "오늘 우리도 갈등을 해결하려 할 때, 마음을 넓히기보다 사라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더" 많다.

- 조금만 "마음을 넓히면, 조금만 상대방 처지를 생각하면, 갈등을 충분히 줄이고,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러나 "마음이 좁아지면, 서로 다치고, 시간이 갈수록 상처가 더 깊어지고, 마침내 회복 불능이 될 수도" 있다.

 

*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마음을 넓게 하셔서, 우리를 용서하셨고,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았다.

- 만일 "주님께서 당신의 공의대로 심판하셨다면, 어느 누가 구원을 받고,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 주께서 "마음을 넓히셨기에 제자들을 용납하셨지, 마음이 좁아지셨다면 어떻게 제자를 키울 수" 있었겠는가?

- 문제는 "그렇게 주님의 넓은 마음으로 용서받아서 갈등이 사라졌지만, 우리는 마음이 계속 좁아지고" 있다.

 

* 갈등은 "항상 내가 아니라 저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 내 방식만이 옳다는 편협함이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 더 큰 문제는 "기독교인은 갈등에 직면하면, 세상 불신자보다 좁아져서, 관계가 끝날 때가 너무도" 많다.

- 실제로 "불신자는 서로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갈등을 해소하지만, 우리는 아예 서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 그리고 "훗날, 후회하고 아파하지만, 안타깝게도, 때늦은 후회, 때늦은 아픔이 될 때가 더" 많다.

- 사람은 "누구나 갈등은 물론,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갈등을 지혜롭게 이겨나가야!" 한다.

 

* 이를 위해 "먼저 우리가 갈등에 직면하면, 내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정말 잘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 옛말에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것처럼, 갈등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내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두 번째로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그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나는 "상대방의 문제가 크게 보이지만, 상대방 관점에서 생각하면, 내가 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끝으로 "갈등을 극복하려면, 내치고 극단적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 마음을 품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

- 우리는 "갈등을 해소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끝났다. 불가능하다!' 단정 짓고 피할 때가 더" 많다.

 

* 힘들어도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품고, 상대방에게 다가갈 때, 갈등은 또 다른 은혜를 줄 수도" 있다.

- 실제로 "내가 갈등에 빠지기보다, 지혜롭게 갈등을 극복하려 한다면, 내 삶과 가정, 교회가 달라질 것"이다.

- 그렇다면 "여러분은 갈등을 겪을 때, 어떤 마음, 어떤 노력으로 갈등을 대처하며" 살아왔는가?

- 오늘도 "우리가 갈등에 직면해도, 편협함보다 마음을 넓혀서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삼으며 승리하기" 원한다.

 

2. 갈등이 있지만,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

 

* 본문 11절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말씀한다.

-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고 생각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기" 원했다.

- 그러나 "아브라함은, 과거에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했을 때도, 사라의 말을 듣고 내쫓은 적이" 있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집에 돌아가 여주인에게 복종하라 말씀하셨고, 하갈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를 본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 것이며, 게다가 하갈을 볼 때, 얼마나" 미안했을까?

 

* 그런데 "이삭의 젖을 뗀 잔칫날에, 사라는 다시 하갈과 장성한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강권했다.

- 그래서 "아브라함은 근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본문 1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 일로 기도했다는 말이 없지만, 일부 학자는 아브라함이 이 일로 기도했다고" 말한다.

- 그렇게 "갈등을 근심보다 하나님께 맡겼기에, 하나님께서 갈등을 다시 평안으로 이끌어 주셨던 것"이다.

 

* 우리는 "경험상 갈등을 내가 해결하려 하면 실패했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길이 열리는 것을 많이" 체험했다.

- 여기서 "하나님께 갈등을 맡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먼저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오늘 우리는 갈등을 하나님께 맡기고 고하기보다, 내가 내 식대로 해결하려 함이 문제"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 갈등을 맡기면, 하나님의 시간, 사람, 방법대로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심을 믿어야!" 한다.

 

* 아하수에로 왕 때 "함무다다의 아들 하만과 모르드개 사이에, 인력으로 풀 수 없는 큰 갈등이" 발생했다.

- 하만이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 모르드개를 괘씸히 여겨서, 유대인 멸족을 계획하였던 것"이다.

- 모르드개도 "자신이 고개 한 번 숙이면 되는데, 자기 때문에 동족이 당할 위기를 듣고 얼마나" 후회했을까?

- 모르드개는 "이 갈등을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 조카인 에스더에게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 에스더는 "이 일을 듣고 처음에는 근심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금식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 그렇게 "근심보다 하나님께 맡긴 결과, 오히려 유대인이 원수를 멸할 수 있게 되고, 부림절이 제정"되었다.

 

* 우리가 "갈등에 직면하면, 근심과 걱정보다, 분노와 한탄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과 기도가" 필요하다.

- 이유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갈등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방법대로 풀어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우리는 갈등을 내 방식대로 풀려고 하기에, 갈등이 더 깊어지고, 회복 불능에 빠지는 것"이다.

 

* 과거 "LA에서 목회할 때, 한 권사님이 갈등과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이렇게" 표현하셨다.

- "목사님! 저는 갈등이 생기고, 어렵고 힘들면, 다투고 대적하기보다, 우리 하나님께 다 일러바쳐요!"

- 어쩌면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께 아뢴다는 고백"이었다.

- 나아가서 "갈등과 고난이 다가오면, 이를 하나님께 소상히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는 고백"이었다.

- 그렇게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일러바쳤기에, 맡겼기에, 그 권사님은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 어리석게도 "우리는 어려운 갈등이 생기면, 맡기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혼자 끙끙거리며" 살아간다.

- 마침내 "나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들도, 상황은 더 나빠지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 그러나 "어렵고 힘들수록,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일수록 더더욱 하나님께 맡기고 의뢰해야!" 한다.

- 오늘도 "세상에서 겪는 갈등이 있어도,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서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