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사순절 특새(25-220330) ▶ 아비멜렉을 압도하는 아브라함(창 21:22~31).
* 1895-10-08 "일본 낭인 60명이 조선의 궁궐을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화장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 당시 "고종은 이로 인해 너무 놀라고 두려웠고, 선교사 게일은 그런 고종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 "국왕이 처한 그 처참한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였다. 그는 흐느껴 울었다."
- 고종은 "이 사건 후, 독살을 두려워하여 앞에서 직접 연 캔 음식, 연유, 날달걀로 만들어진 요리만 먹었고, 특히 언더우드를 신뢰해서, 자신의 둘째 왕자 의화 군을 언더우드 집에 보내서 거하게" 했다.
* 초대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원인 중, 하나는 교회가 세상을 주도하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실제로 "20세기 초, 한국은 기독교를 애국애족의 종교라고 여겨서, 세상은 교회를 크게 칭찬하고 인정"했다.
- 그러나 "최근 교회와 기독교인의 위상과 신뢰를 잃었고, 무엇을 해도 욕먹고 비판받는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 물론 "세상의 악함도 더 커졌지만, 그만큼 세상을 향한 교회와 기독교인의 선한 영향력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러나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세상을 주도하고, 변화시키는 신실함이 있기를" 원하신다.
* 본문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세우며, 함께 동거하기로 약속하는 장면을" 말씀한다.
-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동생으로 속여서, 아비멜렉에게 큰 신뢰를" 잃었었다.
- 그런데 "이제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먼저 찾아와서 잘 지내보자고 맹세까지 요청하게" 되었다.
- 마침내 "본문 31절은,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말씀한다.
- 여기서 "브엘세바는 언약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의미로, 둘의 관계가 돈독해졌음을" 상징한다.
*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향한 아비멜렉의 불신(不信)이 어떻게 깊은 신뢰로 바뀌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 여기서 "아브라함이 보여준 모습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 우리가 "다시 거룩하여지고 세상과 달라지려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실천하려면, 나부터 이전과 달라져서 다시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불신자와 관계가 다시 원만해져야!" 한다.
* 분명한 것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는 절대로, 세상과 불신자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실제로 "세상이 교회를 통해 배우려는 마음으로 다가올 정도로, 교회와 우리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사순절은 "복음으로 세상을 압도하고 주도하는 영적인 힘을 다시 회복하는 거룩한 절기여야!" 한다.
- 사순절 "25일째,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압도했듯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주도할지!" 살펴보자!
세상을 주도하려면, 내 언행과 삶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나타나야 한다.
* 아브라함 "가정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 후,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왔다.
- 그리고 "본문 22절에서,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말씀하며 "아브라함과 화해와 동거를 요청하고" 있다.
- 특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행하는 모든 일, 아브라함의 일거수일투족에 하나님이 함께함을 고백하고" 있다.
* 비록 "처음에는 아내를 누이로 속여서 신뢰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상황이 달라졌던 것"이다.
- 아비멜렉이 보니, "아브라함이 계획하는 일,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 은혜가 있었던 것"이다.
- 아브라함이 "일부러 하나님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나타나고 보였던 것"이다.
- 그래서 "아비멜렉이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평화로운 관계를 맺자고, 동거하자고 요청했던 것"이다.
- 세상 말로 "얼마 전까지는 아비멜렉이 갑이었지만, 이제는 아비멜렉 땅에서 아브라함이 갑이 되었던 것"이다.
* 이를 보면, "세상을 상징하는 아비멜렉은 항상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문제는 "우리가 억지로 하나님을 보여주려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삶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나타나야!" 한다.
-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면, 세상을 향한 교회의 주도가 가능할 수" 있다.
-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나타내기보다, 오히려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막을 때가 더" 많다.
* 세상보다 "더 영적이고 거룩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보다 더 세속적이어서, 비판과 책망을 듣고" 있다.
- 실제로 "오늘날 세상은 교회의 세습을 비판하고, 교회 안의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교회가 다툼과 분쟁에 빠져 있음을" 책망한다.
-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듯, 낮아지고 겸손해야 하는데, 교회의 권위주의적 행위를" 비판한다.
- 교회가 "세상의 법과 질서를 잘 지켜야 하는데,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음을 강하게" 책망한다.
* 실제로 "팬더믹을 겪으며, 교회가 힘든 세상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했지만,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 역설적으로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만큼 교회가 하나님을 보여주기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러나 "교회와 기독교인의 언행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 그렇다면 "이런 불신과 책망을,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보여주어서 바꾸었듯, 우리도 바꾸어야!" 한다.
- 무엇보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이 나타나고 보이도록, 믿음 안에서 살아가며 나부터 나를 바꾸어야!" 한다.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행전 2:47절을 보면, "교회가 하나님을 보여주었기에, 일부가 아닌 온 백성의 칭송을 받지!" 않았을까?
- 교회가 "하나님을 보여주었기에, 교회에 출석하는 영혼이 아니라, 구원받는 영혼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 교회가 "하나님을 보여주었기에, 주중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믿는 자가 더하게 되지!" 않았을까?
-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세상을 주도한 이유는, 매사에 하나님을 보여주고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 언행, 선택과 결정에는 얼마나 하나님이 보이고 나타나는가? 자문해야!" 한다.
- 무엇보다 "아직 안 늦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이 신뢰하도록 나부터 나를 바꾸어야!" 한다.
- 사순절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해서, 하나님과 세상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나를 바꾸어야 할 절기"이다.
- 오늘도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여주고 나타내는 삶을, 세상을 주도하는 승리가 있기" 원한다.
2. 세상을 주도하려면, 복음으로 불신자를 주도하며 선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 본문에서 "양자간 언약이 이루어지기 전,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는 악행을" 저질렀다.
- 당시 "팔레스틴에서 우물은 생명처럼 귀한 자산이었는데, 이를 빼앗았다면 그 관계가 어떻게" 좋았겠는가?
- 그런데 "본문 27~28절은,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말씀한다.
- 본문에서 "아비멜렉이 먼저 찾아와서 동거를 청했는데, 특이하게도 아브라함이 동거 방법을 주관하고" 있다.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요청을 듣고, 언약을 위해 일곱 암양을 세우며, 언약을 주도했던 것"이다.
- 나아가서 "과거 우물을 빼앗긴 일에 관해서도, 아비멜렉의 정중한 사과까지도" 받아냈다.
- 특히 "여기서 암양 일곱은, 완전을 뜻하는 7이 들어가고, 가장 순결한 제물로, 서로 약속을 주도했던 것"이다.
- 언약이 "이방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방식으로 체결될 정도로,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주도했던 것"이다.
- 그렇게 "아브라함의 주도로, 과거에는 불신과 다툼이 있었지만, 이제는 선한 관계를 맺어갔던 것"이다.
* 오늘날 "세상은 교회와 기독교인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기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선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세상보다 삶의 그릇, 영적 그릇이 더 커져야!" 한다.
- 우리가 "세상을 주도하려면, 세상을 담을 정도로 그릇이 커져서, 세상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 물론 "세상과 선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 복음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 세상을 "주도하기 위해 영적 그릇이 커지려면, 우리가 날마다 위로부터 공급되는 풍성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주도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비멜렉이 세상에서 받고 누린 혜택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 공급받은 능력이 훨씬 더 크고 온전했기 때문"이었다.
- 안타깝게도 "교회와 기독교인이 하늘의 은혜가 주는 능력과 가치를 모르기에, 그릇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다.
- 그릇이 "점점 작아지기에, 내 주장과 고집이 더 강해지고, 믿는 영혼끼리도 선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 욥이 "고난을 겪을 때, 세 친구, 엘리바스 소발 빌닷이 찾아와서 욥을 위로했지만, 관계가 더 깨지고" 말았다.
- 당시 "세 친구의 영적 그릇이 욥보다 작았기에, 비록 옳은 말을 한다고 했지만, 욥을 위로하지!" 못했다.
- 게다가 "욥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기에, 힘들고 곤고했기에, 그릇이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었다.
- 그런데 "욥기 결론을 보면, 욥이 세 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관계가 회복되고, 복도 두 배나 받게" 되었다.
- 이유는 "욥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더 큰 은혜를 받았고, 그 은혜로 영적 그릇이 커졌던 것"이다.
* 그렇게 "커진 그릇으로 세 친구를 품고 용납했기에, 그 관계가 깨지고 앉고 더 좋아질 수" 있었다.
- 이처럼 "우리가 악한 세상을 주도하려면, 다른 무엇보다 하늘의 신령하고 풍성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
- 은혜가 "말씀에 거하게 하고, 하늘의 능력이 넘쳐서, 나를 통해 주변 모두에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 오늘 "우리가 각박해지고, 관계가 깨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 안에 은혜가 고갈되어가기 때문"이다.
* 세상을 "주도하는 은혜는 세상과 사람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만 공급되고, 오직 우리 하나님만 주실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 말씀 안에서, 주 안에서, 그 사랑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 감사하게도 "아직 안 늦었고, 은혜는 내가 사모하고 갈급한 만큼 주어지기에, 사순절을 통해서, 작아진 내 영적 그릇을 더 키워가고, 주변 이웃과 선한 관계를 맺어가며, 세상을 주도해 가야!" 한다.
- 오늘도 "세상으로 나가는데, 은혜받고 영적 그릇이 커져서, 세상을 주도하며 선한 관계를 맺어가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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