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4 잠묵사(잠언을 묵상하는 사순절)

2024 사순절 잠묵사(05) - 게으른 자에게 주시는 교훈.

다솔다윤아빠 2024. 8. 19. 23:08

@ 2024년 사순절 특새(05-230219) 게으른 자에게 주시는 교훈(6:6~11) 552(아침 해가 돋을..)

 

* 빌 게이츠가 "길에 떨어진 100불 지폐를 줍는 것이 이득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이득"일까?

- 답은 "시간상, 100불을 줍는 것보다, 그냥 지나친 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때, 더 이득이 된다고" 한다.

-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도 중요해서, 오늘날 세상은 시간 당 얼마를 버는지로 사람을 평가할 정도"이다.

- 그런데 "현실을 보면, 우리는 아무런 계획 없이 시간을 버릴 때가 많고, 준비 부족으로 시간을 낭비함도 많고, 쓸데없는 전화 잡담, 어떤 일을 미루는 나쁜 습관, 정리정돈 하지 않아서 시간을 버릴 때도" 많다.

 

*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시간을 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원인과 이유가 바로 게으름에" 있다.

- 누구도 "게으른 삶을 원하지 않고, 게으른 삶을 선하고 복되다고 말하지!" 않는다.

- 그러나 "누구나 게으름이란 영적 복병에 빠져, 하나님 주신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잃어버릴 때가 참으로" 많다.

 

* 본문 6절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말씀한다.

- 여기서 "본문 6절을 그대로 직역하면,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 "너는 개미에게로 가라. 게으른 자여! 너는 그것의 태도들을 보라, 그리고 너는 지혜로워져라!"

- 무엇보다 "게으르다. 원어 아첼은 '빈둥거리며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이다.

 

*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게으르게 살아가라고,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내게 주신 것이" 아니다.

- 실제로 "우리 주님의 공생애 삶을 보면, 주님은 한 번도 게으르고 나태하신 적이" 없었다.

- 오히려 "잠도 잘 못 주무시고, 식사도 불규칙할 정도로 바쁘셨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부지런한 삶"이었다.

- 이민자로 "이 땅을 살아가려면, 절대로 게으름에 빠지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게으를 때가 적지!" 않다.

- 그렇다면 "우리가 게으르지 않으려면, 성경이 게으른 자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게으르지 않으려면, 항상 내일을 믿음으로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 솔로몬은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 배워라!' 명령하며, 개미의 특징을 본문 8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 솔로몬은 "개미가 여름에 먹을 양식을 예비하고, 모으는 모습을 보고, 이를 지혜롭다고" 평가했다.

- 여기서 "예비한다. 원어 타킨은 미 완료 형 동사로, 겨울을 위해서 양식을 계속 준비하는 부지런함을" 말한다.

- 반면에 "모은다. 이는 완료 형 동사를 썼는데, 이는 추수 때까지 모으는 행위가 끝나기 때문"이었다.

 

* 이에 "솔로몬은 개미의 지혜로움은 추수 때를 넘기지 않고, 부지런히 준비하는 모습에 있다고 칭찬한 것"이다.

- 그렇다면 "게으른 영혼은 어떤 일에 예비함이 없어서, 추수 때까지 양식을 모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 여기서 "성경은 '예비한다.' 동사를 미 완료 형으로 써서. 부지런한 영혼은 항상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어떤 일을 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준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 요약하면, "부지런한 영혼은 준비성이 있지만, 게으른 영혼은 준비함이 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산다는 것"이다.

 

* 개미는 "이처럼 눈앞의 일도 준비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겨울, 먼 미래도 지혜롭게 잘 준비"하였다.

- 그런데 "오늘 우리는 먼 미래를 믿음으로 준비하기보다, 눈앞의 일에 아등바등 살아갈 때가 더" 많다.

- 물론 "바쁘고 분주해서, 지금 주어진 삶의 무게가 버거워서, 먼 미래를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래도 시간을 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만, 이를 자꾸 미루고" 연기한다.

- "지금은 너무 피곤하니까! 나중에 하지 뭐! 지금은 바빠! 아직 때가 아니야! 이 일만 끝나면! 아이들만 크면!"

 

* 그렇게 "미래를 위한 준비를 미루다 보면, 점점 게을러지고, 점점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 바울은 "살후서 3:8절에서, 항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하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말한다.

- 바울이 "이렇게 부지런함을 강조했던 이유는,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게으른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 이에 "바울은 살전 3:6&10절에서,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우리가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게으른 자를" 책망했다.

 

* 성경은 "이처럼 한 번도 게으른 삶, 나태한 삶을 선하고 복되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책망한다.

- 따라서 "우리가 게으르지 않으려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를 위한 준비가 항상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살면서 무엇인가를 꼼꼼하게 준비하면, 또 다른 준비, 더 나은 준비가 생각나고 눈에" 들어온다.

- 반면에 "준비하지 않으면, 이것도 저것도 준비할 것이 없고, 그냥 그대로 나태함에 빠지고" 만다.

 

* 2차 대전 때 "어떤 외과 의사가 수많은 유대인과 함께 죽음을 기다리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 모두가 "죽음을 기다리며 절망에 빠졌지만, 외과 의사는 깨진 유리로 매일 면도하며 깨끗함을" 유지했다.

- 당시 "나치는 오후마다, 가스실에 유대인을 보냈는데, 항상 정갈한 외과 의사를 제외할 때가" 많았다.

- 그렇게 "죽음의 공간에서, 내일을 꿈꾸며 준비했던 외과 의사는 죽지 않고, 살아서 수용소를 나올 수" 있었다.

- 만일 "그 외과 의사가 나태하고 게을렀다면, 자포자기했다면, 수용소에서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이는 "빅터 프랭클이 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실제로 소개했던 내용"이다.

- 이처럼 "준비하는 삶은, 내일을 꿈꾸는 삶이고,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준비 없는 삶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은 것이고,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성경의 "수많은 예언이 다 성취되었지만, 아직 한 가지, 예수의 재림이 남아서, 우리는 이를 준비해야!" 한다.

- 재림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만, 준비하는 영혼과 그렇지 않은 영혼이 경험하는 것이 절대로 같을 수" 없다.

 

* 우리 삶이 "바쁘고 분주하지만, 재림을 준비하는 영혼은 절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나태할 수" 없다.

- 실제로 "사소한 일에도, 믿음으로 준비하는 영혼과 준비 없이 임하는 영혼이 얻는 것이 절대로 같을 수" 없다.

- 우리는 "누구나 더 나은 것을 얻기 원하는데, 여러분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준비하며" 살아가는가?

- 사순절을 "보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찾으며, 게으름을 이겨내기" 원한다.

 

2. 게으르지 않으려면, 조금이 아니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 솔로몬은 "본문 9~10절에서, 게으른 자, 지혜롭지 못한 자를 향하여 이렇게" 책망한다.

-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 솔로몬은 "게으른 사람의 모습으로, 손을 모으고 누워 있는 모습, 잠들어서 깨어 있지 않은 모습을" 말한다.

- 이는 "단순한 자세와 태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 있고, 무기력한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 이처럼 "게으른 영혼은 항상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 있자!' 이런 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 여기서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된 '좀 더' 원어 메아트는 '작은, 작게, 약간, 조금'을 뜻하는 단어"이다.

- 그래서 "본문 10절을 직역하면 '조금의 잠, 조금의 졸음, 누워서 잠깐 손을 모음'"이라는 뜻이다.

- 이는 "게으른 영혼이 '좀 더, 조금씩' 이 단어를 하찮게 여기고, 큰 문제 없다고 착각함을 책망하는 것"이다.

- 심리적으로 "게으른 영혼은 '많이, 전부가' 아니고 '조금만, 좀 더' 이 정도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그런데 "오늘 우리도 많은 경우, '좀 더, 좀 더' 이를 반복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게으름에 빠지고" 만다.

- 심중에 "오래는 안 되지만, 잠깐은 괜찮고, 많이는 안 되지만 약간, 조금은 괜찮다는 생각이 너무도" 많다.

- 실제로 "늦잠 자는 분들은 대부분, '5분만 더, 조금만 더!' 외치다가 해야 할 일을 놓칠 때가" 많다.

- 많은 "분이 사순절 특새를 지키겠다고 작정하지만, 일어날 때, '조금만, 5분만 더' 말하다가 잠들고" 만다.

- 문제는 "그렇게 잠깐, 조금이 쌓이며 내 삶을 지배하고, 마침내 게으름에 빠져들어 감을 모르고" 살아간다.

 

* 김은주 씨가 "쓴 책 1Cm+를 보면, 우리가 자주 빠지는 영적, 심적 함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큰 기쁨을 방해하는 것은 약간의 기쁨이다! 큰 만족을 방해하는 것은 불만족이 아니라, 약간의 만족감이다. 큰 성공의 적은 실패가 아니라 약간의 성공이다, 진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미지근한 사랑이다."

- 이처럼 "우리는 '약간, 좀 더' 이 단어를 자주 쓰지만, 이는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니다.

- 실례로 "구약의 제사 중 번제는 일부만, 약간만, 조금만 태워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 오히려 "드린 제물 전부를 다 태워서 드려야 했고, 그럴 때,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이 될 수" 있었다.

- 이처럼 "게으름은 일부만, 조금만 드리려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렇게 계속 조금으로 끝나고" 만다.

- 우리가 "게으름을 이기려면, 매사에 조금, 약간이라는 생각보다, 오히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 특히 "지금 예배드리려고 하나님 앞에 섰다면, 다른 모든 잡생각은 다 내려놓고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지금 "일하는 시간이라면, 다른 것은 다 잊고,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그렇게 "봉사할 때, 운동할 때, 대화할 때, 심지어 먹을 때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함이 지혜로운 것"이다.

-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최선을 다하기보다, 여러 생각이 섞여서 어정쩡할 때가 훨씬 더" 많다.

- 선민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길 때, 삼하 6:16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씀한다.

-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 당시 "다윗은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자, 체면과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서 춤을" 추었다.

- 반면에 "다윗의 아내요, 사울의 딸인 미갈은 언약궤를 보고도, 기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윗이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비웃고" 업신여겼다.

-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한 명은 최선을 다했고, 다른 한 명은 그 마음이 분산되고" 나뉘었다.

- 마침내 "하나님께 최선을 다했던 다윗은 성군이 되었고, 미갈은 평생 자녀를 낳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 그러므로 "우리가 게으르지 않으려면, 항상 일부가 아니라, 내 전부를 드리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 전부를 "드리는 열정, 최선을 다하는 헌신에는 절대로 게으름과 나태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삶은 최선을 다함이 많은지, 일부만 하려는 게으름이 더 많은지!" 자문해보자!

- 분명한 것은 "조금 더, 일부만 드리는 게으름과 최선을 다하는 부지런함이 받는 하늘의 상급이 다를 것"이다.

- 오늘도 "우리가 주어진 삶에서 일부, 조금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게으름을 이겨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