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 특새/2023~2024 헛되지 않으려면(전도서 묵상)

2324 특새(04) - 형통할 때와 곤고할 때.

다솔다윤아빠 2024. 7. 23. 00:21

@ 2324 특새(04~231230) 헛되지 않으려면 형통할 때와 곤고할 때(7:14)

 

* 나귀가 "발을 헛디뎌서 깊은 우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몇 시간 동안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 주인이 "이를 보고 '어차피 늙은 나귀니, 잘 죽도록 흙을 덮어주자!' 생각하고, 흙을 우물에 퍼넣기 시작"했다.

- 나귀는 "위에서 흙이 쏟아져 내려오자 두려웠지만, 계속 흙은 피하며, 흙이 쌓이면 발로 다지기를" 반복했다.

- 놀랍게도 "나귀는 자신을 죽이려고 쏟아진 흙을 밟고, 마침내 깊은 우물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

- 우리 인생도 "갑자기, 생각지 않게 빠지는 깊은 우물이 있고, 설상가상으로, 흙이 쏟아져 내려올 때가" 있다.

 

* 그러나 "생각해 보면, 흙이 쏟아져 내려올 때도 있었지만, 새롭게 길이 열려서 위기를 극복했던 때도" 많았다.

- 이처럼 "인생은 형통함과 곤고함이 교차하며 우리 삶을 채우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위기라고 너무 절망할 필요가 없고, 위기를 극복했다고 너무 자만할 필요도" 없다.

- 본문은 "우리 삶에 형통함과 곤고함이 반복된다고, 그 형통함과 곤고함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 여기서 "형통함은 '번영, 행복, 복된 일'이란 뜻으로,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긍정적 요소를" 말씀한다.

- 또한 "곤고함은 '비참함, 불행, 괴로움, 악함'이란 뜻으로, 삶의 모든 부정적인 일을 포괄하고" 있다.

- 어쩌면 "지금 우리 중에는 형통함으로 살아가는 분도 있고, 곤고함으로 힘든 분도 있을 것"이다.

- 문제는 "이처럼 반복되는 형통함과 곤고함 중, 어떤 영적인 태도,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 분명한 것은 "형통함은 형통한 대로, 곤고함은 곤고한 대로, 나름대로 유익함이 있음을" 기억하자!

 

* 이유는 "형통함과 곤고함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이를 통하여 성장할 방법도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지혜로운 영혼은 형통할 때는 형통한 대로, 곤고할 때는 곤고한 대로, 계속 배우며 성장"한다.

- 그렇다면 "우리 삶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형통함과 곤고함이 반복될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살펴보자!

 

형통할 때와 곤고할 때, 우리가 항상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 본문에서 "생각하라! 원어 레에는 '현실을 직시하고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라! 신중하라!'"라는 뜻이다.

- 솔로몬은 "인간이 형통할 때는 그 형통함에 깊이 빠져서, 신중함을 잃고 교만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실제로 "형통할 때, '누가 이 형통함을 주셨고, 어떻게 형통함을 바르게 찾고 누리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 그렇게 "깊이 신중함으로 하나님과 말씀 안에서 참 형통함을 찾고 누려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일 때가" 많다.

- 또한 "곤고할 때는, 삶의 무게와 버거움에 힘들어서, 신중함보다 경거망동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사람이 "어렵고 힘들 때, 신중함을 잃고 실수가 반복되고, 나중에는 깊은 후회와 한탄에 빠질 때가" 많다.

- 그렇게 "사람은 어렵고 힘들 때,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불평과 원망에 빠져서 그 삶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형통함과 곤고함을 겪을 때마다, 신중함으로 삶이 좌우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자세와 태도, 신중함'이 너무도" 부족하다.

- 특히 "빠름, 속도를 최고로 여기는 시대이기에,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 3:1절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한다.

- 여기서 "생각하다. 헬라어 카타노에이는 '깨닫다, 이해하다, 통찰력을 가지고 생각하라!'"라는 뜻이다.

- 성경에서 "생각은 인간적인 사고와 궁리가 아니라, 말씀을 통한 통찰력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능력을" 뜻한다.

- 실제로 "사람이 자기 경험과 생각대로 무엇인가를 분석하면, 항상 거기서 거기일 뿐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 많은 사람이 "'이것은 나밖에 모를 거야! 기가 막혀!' 감탄하지만, 사실 그 정도는 주변 사람 모두다" 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지혜로 통찰력 있게 생각하면, 삶의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 하지만 "오늘 우리는 형통함과 곤고함이 반복될 때, 경험과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더 빠르고, 성령께서 주시는 분별력, 말씀에 기초한 통찰력으로 삶의 해석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 무엇보다 "말씀에 근거한 통찰력은 하늘의 지혜를 주기에, 내 삶을 항상 바른길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

 

* 골리앗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사울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라는 말에 마음이" 상했다.

- 그래서 "항상 자기 시각과 감정대로 다윗을 보았기에, 손에 창이 있으면, 다윗을 죽이려!" 했다.

-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공격이 극심했지만, 항상 말씀에 근거한 통찰력으로 선택과 결정을" 했다.

-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해할 수 없다!' 말씀에 근거한 통찰력으로 곤고함을 이겼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다.

 

* 이처럼 "인생의 형통함과 곤고함 중, 인간적 지혜를 덧입는지, 말씀의 통찰력을 덧입는지는 엄청난 차이"이다.

- 감사하게도 "14: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말씀한다.

- 성령님은 "내가 형통할 때, 곤고할 때, 항상 내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며, 통찰력을" 준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성령님 주시는 통찰력을 가지고, 삶을 해석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 미국 26"대통령이었던 시어도르 루스벨트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하여" 말했다.

- "링컨은 성경 한 책으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배운 진리를 자기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그의 일생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스러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 링컨은 "형통할 때, 곤고할 때, 항상 말씀을 통한 통찰력, 성경을 깊이 생각하며,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

- 그렇다면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삶이 형통할 때, 곤고할 때, 링컨처럼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갈 때, 링컨에게 주셨던 지혜와 통찰력을 주시기" 않겠는가?

 

* 올해 "우리는 바쁘고 힘들다고, 나중으로 미루며 말씀을 통한 통찰력, 깊은 생각 없이 살았던 때가 더" 많았다.

- 그러나 "다가오는 2024년을 복되게 보내려면, 이제는 말씀을 통한 통찰력, 신중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근거로, 신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 우리 삶이 헛됨에 빠지지 않는다!" 약속한다.

-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 주는 통찰력은 형통과 곤고함에도, 항상 가장 좋은 길로 이끄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저는 "여러분이 다가오는 2024, 말씀을 통한 통찰력, 신중함으로 항상 헛됨을 이기며 승리하기" 원한다.

 

2. 형통할 때와 곤고할 때, 언제나 한결같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야 한다.

 

* 우리 "인생에서 형통함과 곤고함을 교차하도록, 병행하며 주신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우리 삶에 형통함과 곤고함을 병행하게 하셔서, 장래 일을 능히 헤아리지 못하게" 하셨다.

- 솔로몬은 "형통함이 계속 이어질지, 끊어질지, 그 끝을 모르고 알 수 없다고, 인간의 한계성을" 말했다.

- 곤고함이 "장래에 더 나빠질지, 좋아질지 모르기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신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 솔로몬은 "단지 '우리 삶에 형통함과 곤고함이 있다. 반복된다.' 이를 알리기 위해서, 본문을 쓰지!" 않았다.

 

* 항상 "형통함과 곤고함에 갇혀서, 장래 일을 모르는 인간이기에, 더욱 하나님 의지하라는 것이 메시지"이다.

-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형통함과 곤고함에도,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현대인은 "형통할 때, 곤고할 때, 많은 경우, 하나님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 제가 "몇 가지 단어를 열거하려 하는데, 이 단어들이 가진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 "알코올, 약물, 마약, 카페인, 도박, 인터넷 게임, 운동, 성형, 다이어트, 쇼핑, , 스마트 폰, 음란 사이트 등등"

 

* 이는 "현대인이 병행하는 형통함과 곤고함 중에서,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중독의 양상들"이다.

- 살면서 "세속적인 무엇인가에 내 마음과 삶을 빼앗기도록, 철저하게 의지하는 증세가 바로 중독"이다.

- 무엇보다 "중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의지함이 점점 더 심각해져 가고, 마침내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서, 마침내 형통함과 곤고함마저 구분하지 못할 지경까지 가게" 한다.

- 문제는 "정말 의지해야 할 것에 깊이 의지한다면, 중독이 문제가 되거나, 삶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속적인 것에 대한 중독은 많은데, 복음 중독, 예수 중독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 이는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만큼 하나님보다 세속적인 것을 더 의지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여러분은 형통할 때, 곤고할 때, 누구를, 무엇을, 어디를 통해서 문제의 답을" 찾는가?

- 만일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한다면, 그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야!" 한다.

- 작은 "일에도 검색을 통한 인터넷 정보를 의지한다면, 역시, 그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야!" 한다.

 

* 무엇보다 "형통하고 곤고할 때, 하나님을 의지함이 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정도와 깊이"이다.

- 중독은 "무엇인가를 온전하게 의지하는데, 하나님을 향한 의지는 온전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 실례로 "힘들고 어려울 때, 다급하고 위기 중에, 하나님을 찾지만, 그 의지함이 오래가지!" 못한다.

- 오늘 "우리가 영적 힘을 잃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함이 온전하지 않고,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 계속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온전한 의지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부분적인 의지이기 때문"이다.

 

*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명령한다.

- 주님은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말씀하면 되는데, 왜 다양한 수식어를" 붙였을까?

- 무엇 때문에 "우리 주님은 '마음과 목숨,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을까?

- 그만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온전해야 하고, 꽉 차야 하고, 빈틈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 실례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주심은, 부분적 사랑이 아닌 온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 구약에서 "선민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만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긴 것"이다.

- 문제는 "선민의 신앙과 삶이 온전하지 않고, 하나님도 우상도 함께 섬겼기에,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던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 내 신앙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지, 부분적으로 의지하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

 

* 그렇게 "하나님께서 온전하지 않음을 싫어하시는데, 부분적 의지로 살아가기에 내 삶이 헛되게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내 삶이 헛되지 않으려면, 형통할 때, 곤고할 때, 항상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 항상 "'하나님은 언제나 옳고 온전하다. 유일한 정답이다. 완전한 능력자이다!' 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의지하였는가!' 이보다 앞으로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

- 다가오는 "2024, 형통하고 곤고할 때, 언제든지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해서, 헛됨을 극복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