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06) -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다솔다윤아빠 2024. 8. 1. 03:21

@ 2023년 사순절 특새(06-230228)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12:1~12).

 

*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한때, 쓸모없는 발명품에 투자하여 많은 돈을 잃은 적이" 있었다.

-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남성이 찾아와서 신기한 발명품을 보여주며 마크 트웨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내 일생일대의 작품이오. 나는 굳이 당신에게 이 작품에 투자하면, 커다란 행운을 얻을 것이라고 강요하지 않겠소. 하지만, 당신이 5달러만 투자할 수 있다면 곧 합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요."

- 그러나 "마크 트웨인은 이를 거부했는데, 문제는 투자를 제안했던 사람이 알렉산더 윌리엄 벨"이었다.

 

* 우리가 "알 듯, 윌리엄 벨은 근대 전화기를 만든 발명가로, 만일 마크 트웨인이 이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 짧은 "이야기지만, 기회는 항상 다가오지만, 모두가 기회를 다 붙잡는 것은" 아니다.

- 나아가서 "내 삶을 바꾸고 성장시킬 기회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은혜임도 기억해야!" 한다.

- 하나님은 "항상 우리 삶이 더 나아지도록 기회를 주시지만, 우리가 그 기회를 놓칠 때가 더" 많다.

- 본문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불리는 이야기로, 당시 강퍅한 선민을 책망하기 위해 선포된 메시지"이다.

 

* 어떤 "농부가 포도원과 수확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다.

-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세를 받기 위해 여러 종을 보냈지만, 선민은 주인이 보낸 모두를 거부"했다.

- 심지어 "아들을 보냈지만, 아들마저 죽임으로, 아예 포도원을 자기들 것으로 차지하려고까지" 했다.

- 본문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심은 그만큼 큰 기회를 주셨지만, 선민이 이를 놓쳤다!" 말씀한다.

- 문제는 "본문에 등장하는 강퍅한 농부들은 당시 선민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기독교인에게 "하나님 주신 기회는 인생을 바꾸고, 미래를 더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은혜의 통로"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기회는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기회를 바르게 선용할 방법을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있다면, 하나님 주시는 기회는 아직 유효함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 사순절 "엿새째, 우리가 하나님 주시는 기회를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고 붙잡을지!" 살펴보자!

 

받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강퍅해서 예수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 간 경화는 "간이 건강하고 부드러워서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간이 딱딱해져서 그 기능을 잃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사람이 화상을 입으면, 상처가 흉터로 남고, 마침내 굳어져서 감각을 잃고" 만다.

- 이처럼 "성경은 '강퍅하다.' 이 말은 '딱딱해지다. 굳어진다.'라는 뜻이고, 심지어 '딤전 4:2절은 강퍅함을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표현하는데, 여기서 화인이 바로 화상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 그런데 "육체의 강퍅함보다, 오히려 말씀과 은혜를 받고도 이를 모르는 영적 강퍅함이 더 큰 문제"이다.

- 영적으로 "강퍅하면, 아무리 선하고 복된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며" 외면한다.

- 영적으로 "강퍅하면,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습관적 신앙생활로 변질되고" 만다.

- 마침내 "하나님 주신 기회는 물론, 은혜와 능력까지도 모두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항상 내 신앙이 강퍅한지, 부드러운지를 확인하며 살아가야!" 한다.

 

* 본문 1절은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말씀한다.

-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타리까지 두르고, 즙 짜는 틀까지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았다.

- 개인적으로 "이 비유를 보며, 5:2절 말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 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이 내용이" 생각났다.

 

* 주인은 "주변 농부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엄청난 특권과 기회를 부여했지만, 결과는 참으로 참담"했다.

- 농부들은 "주인의 마음을 몰랐고, 강퍅해서, 세를 받기 위해 보낸 종들과 심지어 아들까지" 죽였다.

- 이는 "당시 선민의 마음이 강퍅해서, 구약에서 무려 300번이나 예언대로 오신 예수를 거부했음을 책망"한다.

- 심지어 "본문 8절은, 이에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말씀할 정도이다.

- 안타깝게도, "당시 선민을 상징하는 농부들은, 이처럼 하나님 주신 기회를 철저하게 놓치고" 말았다.

 

* 우리가 "하나님 주신 기회를 붙잡으려면, 강퍅함을 버리고, 그 마음이 부드럽고 신실해야!" 한다.

-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고자 하는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 이유는 "하나님 주시는 말씀과 기회는 이 땅과 내세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기회와 말씀은, 지금 내게 그 기회와 말씀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 주님께서 "베다니 나사로 가정을 방문하셨는데,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을 맞는 모습이" 달랐다.

 

* 마르다는 "섬김으로 주님을 맞았지만, 마리아는 간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

- 그런데 "10:39절은,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말씀한다.

- 주님은 "이처럼 강퍅함이 없이 말씀을 받는 마리아를 보시고, 10: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 주님은 "죄인인 우리가 강퍅함이 아니라, 말씀 앞에 사모함으로 엎드린 것을 좋은 편을 택했다!" 말씀한다.

 

* 팬더믹과 "전쟁, 지진과 경제 문제 모두는, 우리가 인간적 철학과 과학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실제로 "인간은 너무 무기력하게, 세상의 어려움에 함몰될 수밖에 없기에, 더욱 하나님 말씀 앞에 서야!" 한다.

- 나아가서 "강퍅하지 않고 부드럽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어려움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 주시는 기회를 굳게 붙잡기를" 원하신다.

- 우리가 "오늘도 말씀 앞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말씀으로 받아서, 하나님 주신 기회 붙잡기" 원한다.

 

2. 받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

 

* 세상의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나아가서 절대자를 믿는 종교를 이렇게" 비판한다.

- "하나님을 만들고 종교를 믿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다."

- 그러나 "저명한 신학자 벵겔은, 이 의견을 반대하며, 이렇게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의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을 바르게 설정하지 못함에" 있다.

- 주님은 "10: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말씀하셨다.

- 실제로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교회에서 인간적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함부로 말하고 범죄 하는 것, 쉽게 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 많은 "목회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교회가 어떻게 곁길로 가서 실족할 수" 있겠는가?

- 문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교회와 기독교인 안에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가 더 굳어지고" 있다.

- 본문 12절은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말씀한다.

- 놀랍게도 "당시 선민은, 하나님 아들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무리를 더 신경 쓰고" 두려워했다.

 

* 이는 "주님을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고, 사람들의 비판과 공격에만 마음을 썼기 때문"이었다.

-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더 두려워한 주체로,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말씀한다.

- 놀랍게도 "성경을 가장 잘 알고, 하나님에 관하여 가장 잘 알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살아계신 성자 하나님보다, 주변에 있던 무리를 더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 문제는 "오늘 우리가, 유대 종교 지도자를 비판하면서, 그들과 똑같이 우리도 사람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 그러나 "구원받는 믿음, 하나님 주시는 기회를 붙잡는 신앙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포를 주시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징계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 오히려 "시편 68:19~20a 절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말씀한다.

 

* 우리 "하나님은 날마다 내가 지는 짐이 무엇인지 아시고, 무거운 짐을 함께 져주시는 분"이시다.

- 이민자로 "이 땅을 살아갈 때, 얼마나 많은 짐이 우리 어깨와 삶을 누르며 힘들게" 하는가?

- 분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내가 어려움과 죄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 연약한 "내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자녀인 내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신다.

-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푸근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존중하며 살아가야!" 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이전보다 더욱 존중하며 높이려는 마음"이다.

- 그렇게 "하나님을 존중할 때, 하나님께서, 내 짐을 져주시고, 내게 항상 새로운 기회로 문을 열어"주신다.

- 사순절은 "세상을 두려워하고, 세상에 시달린 삶이 하나님께 내 짐을 맡기고, 하나님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 그렇게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짐을 져주시는 분으로 존중하며 사는 기간이 사순절"이다.

- 오늘도 "항상 내 짐을 져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존중하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