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4 잠묵사(잠언을 묵상하는 사순절)

2024 사순절 잠묵사(32) - 지혜로운 아들은.

다솔다윤아빠 2024. 8. 21. 23:08

@ 2024년 사순절 특새(32-230321) 지혜로운 아들은(잠언 28:4~7)!

 

* 어떤 가정에 "술주정뱅이 아버지로 인해, 어려서부터 큰 상처와 아픔을 겪고 자란 형제가" 있었다.

- 훗날 "둘째는 유명한 법조인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첫째는 아버지를 닮아 술주정뱅이가" 되었다.

- 기자가 "'형제가 왜 이렇게 다르게 컸는지' 묻자, 둘째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했다!' 답했지만, 첫째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죠! 그 피가 어디 가나요!' 냉소적으로" 답했다.

- 부모가 "두 형제를 볼 때, 과연 누가 더 지혜롭다고 할지, 누구를 더 자랑스럽게 여길지, 자명하지!" 않을까?

 

*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란 말이 있는데, 여러분은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 많은 "부모가 그래도, 세상에서 인정받으면 더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타까워함이, 오늘의 현실"이다.

-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자랑스럽고 복된 자녀는 세속적 성공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아들이" 아닐까?

- 지혜로움은 "세속적인 성공은 물론, 그 성품과 삶이 하나님 말씀과 합한 신실한 삶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 본문 7절은 "두 종류의 아들, 율법을 지키는 지혜로운 아들과 탐식자와 사귀는 아들을" 말씀한다.

- 여기서 "지혜롭다. 원어 메빈은 '분별하다. 식별하다. 지각하다.' 의미이고, 명사로는 '명철'이란 뜻"이다.

- 반면에 "음식을 탐하고, 먹고 마심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는 아들이라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까?

- 솔로몬은 "잠언 독자에게, 부모에게, 탐식자와 사귀는 아들이 아니라 지혜로운 아들이 되라고" 도전한다.

- 무엇보다 "지혜는 단순히 분별력과 명철함만 뜻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강조한다.

 

* 그러므로 "정말 지혜로운 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한 세상에서 바른 분별력과 명철로 살아가는 아들"이다.

- 문제는 "부모에게 지혜로운 아들이 됨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지혜로운 아들이 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사순절은 "어쩌면, 세상에서 지혜로운 아들이, 하나님께 지혜로운 아들로 바뀌어야 할 절기"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로운 아들이 되고, 부모에게 기쁨이 되려면, 어떤 삶이어야 할지!" 살펴보자!

 

지혜로운 아들은 율법을 지키며 악을 대적하며 살아간다.

 

* 본문 4절은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말씀한다.

- 솔로몬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말씀인 율법을 버리면, 악인을 칭찬하며, 영적 법칙과 역행한다고" 말한다.

- 여기서 "버린다. 이는 단순한 외면과 거부가 아니라,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며 공격하는 것"이다.

- 반면에 "율법을 지키는 삶도, 적극적으로 율법을 연구하고,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뜻한다.

- 그렇게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당연히 악은 물론 악인을 대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율법은 "하나님께서 선민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방인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주신 선물"이었다.

- 문제는 "유대인이 처음부터 율법을 가지고 있었고, 공부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 된 것이" 아니었다.

- 실제로 "출애굽 당시, 선민은 가나안 이방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율법 준수조차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 오죽했으면, "선민은 물론이고, 아론조차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진노하게" 했을까?

- 따라서 "율법은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지켜지지 않고, 노력하며 배우고 순종함을 반복해야 지켜지는 것"이다.

 

*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간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혜로운 아들은 반드시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고, 악을 대적할 수밖에" 없다.

- 문제는 "오늘 우리가 말씀을 가짐은, 불신자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인데, 말씀을 가졌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 개념이 아니라, 말씀을 삶의 지침과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지키며 살아감을" 뜻한다.

-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는 삶과 악을 대적하는 삶의 순서에" 있다.

 

* 만일 "누군가 악을 대적하고, 그리고 율법을 지킨다면, 이는 상식과 법을 지키는 윤리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반면에 "율법을 지키며, 율법에 순종해서 악을 대적한다면, 이는 신실한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대로 악을 대적해야!" 한다.

- 4:7절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말씀한다.

- 이처럼 "우리가 말씀 붙잡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대적하면, 마귀가 피하고 도망간다!" 약속한다.

 

*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마귀에게 세 번이나 시험을 받으시고, 모든 시험을 다" 이기셨다.

- 이를 보면 "악한 마귀는 성자 하나님마저 시험할 정도로, 항상 공격적이고 그 미혹함이 너무도" 극심하다.

- 그런데 "주님은 마귀의 시험에 피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하나님 말씀 붙잡고 마귀를 온전히" 이기셨다.

- 이처럼 "우리가 율법을 지키며 악을 대적하려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잘 알고 살아가야!" 한다.

 

* 오늘 "우리는 지혜롭기 원하고, 율법을 지키기 원하고, 악을 대적하기 원하지만, 문제는 성경을 잘" 모른다.

- 그렇게 "성경을 모르기에,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자기 뜻과 세속적 도전만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 그런데도 "말씀을 의도적으로 공부하며 깨닫고자 노력하지 않고, 현실은 이런저런 핑계로 게으르고" 나태하다.

- 그러나 "지혜롭게 살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깨달은 말씀으로 악을 이기며 살아가야!" 한다.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우리는 "세상의 미혹과 공격이 강할수록, 1:3절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

-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악을 이기려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재림을 기다려야 함을" 도전한다.

- 라틴어 "코람데오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내 삶, 선택과 결정,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뜻"이다.

- 부족해도 "코람데오로 무장하면, 매사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선한 선택과 결정은 물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 물론 "항상 코람데오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하면, 악을 대적하며, 악과 싸울 수" 있다.

 

* 마침내 "악이 강해도, 나 혼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악과 싸워서, 마침내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간다면, 그래서 악을 대적하여 이겨내며 살아간다면, 내 삶은 더욱 지혜롭게 될 수밖에" 없다.

- 오늘도 "악한 세상으로 나가는데, 코람데오 믿음으로 말씀을 지키며, 악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기" 원한다.

 

2. 지혜로운 아들은 굽은 삶을 계속 성실함으로 바꾸어가며 살아간다.

 

* 본문 6절은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말씀한다.

- 솔로몬은 "여기서 두 가지 대조, '가난함과 부유함, 성실하게 행함과 굽게 행함'을 비교하고" 있다.

- 사람은 "누구나 가난함보다 부유함을 원하고, 부모도 자녀가 가난하기보다 부유하기를" 원한다.

- 문제는 "부유하다고 모두가 굽게 행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다고 모두 성실하게 행하는 것도" 아니다.

- 그러므로 "부유함과 가난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이 성실한가? 아니면 굽게 행하는가?'"에 있다.

 

* 여기서 "성실히 행함, 원어는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완전함, 순결함'이란 뜻"이다.

- 그리고 "굽게 행함은 선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나쁘고 악하다고 진실을 왜곡하는 고집스러움'을 의미"한다.

- 부모는 "당연히 굽게 행함보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녀를 지혜로운 아들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기독교인도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굴복하는 악한 죄인이자 멸망의 자녀"였다.

- 그러나 "내가 십자가 보혈을 믿고,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면서, 내가 하나님 자녀로, 그 신분이" 바뀌었다.

- 비록 "여전히 죄짓고, 악을 행하지만, 우리는 십자가 보혈을 믿기에, 의인으로 인정받은 죄인으로" 살아간다.

-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아들은, 굽음에서 성실로 바뀌어, 계속 성실함으로 살아가는 자녀"이다.

- 사람은 "항상 어떻게든 바뀔 수밖에 없는데, 핵심은 악함에서 선함으로, 좋게 바뀌어야 함에" 있다.

 

* 성경은 "그렇게 악함에서 선함으로 바뀜을 거듭남, 중생으로 말하고, 그 반대를 타락과 실족이라고" 말한다.

- 바울은 "딤전 1:15절에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과거 핍박자의 악행을 회개하고" 있다.

- 바울은 "이처럼 굽은 삶에서 신실한 삶으로 변화되어서, 더욱 지혜로운 아들로 쓰임을" 받았다.

- 또한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과거로 돌아갔지만, 새롭게 되어서 지혜롭게" 바뀌었다.

- 탕자가 "아버지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탕진했지만, 다시 새롭게 바뀌어서, 지혜로운 아들이" 되었다.

 

* 반면에 "사울 왕은 처음에 신실하고 성령 충만했지만, 악하게 타락하여, 비참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 가룟 유다는 "사도로 부름을 받고 헌신하며 재정까지 맡았지만, 주님을 배신하여 타락하고" 말았다.

- 이처럼 "변화는 선한 방향과 악한 방향 두 가지가 있기에, 우리의 변화는 반드시 선한 방향이어야!" 한다.

- 이유는 "선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내 삶과 가정, 교회가 더 지혜롭게 되기 때문"이다.

- 문제는 "죄인인 인간은 선하게 바뀔 가능성보다, 악하게 굽게 타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 실례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은혜받고 신실해지는 영혼과 상처받고 실족하는 영혼 중, 과연 누가 더" 많을까?

- 삶이 "악함에서 선함으로 바뀌기보다, 선함에서 악함으로 바뀜이 더 많기에, 교회가 욕먹는 것이" 아닐까?

-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더더욱 꼼꼼하게 내 신앙의 방향, 깊이를 점검하며 살아가야 지혜로울 수" 있다.

- 이유는 "우리도 내 신앙을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으면, 신실한 믿음이 시간이 갈수록 굽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우리는 나부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서, 선함을 지키려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을 꼽는다면, 아마도 어머니의 손맛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 문제는 "어머니의 손맛이 가장 맛있다고 하기보다, 사실은 내 입맛이 어머니 손맛에 익숙해진 것"이다.

- 이처럼 "익숙함은 나를 편하게 하고, 안정되게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나를 안주하게" 만든다.

- 문제는 "신앙생활도 편안함과 익숙함에 빠지면, 더는 바꾸려고 하지 않고, 선한 싸움도 외면하게" 된다.

 

*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말씀을 묵상하며, 받은 은혜로, 나를 하나님께 맞추어가는 선한 변화가 이어져야!" 한다.

- 때로 "익숙함과 편안함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 맞게 바꿔가면, 지혜롭게 될 수" 있다.

- 문제는 "그렇게 선한 싸움을 통해 선하게 바꿔가고, 그것이 또 익숙해지면,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 사순절은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는 절기가 아니라, 선한 싸움을 싸우며 나를 바꾸어가는 절기"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도 선한 싸움을 싸우며 굽음을 성실함으로 바꾸며,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