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해/바나바

바나바 묵상(05) ▶ 안디옥 교회의 탁월함(01 - 사도행전 13:1~3).

다솔다윤아빠 2024. 10. 16. 05:30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을 '좋음의 기능이나 본성을 계속해서 잘 실현할 수 있는 성품의 상태, 능력을 갖춤이다.' 정의"합니다. 세상은 "뛰어난 기술과 기능을 계속 발휘하는 목수를 탁월한 목수라고" 말합니다. "심장 수술 집도의, 히루 타카야마는 20년 넘게 매년 300건 이상, 계속 대동맥 판막 관련 수술로 많은 환자를 살려서, 탁월한 의사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탁월함은 한순간, 한 사건, 짧은 경험과 얕은 지식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특히 "탁월함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살리고 세우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왕이면 탁월한 성도, 탁월한 교회를 세워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탁월한 믿음이어야 받은 소명을 이루고, 더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행전 8:4절은 "스데반 순교 후,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말씀합니다. 당시 "익명의 수많은 기독교인이, 소아시아 곳곳에 흩어져서 십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시 흩어진 기독교인이, 안디옥에만 몰려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소아시아 여러 이방 교회 중, 유독 안디옥 교회에 주목"했습니다. 이유는 "안디옥 교회가 다른 어떤 이방 교회보다 더함의 은혜가 컸고,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있었고, 힘있게 사역자를 세워서, 수많은 주의 백성을 계속 길러내는 탁월함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안디옥 교회는 사도들조차 못했던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특히 "누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복음을 들고 열방을 향해 나간 첫 번째 주인공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소개"합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어, 사도행전 후반부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탁월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디옥 교회의 탁월함이 소아시아와 로마,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무려 2000년 전에 시작된 복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지금도 우리를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십자가 복음이 가장 탁월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탁월한 복음을 받았지만, 탁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계속 붙잡아야 할 은혜와 생명력을 놓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안디옥 교회와 바나바의 탁월함이 무엇이었고, 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아보기" 원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탁월함은, 주 안에서 다름보다 공통점을 먼저 봄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전 12:28절에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말하며, '사도와 선지자, 교사가 초대교회에서 참으로 중요했다.'"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은,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와 교사가 무려 다섯이나 있었다." 말씀합니다. 니게르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리더였고, 루기오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마나엔은 갈릴리와 베레아를 통치한 헤롯 안디바와 같이 성장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부유한 헬라파 유대인이었고, 사울은 복음을 거부한 박해자"였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를 섬기는 다섯 명 리더는 그 출신 배경이 제각각"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차이점보다 공통점, 한 목적을 붙잡고 추구하며 동역"했습니다. 여기서 "다섯 명의 공통점, 한 목적과 비전은 십자가 복음, 부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굳게 붙잡고, 안디옥 교회는 더더욱 탁월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복음 전파에 헌신하며 안디옥 교회가 탁월해졌고, 그 성도도 함께 탁월해졌고, 마침내 주를 위해 동역하면서, 수많은 간증과 열매를 맺어갈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을 수 없고, 같은 상황, 같은 물건을 보고도 의견이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여행객이 "갈릴리 바다를 방문해서, '배를 빌리려면 100!'이란 말에 '너무 비싸다.'" 말했습니다. 사공이 "'여기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은 곳인데요!' 말하자, 남성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거봐요, 얼마나 배 빌리는 값이 비싸면 그분이 물 위를 걸었겠어요." 문제는 "다름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갈등과 다툼, 합력과 연합이 결정되지!" 않겠어요? 실례로 "다름을 차이점으로 보면 갈등과 다툼이 발생하지만, 공통점을 찾으면 합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큰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을 더 찾고, 차이점만 더 크게 부각"합니다. 마침내 "이기심에 빠져서 제각각 살아가기에, 합력이란 탁월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차이점이 커도, 공통점을 먼저 보는 시각이 탁월함을" 만듭니다. 힘들어도 "공통점을 먼저 찾아야 큰일을 할 수 있고, 선하고 복된 전통, 복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밤중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만 집주인과 마주치자, 권총을 겨누며 '손들어!'" 소리쳤습니다. 깜짝 "놀란 주인이 손을 들었지만, 오른손을 높이 들지 못하자, 도둑이 '양손을 높이 들어!' 소리쳤고, 주인이 '신경통으로 오른손을 못 들어요.' 말하자, 도둑이" 답합니다.

 

"! 나도 신경통 때문에 도둑질을 하는 건데!" 그렇게 "도둑과 주인은 신경통이란 공통점으로 밤새 대화하고, 아침에 친구처럼" 헤어졌습니다. 이는 "미국의 저명한 작가 오 헨리의 '강도와 신경통'이란 소설의 내용"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우리가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먼저 볼 수 있다면, 갈등과 다툼을 이기고, 연합하고 합력할 수 있음을 교훈"합니다. 우리는 "제각각 다르지만, 가장 큰 공통점, 예수를 믿는 믿음, 십자가와 부활 복음이" 있습니다.

 

제각각 "다르지만, 훗날 천국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원히 죽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땅에서 일시적인 공통점도 있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영원한 공통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달라도, 우리가 복음 안에서, 주님 안에서 공통점을 찾고 지키면, 서로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고, 양보와 배려로 탁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마귀는 일시적 차이점을 보게 하지만, 성령님은 영원한 공통점을 보게" 합니다.

 

복음서에서 "사도들은 서로 합력하지 못했고, 주께서 잡히시던 밤까지 '누가 큰지!'" 다투었습니다. 주님께서 "붙잡히던 밤까지 '누가 큰지!' 싸우던 그 제자들을 보시며" 어땠을까요? 그런데 "사도행전은, 그렇게 다투던 제자들이 동역했다." 말씀합니다. 이유는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고, 가장 큰 공통점인 복음과 예수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시각이 사람과 세상을 보면 차이점만 보이지만, 예수를 보면, 합력의 길이" 열립니다.

 

교회 "성장은 유행하는 사역과 프로그램보다, 우리가 공통점인 예수와 복음을 먼저 바라보아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서로 공통점을 계속 보며 동역할 때, 내 신앙과 교회는 이전보다 훨씬 탁월해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한주는 물론 계속, 우리가 차이점보다 하나님, 복음이란 공통점을 붙들고, 탁월함을 이어가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안디옥 교회의 탁월함은, 한 목적을 위해, 경쟁보다 합력함이 더 큼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매일 일어난 모든 상황과 처지를 일일이 다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결과와 중요한 사건과 인물만 소개하는데, 누가는 본문에서 다섯 명 일꾼을 소개"합니다. 당시 "다섯은 자기를 주장함보다, 주를 섬겨 금식하며 성령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나바, 니게르, 루기오, 마나엔, 사울, 그 이름의 순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선민은 "중요성에 따라 사람 이름을 기록했는데, 당시 바나바가 가장 중요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은 다섯 중 맨 끝, 가장 영향력이 작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경쟁하거나 다투지 않았고, 성령님께 금식하며 기도했고, 바나바와 사울을" 택했습니다. 무엇보다 "다섯이 행하던 사역을 셋이 한다면, 그 부담이 더 커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복음 증거를 위해, 경쟁보다 합력을 택했고,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다섯의 연합과 일치는,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탁월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안디옥 교회는 이 탁월함을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유지해" 나갔습니다. 속담에 "'이왕이면 다홍치마!' 같은 값이면 더 좋고 나은 것을 선호함을"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보다 더 낫고, 더 괜찮고, 더 돋보이고, 더 우월해 보이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어쩌면 "주변 사람이 나를 더 낫다고 인정해 주지 않아서, 일부러 나를 더 과시하고, 경쟁하며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나를 나타내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과열경쟁으로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살고 보자!' 사고가" 넘쳐납니다. 문제는 "경쟁에 이겨서 최정점에 서는 사람은 좋겠지만, 모두가 다 최정점에 서서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합력은 소수보다 더 많은 다수가 좋을 수 있고, 누릴 혜택도 더" 커집니다. 그렇게 "합력은 나와 주변 모두, 교회 공동체까지도 훨씬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놀랍게도, 사자나 코끼리가 아니라 개미 떼"입니다.

 

아무리 "큰 동물이라도,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합력해서 공격하면, 이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한국인을 '독 속의 게'로 비유하며 비판"합니다. 독에 "게를 넣으면, 한 마리일 경우 충분히 기어 나올 수 있는데, 여러 마리가 함께 있으면, 기어 나오려는 게의 뒷다리를 다른 게가 물고 늘어져서, 도저히 독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우리 중 누구도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똑똑할 수 없다!'" 말했습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21세를 주도하는 것은 리더십이 아닌 파트너십이다.'" 말합니다. 과거는 "공동체에서 리더의 비중이 컸지만, 이제는 리더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됨보다, 소통과 합력을 강조하는 파트너십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목회자와 장로들의 노력으로만 탁월해질 수 없고, 모두가 함께하는 파트너십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각자 받은 은사대로, 주어진 사역 현장에서 파트너로 합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파트너십을 부인하고 깨기에, 탁월한 잠재력이 있으면서도, 탁월함에서" 멀어집니다. 사도행전에서 "'바나바와 바울로' 부른 순서가 행전 13:43절부터 '바울과 바나바로'" 바꿉니다. 당시 "바보에서 바나바보다 바울이 설교하여, 큰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경중에 따라 그 이름을 기록하는데, 그 순서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핵심은 "당시 바울과 바나바가 경쟁하기보다 합력하며, 이렇게 순서가 달라졌던 것"입니다.

 

게다가 "사도행전은 계속 '바울과 바나바' 순서를 지키며 바울을 탁월함을 계속" 강조합니다. 이처럼 "바나바의 탁월함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경쟁보다, 자기를 낮추면서까지 합력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리더십보다, 합력과 연합을 추구하는 파트너십이 더" 강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주일마다 주방과 친교부, 찬양 대와 찬양팀, 교육부와 재정부, 새 가족부와 예배부, 방송과 중보기도, 총무부와 평생 교육부, 모두가 파트너가 되어 곳곳에서 헌신하며 수고"합니다. 이에 "바로 나부터 경쟁보다 파트너십을 기억하고 실천하면서 동역해야!" 합니다.

 

그렇게 "복음 안에서 경쟁보다 동역함이 더 강해질 때, 교회는 날마다 더 탁월해져 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탁월해져야 내 신앙, 내 가정, 내 삶의 터전도 탁월함을 유지하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주도 "우리가 매사에 경쟁과 견제보다 연합과 일치, 합력을 이뤄가는 성숙함으로, 탁월함의 은혜를 입어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