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칼럼/2023

'여기가 좋사오니!'를 넘어서(230115)!

다솔다윤아빠 2024. 7. 14. 04:04

'여기가 좋사오니!'를 넘어서!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만한 사람이 있다." 교훈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세 사람이 아니라 삼 백 명이 있어도, 스승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게 정말 배우려는 마음, 성장하려는 마음이 있는지에 있습니다. 실제로, 배우려고 하면,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사소한 무엇인가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지만, 현실에 안주하려 하면, 아무리 좋은 스승이 가르침을 주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성장하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성장하기를 멈추면 그때 비로소 늙는다.' 말했습니다. 여기서 '성장하는 사람''배우는 사람'으로 바꾸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팬더믹은 바쁘고 분주해서, 항상 외향적이었던 우리 삶을 점점 내향적으로 바꾸었고, 관계마저도 점점 좁아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은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것보다, 단지 보고 읽고 즐기려는 의도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내향적 삶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배우려는 열정,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마저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팬더믹이 여전히 힘들지만, 그렇다고 계속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다면, 어쩌면 이는 소중한 삶을 낭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가 좋사오니!' 변화 산에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베드로의 고백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수록, 더더욱 배우려는 자세, 받아들이려는 자세로 살아갈 때, 우리 삶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삶은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벧후 3:18절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말씀합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기독교인이 됨이 끝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되었기에, 더욱 배워가며 주님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항상 동행하십니다. 생각할수록, 누구도 마치 곶감을 빼먹듯, 과거에 쌓아놓은 것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있던 곶감에 또 다른 곶감을 꽂아가며 더 풍성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만일, 배우려 하지 않고, 과거 신앙에만 안주한다면, 누가 이런 모습을 지혜롭다고 하겠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문하고, '여기가 좋사오니'를 넘어서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배워야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고, 마침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배워야 더 깊이 깨달아서 내 가족과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더 감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교회는 물론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 나이와 상황과 무관하게, 성경의 이야기, 하나님 이야기, 구원의 이야기, 세상에서 선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이야기 등을 배우며 살아가라고 도전하십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녹슬게 내버려 두지 말고, 항상 배우려는 열정으로 하루하루 살아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는 승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