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01) - 예수를 높이며 사순절을 시작하려면.

다솔다윤아빠 2024. 8. 1. 03:17

@ 2023년 사순절 특새(01-230222) 예수를 높이며 사순절을 시작하려면(11:1~10).

 

* 여러분은 "사복음서 중에서, 주님의 마지막 주간, 고난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 구체적으로 "마태는 28/7, 마가는 16/5, 누가는 24/4, 요한은 21/9장을 고난주간에 할애"했다.

- 이처럼 "사 복음서에서 주님의 고난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이고, 주님의 공생애 중 발생한 사건이 총 274건 중, 64건이 고난주간에 집중될 정도로, 고난주간은 참으로 중요한 기간"이다.

- 특히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복음의 핵심이 고난주간에 집중되었기에, 이를 깊이 묵상해야!" 마땅하다.

 

*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며 회개와 경건으로 내 신앙을 점검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절기"이다.

-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부활주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경건하게 지켜야 할 절기"이다.

- 부임 후 "사순절마다, 2020년에는 다니엘서를 묵상했고, 2021년에는 야고보서를 묵상했고, 2022년에는 아브라함의 묵상하였고, 올해는 '마가가 말하는 고난주간을 따라서'라고 정하여 사순절을 보내고자" 한다.

- 1년 중 "40일은 그렇게 길어 보이지 않지만, 매일 새벽기도로 나가는 사순절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다.

 

* 생각할수록 "올해도, 쉽지 않고 버거울 수도 있지만,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며 사순절 특새를 시작하려!" 한다.

- 마가는 "주님의 고난주간 시작을 주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으로" 말씀한다.

- 당시 "예루살렘 주민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며 주님을" 높였다.

- 물론 "불과 6일이 지나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지만, 본문에서는 주님을 높이며" 환영했다.

- 이를 묵상하며 "올해 사순절은 무거움보다, 주님을 환영하며 높였던 선민의 마음으로 시작하기" 원한다.

 

* 만일 "올해도 사순절을 또다시 형식적으로 맞이한다면, 이번 특새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

- 그러나 "우리가 팬더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튀르기예 지진과 고물가 시대 중에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이기 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결단과 각오로 말씀 앞에 선다면, 우리 삶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 바라기는 "2023년 사순절 특새, 마가가 말하는 고난주간을 따라가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원한다.

- 오늘 "첫날, 우리가 예루살렘 선민처럼 어떻게 하면 주님을 높이며 사순절을 보낼지!" 살펴보자!

 

예수를 높이며 사순절을 시작하려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옴을 넘어,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인간의 "경험은 삶으로 얻은 직접적인 체험과 책과 구전, 영상을 통해 얻은 간접적 체험으로 나눌 수" 있다.

- 물론 "간접적 체험을 통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의 문화와 학문, 삶을 배워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그러나 "옛말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처럼, 직접적인 체험이 훨씬 더 큰 능력과 힘이" 있다.

- 무엇보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반드시 간접적 신앙이 아니라, 직접적 신앙이어야!" 한다.

- 그러므로 "내 배우자와 부모, 자녀가 아무리 신실해도, 구원은 내가 직접 하나님을 믿어야 받을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간접적 신앙, 옆에서 빙빙 도는 형식적 신앙이 아니라, 믿음과 복음 안에서 들어와야!" 한다.

- 본문 1절에서 "주님은 예루살렘 가까이 오셔서, 두 제자를 보내며, 타실 나귀를 준비하게" 하셨다.

- 당시 "주님께서 익명의 두 제자에게 말씀하실 때, 주님은 분명히 예루살렘에 가까이" 계셨다.

- 그러나 "본문 7절은,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비록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는 정확한 표현은 없지만, 주님께서 성안으로 들어오셨음을 알 수" 있다.

 

* 문제는 "당시 가까운 제자들조차, 누구도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심의 의미를" 몰랐다.

- 어쩌면 "열렬한 환영을 받았기에, 그 주 금요일에 있을 십자가 죽음이 더 힘들고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오심의 의미, 십자가의 죽음, 자신의 살과 피를 다 드리기까지 느꼈던 두려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성취됨을 모두 알고, 그래도 결연함으로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셨다.

- 이처럼 "능력과 변화는, 은혜가 가까운 곳에 머무는 것보다, 은혜 안으로 들어와야 가능한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가까운 곳, 간접적 신앙을 넘어, 주님 안으로, 직접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

-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가고, 과거보다 그 영향력이 계속 떨어지고" 말았다.

- 이유는 "기독교인이 주님과 복음 안으로 들어와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보다, 주일마다 교회 마당만 밟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신앙, 핵심이 아닌 주변에서 맴돌기 때문" 아닐까?

-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기독교인보다, 흉내만 내는 신앙, 그림의 떡, 종이호랑이 신앙인이 많기 때문"이다.

 

* 분명한 것은 "종이호랑이와 그림의 떡은 생생해 보일 수 있지만, 두려움과 포만감을 줄 수" 없다.

- 물론 "주님과 멀리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 낫지만, 가까이함보다 주님 안으로 들어와야 더 능력이" 있다.

-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함께 가나안에 왔지만, 그들이 내린 삶의 뿌리가 달랐고, 맺은 열매도" 달랐다.

- 당시 "롯은 삼촌 아브라함을 의지하여 가나안까지 왔고, 아브라함처럼 소돔에서 손님을 대접할 정도로 삶과 신앙을 배움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가지!" 못했다.

 

* 그래서 "보기에 좋은 소돔을 택했고, 소돔이 패망한 후, 아브라함을 찾지 않았고, 딸들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맺어서, 선민에게 가장 짐이 되는 모압과 암몬을 낳고" 말았다.

- 반면에 "아브라함도 삶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항상 하나님 안에서, 말씀과 은혜 안에서" 살았다.

- 핵심은 "하나님과 가깝게만 있었던 롯이 하나님 안에 있었던 아브라함을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여전히 "팬더믹과 전쟁, 지진과 고물가 시대는 우리 삶을 버겁게 하기에, 더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 비록 "전에 해이한 믿음으로 살았다면, 이번 사순절 기간에 주님께 가까이 와서, 주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 1: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한다.

- 올해 "사순절에 주님을 영접한 신앙이 더 굳건해지고, 그렇지 않았다면, 결단하여서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

- 그렇게 "주님을 영접할 때, 버거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녀로 권세 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순절 "시작인데, 결단하여 우리가 주님처럼 예루살렘 안으로,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는 은혜가 있기" 원한다.

 

2. 예수를 높이며 사순절을 시작하려면, 사순절 기간에, 결단하고 내 삶과 시간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 18:31절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말씀한다.

-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이방인에게 넘겨져 희롱과 능욕, 침 뱉음과 채찍질 당할 것을 이미" 아셨다.

- 나아가서 "주님은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도" 아셨다.

- 물론 "주님도 두려움으로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 요청했지만, 큰 결단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이다.

 

* 이를 보면,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계획 없이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고, 결단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 비록 "고난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인류 구원을 위한 소명을 아시고, 자기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 구원은 "이처럼 주님께서 다 아셨지만, 죽음까지 결단하고 자신을 드린 은혜로 얻은 영적 선물"이다.

- 문제는 "이처럼 거룩한 결단으로 자신을 드린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신실한 신앙생활을 위한 결단이 없고, 여전히 주님께 내 삶과 헌신을 드리기보다, 무엇인가를 더 받고자 할 때가" 많다.

 

* 본문 7절은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말한다.

- 여기서 "(겉옷을) '얹어 놓다. 원어 에피발루신은 무엇인가를 ~위에 던진다.' 신속한 행동을" 강조한다.

- 이는 "제자들이 주님이 타실 나귀를 몰고 와서, 신속하게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등과 길에 깔았음을" 말한다.

-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고난과 죽음까지 아셨던 주님께서 직접 그 나귀에 타셨다는 것"이다.

- 당시 "누구도 몰랐지만,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아시고, 그래도 다 드리려고 나귀 등에 올라타셨던 것"이다.

 

* 이는 "누구도 몰랐지만,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 당신의 살과 피, 전부를 다 드리겠다. 어떤 어려움에도 받은 사명을 다해서 인류를 구원하겠다.' 엄청난 결단이 포함된 행동"이었다.

- 내가 "알건 모르건, 이처럼 주님께서 결단하여 전부를 드린 헌신으로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더더욱 주님께서 자신을 주신 결단을 더 깊이 알고자, 이 사순절을 보내야!" 한다.

-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이 작은 결단으로 하나님을 위해 드린 것을 창대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 영락교회는 "196088일에 교회 마당에 김응락 장로 순교 기념비를 웅장하게" 세웠다.

- 영락교회는 "195064일 교회를 헌당했는데, 불과 3주 만에 6.25가 발발하여 모두 피난을 가야!" 했다.

- 당시 "한경직 목사까지 피난을 결정했는데, 김응락 장로가 '교회를 버리고 피난 갈 수 없다.'" 나섰다.

- 얼마 후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하여, 영락교회 예배당을 무기고로, 사무실을 연락사무소로 삼고" 썼다.

- 문제는 "인천상륙작전이 일어나자, 북한국은 교회를 지키던 김응락 장로를 사살하고 후퇴"하였다.

 

* 당시 "김응락 장로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온 것을 알고, 북한군에게 잠깐 기도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 김응락 장로는 "본당을 향한 계단을 오르면서, 찬송 95'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뿐일세!' 찬양하고, 45세에 순교"하였다.

- 김응락 장로는 "구원받은 믿음에 감사하며, 죽음으로 교회를 지키겠다고 자신을 드렸던 것"이다.

- 신앙은 "받고 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결단하여 드리는 것으로 더 신실해질 수" 있다.

 

* 부족하지만 "받은 은혜와 구원을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다고, 드리겠다고 결단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결단하여 드림보다, 오히려 받을 것에만 더 치중하며 신앙생활을" 한다.

- 사순절은 "힘들어도 은혜를 받아야 할 시기이기에, 우리 시간과 마음을 드려서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 분명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받는 사랑에 감격하여 드리는 것과 받는 은혜는 정비례할 수밖에" 없다.

- 첫날인데, "우리가 작정하여 사순절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며,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누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