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11) -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다솔다윤아빠 2024. 8. 2. 00:58

@ 2023년 사순절 특새(11-230306)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에(12:41~44).

 

* 지난 "2015-09-07, 경기도 고양시에서, 이라크인 남성이 수금으로 받은 거액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다.

- 남성이 "돈이 든 가방을 차 위에 올려놓고, 전화 중, 그만 가방을 챙기지 못하고 출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 남성이 "5분 후, 돈 가방을 기억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지만, 당연히 가방이 없어서, 경찰에 신고"했다.

- 놀랍게도 "경찰은 신고를 받고서, 불과 1시간 만에 가방을 찾아서 이라크인에게" 돌려주었다.

- 이유는 "거리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돈을 주운 사람과 차량을 조회하여 그처럼 빨리 돈을 찾았던 것"이다.

 

* 최근 "한국은 비명 등 이상한 소리까지 탐지할 수 있는 '귀가 달린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 그래서 "한국 경찰은 CCTV와 차량 블랙박스의 발전으로, '한국에서 뺑소니는 불가능하다!'" 장담했다.

- 20:12절은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서 CCTV와 블랙박스보다 더 정확한 생명책이 있다.'" 말씀한다.

- 이를 보면, "내가 알건 모르건, 부인하건 인정하건, 하나님께서는 매사에 나를 다 보고 계심을 알 수" 있다.

 

* 물론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심은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나를 보호하심과 책임지심도 절감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주고, 강요하고, 힘들게 하려고 이렇게 보고 계심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 본문은 "주님께서 성전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셨고,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시는 내용"이다.

- 여기서 "우리는 '누가 헌금을 많이 했는가!' 이보다 '주님께서 헌금하는 모든 영혼을 보셨음'이 더 중요"하다.

- 주님께서 "부자와 가난한 과부, 겉으로 드러나 모습, 옷차림과 태도까지 다 보고" 계셨다.

 

* 나아가서 "그들이 드린 헌금 액수와 어떤 마음으로 헌금했는지도 모두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셨다.

-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 그래서 "기독교인조차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제한적인 존재로 만들며 살아갈 때가 적지!" 않다.

-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보고, 알고 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 사순절 "11일째,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보고, 알고 계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주어진 삶에서 정성을 다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한다.

 

* 과거 "한국의 영락교회는 교인 가정에서 장례가 나면, 경조 부 부원들이 먼저 찾아가서 추도 예배를" 진행한다.

- 당시 "경조 부원이 수의를 준비하고, 상복을 만들고, 관을 준비해 오고, 묘지까지 끝까지" 도왔다.

- 당연히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유족의 경우, 교회의 정성과 사랑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이를 보면,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할 때, 하늘의 풍성한 복이 임함을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도 피상적이고, 형식적, 습관적인 것을 버리고, 항상 정성을 다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우리 예배, 찬송과 기도, 봉사와 헌신, 헌금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이" 필요하다.

- 실제로 "음식도 정성을 다한 음식이 맛있듯,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정성을 다함을 흠향하지!" 않을까?

-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는 표징으로, 항상 첫 열매, 첫 것을 하나님께" 봉헌했다.

-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정성을 다하길 원하며" 살아간다.

- 그렇게 "오늘 우리 삶에 정성을 다함이 사라졌기에, 진심이 사라지고, 깊은 영적인 교제도 사라지는 것"이다.

 

*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서 두 렙돈, 한 고드란트 헌금을 드렸는데, 주님은 과부의 헌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 본문 43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말씀한다.

- 렙돈은 "팔레스틴 화폐 단위 중 가장 작았고, 로마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 고드란트의 1/2과 가치가" 같았다.

- 게다가 "본문 43절에서, '넣다! 원어는 부정 과거형 동사로' 딱 한 번으로 끝났음을 강조"한다.

 

* 반면에 "부자는 본문 41절에서, '넣다. 원어는 시제가 미 완료로, 계속 헌금을 드렸다.' 이 사실을" 강조한다.

- 이처럼 "과부의 헌금은 어려운 중에 너무 작게 그리고 한 번 드렸지만, 그 헌금에 정성이" 있었다.

- 그것도 "천지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최고의 정성을 다하여 드린 헌금이어서 칭찬을" 받았다.

- 주님은 "이를 통해, '헌금은 액수보다 얼마나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는가!'가 더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 나아가서 "정성을 다하는 삶은 헌금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 신앙생활 전반에 적용되어야 할 도전"이다.

 

* 정성은 "(Quantity)과 질(Quality)이 모두 중요한데, 현대인은 질보다 양을 선호할 때가 더" 많다.

-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한 분의 목소리가 크고, 정성을 다해서 드린 헌금이 외면당할 때도" 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보시고, 양과 질을 함께 보심을 기억해야 하고, 그래서 정성을 다해야!" 한다.

- 우리가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려면,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확신하고 살아가야!" 한다.

- 실제로 "인간은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분에게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 베다니 "나사로의 누이동생이었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을 뵐 때마다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 마르다는 "정성을 다하는 봉사로, 마리아는 정성을 다한 말씀 경청으로 주님을 흡족하게" 했다.

- 혹자는 "두 자매를 비교하며, 마르다보다 마리아를 인정하지만, 주님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

- 오히려 "성경은,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봉사와 헌신에도, 말씀 경청에서 모두 정성을 다하라고" 도전한다.

- 이유는 "성부 하나님께서도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희생하며, 최고의 정성을 다해서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 성자 하나님도 "거처도 없이, 박해와 핍박 중에도, 우리를 살리려고 정성을 다하셨기 때문"이다.

- 많은 "사도가, 환란과 핍박 중에도, 정성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서, 오늘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 이처럼 "하나님은, 부족해도, 우리 삶에서 할 수 있는 최선과 정성을 다함을 기쁨으로" 흠향하신다.

-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여러분은, 하나님 일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는가?

- 사순절 "11일째, 오늘도 우리가 정성을 다하는 신앙으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리기" 원한다.

 

2.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 모든 "인간에게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기 원하는 승인 요구가 본능으로 자리하고" 있다.

- 이유는 "비록 인간이 죄인이지만, 승인 욕구가 만족 되어야, 자기 존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처럼 "승인 욕구 때문에, '칭찬하는 사람과 칭찬을 받는 사람 모두, 건강하게 될 수 있다.'" 말한다.

-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칭찬하면, 칭찬이 반복되면, 칭찬받은 그대로 사람의 삶이 바뀌어 간다.'" 말한다.

 

* 문제는 "인간의 칭찬도 힘이 있지만, 인간의 칭찬은 상황과 시간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 실제로 "오늘은 상사의 칭찬을 받았지만, 내일은 꾸중과 책망을 들어서, 칭찬을 잃을 수도" 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칭찬은 인간의 칭찬과 비교할 수 없고, 우리 영혼과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다.

- 하나님의 "칭찬은 넘어진 나를 일으키고, 못 보던 것을 보게 하고, 못 듣던 것을 듣게 하는 힘이" 있다.

- 문제는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칭찬보다, 세상과 사람의 칭찬을 추구하며 살 때가 더" 많다.

 

*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본문 43~44절에서, 가난한 과부를 이렇게" 칭찬하셨다.

- "과부의 헌금이 모든 사람보다 많았다. 과부는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 여기서 "우리는 본문 43절에서, 주님께서 과부를 칭찬할 때, 제자들을 불러서 말씀하심에 주목해야!" 한다.

- 이는 "주님께서 비록 작게 드린 헌금이지만, 과부를 제자들과 모두가 듣도록 공개적으로 칭찬하신 것"이다.

- 당시 "아무도 모르게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가 주님의 공개적 칭찬을 듣고 얼마나 큰 힘을" 얻었을까?

 

* 반면에 "부자가 보기에, '뭐 그까지 액수로 저렇게 칭찬하시나!' 주님의 칭찬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주님은 과부 마음의 중심, 정성과 헌신을 아시고, 크게 칭찬하시고" 인정하셨다.

- 마침내 "과부는 비록 생활비는 부족했겠지만, 주님께 받은 은혜, 승인 욕구로 그 삶이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 본문은 "우리에게 헌금을 강요하려고, 우리를 책망하려고, 부담을 주려고 기록된 내용이" 아니다.

- 과부의 "작은 헌금을 통해서, 우리가 사람과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도전하신 것"이다.

 

*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원하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과 지혜를 잘" 모른다.

- 나아가서 "하나님께 칭찬받기 원하는 간절함도 없고, 하나님의 칭찬이 주는 능력도 잘 모르고" 살아간다.

-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칭찬은 이 땅은 물론 천국에 이르기까지, 내 삶을 책임지는 힘이" 된다.

- 나아가서 "하나님의 칭찬은, 부족하고 연약한 내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와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칭찬을 반드시 사모해야 하고, 받아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 하나님은 "욥기 1:8, 2:3절에서, 욥을 참소하는 마귀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을 크게 칭찬"하셨다.

- 물론 "욥은 마귀의 참소로, 물질과 자녀, 건강까지 다 잃고 너무도 비참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 그러나 "하나님은 깊이 칭찬하신 욥, 비록 부족함도 있었지만, 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주목하셨다.

- 그리고 "모든 시험과 환난을 다 극복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욥에게 처음 주신 복보다 두 배의 복을" 주셨다.

 

* 하나님의 "칭찬이 넘어진 욥을 여전히 보고 계셨고, 끝까지 책임지시고, 동행하셨음을" 말씀한다.

- 사순절은 "내 위주로 살던 삶을 다시 하나님 위주로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고, 세상에서 받던 칭찬과 인정보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인정받겠다는 결단의 시간"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의 능력과 힘을 바로 알고 깨닫기를" 원한다.

- 그래서 "사순절을 보내며,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하나님께 칭찬받으며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