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13) - 고난과 박해가 극심해도.

다솔다윤아빠 2024. 8. 2. 01:00

@ 2023년 사순절 특새(13-230308) 고난과 박해가 극심해도(13:9~13).

 

* 지난 "21, 모 일간지는 '북한에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보도했다.

- 북한은 "팬더믹 상황의 악화와 국가적인 경제난으로, 추운 겨울에도 연탄은 물론 난방용품도 없어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구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동상에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 그런데도 "북한 정부는 단지 자력갱생(自力更生)이란 말만 되풀이하며 국가적 지원이 전혀 없다고" 한다.

- 이로 인해 "익명의 북한 주민은, '이제는 이곳에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토로하기도" 했다.

 

* 우리 "삶도 녹록하지 않지만, 북한 주민의 어려움과 아픔, 그들의 고난을 생각하면, 그래도 타고 다닐 차, 따뜻한 침실이 있고, 따끈한 음식과 음료가 있음이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사람마다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이 다르지만, 어쩌면 미국에서 겪는 고난과 어려움은 경미 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인간은, 고난을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서, 자기 고난이 제일 힘들다." 토로한다.

- 문제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은, 누구에게나 극심한 고난이 있기에, 이를 이겨내야 미래가" 있다.

 

* 본문은 "종말이 가까이 오면, 사람들이 주의 백성을 박해하여 큰 고난에 빠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 심지어 "믿음 때문에 매질 당하고, 가족이 나를 대적하여 죽게 하고, 모두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말씀한다.

- 생각할수록 "참으로 두렵고 아찔한 상황이지만, 문제는 '주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다 아신다!'" 말씀한다.

- 나아가서 "본문은, '성령께서 우리 고난을 다 아시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받는다!'" 선언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박해가 극심해도, 절대로 낙심하여 패하지 말고,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 이유는 "고난과 박해에 이기고 지는 것은, 생사의 문제는 물론 영생과 영벌의 문제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 문제는 "극심한 고난과 박해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있다.

- 실제로 "고난과 박해를 대처하고 해석하는 방법, 마음가짐, 결단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분명한 것은 "우리도, 하나님도, 우리가 고난과 박해로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사순절 "13일째, 우리가 삶에서 당하는 극심한 고난과 박해를 어떻게 이겨낼지!" 살펴보자!

 

고난과 박해가 극심해도 성령의 가르쳐주심과 생각나게 하심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한다.

 

* 존 번연이 "투옥되었는데, 어느 날, 간수가 옥문을 열어주며, '집에 가서 하루라도 쉬고 오라!'" 말했다.

- 그렇게 "존 번연이 옥을 나섰는데, 얼마후 다시 옥으로 돌아와서, 간수가 '왜 돌아왔는지' 이유를" 물었다.

- 이에 "존 번연은 '당신의 호의는 고맙지만,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 여겨져서요!'" 답했다.

- 놀랍게도 "바로 그날 밤, 존 번연을 투옥했던 왕이 감옥을 시찰하러 와서, 존 번연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 이에 "간수는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저도 목사님도 살았습니다.'" 고백했단다.

 

*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가 있는데, 가장 지혜로울 수 있는 비결이" 있다.

- 그것은 "어렵고 힘들수록, 선택의 기준이 내 의지와 세상 상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이어야!" 한다.

-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를 가장 바른 길로, 안전하고 승리하도록 이끄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성령의 음성이 있지만, 이보다 내 소리, 고집에 따라 살아감에" 있다.

- 심지어 "내 고집과 생각대로 살아서, 더 큰 어려움을 계속 당해왔지만, 이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간다.

 

* 본문 11절은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말씀한다.

- 믿음 때문에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을 당하고, 모든 이의 욕을 먹을 때, 그 마음이" 어떨까?

- 생각할수록 "너무 당황하고, 억울하고, 두렵고 떨려서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 그런데 "바로 그렇게 고난과 박해가 극심할 때, 성령께서 할 말과 바른 선택을 주시겠다!" 약속하신다.

 

* 물론 "어렵고 힘들수록, 성령의 가르침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도움이 내게 안 와 닿을 수도" 있다.

-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극심한 박해와 어려움을 겪을 때,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이다.

- 이민자로 "살면서, 도저히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할 때가" 있다.

- 그러나 "바로 그때, 성령께서 내게 말씀을 가르쳐주고 생각나게 하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 만일 "내가 말씀을 모르는데, 어떻게 말씀으로 위기를 이길 방법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는가?

- 실제로 "내가 알고 기억한 말씀, 은혜받은 말씀이 위기와 어려움을 이기도록 나를 돕지!" 않겠는가?

- 달리 말하면, "항상 하나님 은혜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극심한 위기와 박해를 당할수록, 더욱 선명한 성령의 가르쳐주심과 생각나게 하심의 은혜가 있을 수밖에" 없다.

- 따라서 "부족하고 힘들어도, 우리가 말씀과 은혜 붙잡고 살아가면, 극심한 고난과 박해에 넘어지지!" 않는다.

 

* 아니! "성령께서 넘어지지 않게 하심을 넘어, 새로운 비전과 용기, 위로와 승리로 이끌어" 가신다.

- 바울이 "투옥 중 어렵고 힘들었을 때, 행전 23:11절에서,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용기를 주셨다.

-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승리한 후, 이세벨이 공격하자, 하나님은 왕상 19:18절에서,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말씀하셨다.

 

* 지금도 "성령님은 극심한 어려움과 고난에 빠진 우리에게, 때마다 일마다 필요한 말씀을" 주신다.

- 문제는 "성령님 말씀을 얼마나 바르게 분별할지, 얼마나 순종할지, 얼마나 신뢰할지에" 있다.

- 극심한 "박해와 고난은, 내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고 순종하고 신뢰함으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최근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과 고난이 크다면, 더더욱 사람이 아닌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 사순절 "13일째, 오늘도 매사에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고 신뢰하여 고난을 이기기" 원한다.

 

2. 극심한 박해와 고난에도, 끝까지 믿음으로 구원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 톨스토이는 "인간이 극심한 박해와 어려움, 실패에 직면했을 때, 네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말했다.

- "극심한 고난과 실패에 직면하면, 충격을 이기려고 술을 의지하여, 술에 취하여 사는 삶"이다.

- 그 외에 "낙담하고 좌절하여서,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 고난과 실패의 현실을 원망하고, 아예 현실에 냉담해지기도 하고, 고난과 실패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경우"이다.

- 오늘 "우리는 극심한 고난과 박해에,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를 모르지 않고, 아니! 너무 잘 알고" 있다.

 

* 그러나 "현실은 앎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세속적인 것을 찾고, 포기하고, 냉담한 채, 세상을" 살아간다.

- 물론 "사람이 겪는 고난과 어려움은, 누구보다 당사자가 가장 힘들고 아파서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 그래서 "누구도 타인이 겪는 고난과 어려움에 관해서 함부로 말하고, 판단할 수" 없다.

- 그러나 "4:15절은, 예수께서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직접 경험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심을" 말씀한다.

- 그러므로 "극심한 고난과 박해가 힘들지만, 그래도 넘어지지 말고 믿음으로 끝까지 이를 이겨내야!" 한다.

 

* 종말에는 "사회적 관계는 물론 가족관계도 깨져서 힘들게 될 것이지만,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주님은 "종말의 때에 받을 고난과 박해는 일부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말씀한다.

- 마가는 "모든 사람이 주의 백성을 미워한다고 하였지만, 마태는 모든 민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이는 "종말의 때가 되면, 가까운 사람은 물론 멀리 있는 사람까지도, 나를 박해하고 미워할 것을" 말씀한다.

 

* 어쩌면 "이 미움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견디기 힘든 고난일 수밖에" 없다.

- 그래도 "주님은 나부터 그 극심한 고난과 박해를 알지만, 끝까지 버티고 견뎌야 구원받는다!" 말씀하신다.

-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끝은 역사적 종말일 수 있고, 개인적인 죽음을 뜻할 수도" 있다.

- 문제는 "고난과 박해가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그럴수록 지지 말고 이겨야 한다!" 강조하셨다.

- 기독교인에게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감이 더욱 중요"하다.

 

* 이유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그나마 있던 믿음과 은혜마저도 다 부인하고 다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실제로 "우리는 힘들고 어렵다며 '틀렸어, 다 끝났어, 나는 안 돼!' 너무 쉽게 믿음을 포기"한다.

- 마귀의 "최종 목적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마침내 믿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 이를 위해서 "마치 우는 사자처럼, 지금도 곳곳을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 그러므로 "극심한 고난과 박해에도, 하나님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진짜 구원받는 믿음이" 아닐까?

 

* 20:9절은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말씀한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왕과 선민이 너무 두렵고 싫었을 것"이다.

- 그런데도 "하나님 주신 믿음과 사명이 있었기에, 박해와 고난 중에도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문제는 "만일 당시 예레미야가 힘들고 어렵다고 포기했다면, 성경의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 포기는 "잠깐은 편할 수 있지만, 훗날 후회와 한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클 수밖에 없는 단어"이다.

- 포기는 "성장하는 내 발목을 붙잡고,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떳떳한 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 그러므로 "극심한 박해와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포기를 이겨내야, 승리할 수" 있다.

-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려는 영혼을,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 사순절 "13일째,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포기를 이기고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