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30)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다솔다윤아빠 2024. 8. 3. 02:19

@ 2023년 사순절 특새(30-230328) 엘리 엘리 사박다니(15:33~41).

 

* 여러분은 "공공장소, 공원이나 공항, 터미널 등에서 부모를 잃어버리고 우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는, 모두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기에, 그 울음소리가 너무도" 서럽다.

- 어려서 "부모를 잃어버렸다.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아이가 느끼는 공포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민자라면, 이처럼 잃어버려지고, 버림받은 느낌을 한두 번은 느끼며, 절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 이민 "초기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막막함, 참으로 두려운 경험"이었다.

 

*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성자 하나님도 이처럼 잃어버려지고 버려진 감정을 온전히 느끼셨다!" 말씀한다.

- 본문 34절은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말씀한다.

- 여기서 "아람어인 사박다니는, '궁핍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돕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뜻"이다.

- 심지어 "고대 유대 문헌에서, '사박다니는 어떤 사람을 버려서 음부에 가게 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 짧지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단어에는 주님께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 하나님에게 잃어버려지고 버림받은 절규와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다.

- 분명한 것은 "여기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버린 척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버리셨던 것"이다.

- 그렇게 "독생자를 버리셔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영생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 이를 보면, "인간이 가지는 절망과 주님께서 느낀 절망은 유사해 보이지만, 그 원인이 너무도" 다르다.

 

* 사람의 "절망은 죄와 허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주님의 절망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원해서,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에 의해서 일어난 일, 어쩌면 자발적 버려짐이기 때문"이다.

- 분명한 것은 "죄인인 인간이 이처럼 성자 하나님께서 버려진 의미와 가치를 알면, 그 삶이 달라질 수" 있다.

- 사순절은 "이처럼 주님의 버려짐이 죄인인 나를 위한 버려지심임을 찾아가는 귀한 영적 여정"이다.

- 사순절 "30일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절규를 통해, 주께서 버려진 이유를 찾으며 은혜받기!" 원한다.

 

주님의 깊은 절규는, 끝까지 하나님 붙들고 살아가야 함을 교훈하시기 위함이었다.

 

* 회당장 "야이로가 12살 딸이 죽어가자, 딸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나와서 무릎까지!" 꿇었다.

- 그러나 "주님께서 야이로 집으로 가는 중, 12년 혈루 증 걸린 여인을 고쳐주며, 시간이 지연되고" 말았다.

- 게다가 "야이로 집에서, '이미 아이가 죽었으니 주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다!'라는 전언까지" 들었다.

- 과연 "여러분이 야이로의 상황이라면,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주님을 향한 반응이" 어떠했을까?

- 놀랍게도 "야이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주님 말씀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주님과 동행"했다.

 

* 외관상 "모든 것이 끝나 보였지만, 야이로가 끝까지 주님을 붙들었던 결과, 12살 난 딸이" 살아났다.

- 오늘 "우리의 문제는, 깊은 절규가 있을 정도로 큰일도 아니지만, 사소한 일에도 너무 변덕스럽다는 것"이다.

- 실제로 "헌신을 다짐해도, 기분 나쁘면, 조금 무시 받는다고, 차별이라 여기면, 금방 태도가" 돌변한다.

- 그렇게 "쉽게 돌변하고 변덕스럽기에,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사랑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 핵심은 "주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절규하신 이유는, 내 신앙이 끝까지 유지되게 하기 위함에" 있다.

 

* 본문 39절은 "(주님께서 운명하신 후),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말씀한다.

- 마가는 "주님을 하나님 아들로 고백한 영혼이 백부장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이 보아도, 주님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보였던 것"이다.

- 특히 "백부장은 '진실로, 알레도스, 확실하게 분명하게'라는 단어를 써서, 주님의 하나님 아들이심을 인정"했다.

 

* 백부장은 "주님의 깊은 절규 이후, 그래도 선하고 옳은 방향으로, 그 삶이 변했던 것"이다.

- 물론 "성경은 침묵하지만, 본문 이후에, 이 백부장이 다시 주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의심하고 거부"했을까?

- 백부장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목격하고, 그 후에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살지!" 않았을까?

-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선한 변화보다 악한 변화가 훨씬 더 많음에" 있다.

- 실제로 "불신자가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되기보다, 신실한 주의 백성이 실족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 그러나 "주님께서 전부를 드리며 절규하신 진짜 이유는, 우리가 죄인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바뀌어 살기 원하셨고, 그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고 끝까지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 믿음은 "가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기에, 성경은 믿음을 위한 선한 싸움을" 도전한다.

- 믿음을 "지켜야 하기에, 성경은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악한 마귀의 공격을 매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는 사냥개로 많이 쓰이지만, 경찰견이나 군용견으로는 쓰이지 못한다고" 한다.

- 이유는 "진돗개는 한 번 주인을 정하면, 죽을 때까지, 끝까지 주인을 바꾸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 반면에 "셰퍼드는 최고의 군용견이자 경찰견인데, 이는 주인이 바뀌어도 수일 내 적응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아마도 진돗개는 '개보다 못해!' 비방과 욕을 들으면, 어쩌면 크게 분개할지도" 모른다.

- 성경은 "우리가 신앙을 끝까지 지켜야 하기에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흔들리지 말라! 굳건해라!'" 말씀한다.

 

* 특히 "이런 표현은 평안할 때가 아니라, 절규와 낙담이 가득한 상황에서 선포된 하나님 말씀"이다.

- 그러므로 "우리도 삶이 어려울수록, 더더욱 주님께서 절규까지 하시며 나를 구하신 사랑을 기억해야 하고, 그 사랑을 붙잡고 어떤 미혹과 난관에도 실족하지 않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 그렇게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주님을 붙들어야, 훗날 주님을 뵐 때,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 사순절 "30일째, 우리가 주님의 절규를 기억하여, 끝까지 주님 붙들고 날마다 영적으로 승리하기" 원한다.

 

2. 주님의 깊은 절규는,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다.

 

* 포르투갈 "리스본의 살라자르 다리는 건축비용이 7,500만 불이" 소요되었다.

- 뉴저지 "글로스터시의 월터 휘트먼 다리는 건축비용이 9,000만 달러, 뉴욕 브루클린의 베라자노 내로우즈 다리는 무려 32,500만 달러의 건설비용이" 들었다.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다리는, 일본 시코쿠의 다섯 섬을 잇는 세토 오하시 다리로, 83천만 달러가" 들었다.

- 그런데 "이처럼 천문학적 액수의 다리보다 훨씬 더 비싸고, 더 소중하고, 고귀한 다리가 있음을" 아는가?

 

*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값비싼 다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 십자가"이다.

- 십자가는 "기독교인을 서로 이어주고, 하나님과 연결해 주는 다리, 천국을 향해 길을 열어주는 다리"이다.

- 이처럼 "십자가가 하나님을 향한 길을 열어주었기에, 오늘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문제는 "이처럼 고귀하고 값비싼 다리를 공짜로 주셨지만, 수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간다.

- 본문 38절은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말씀한다.

 

*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은 두께가 2~3cm 정도로 두껍고" 무거웠다.

- 그러므로 "이처럼 두껍고 무거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순식간에 찢어짐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 이는 "주님의 절규 후, 십자가 죽음으로 모두에게 지성소를 열어주신 하나님의 배려요 은혜"였다.

- 이처럼 "지성소 휘장이 갈라져서,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누구나 성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 이처럼 "휘장이 갈라져서, 더는 구약 제사, 짐승과 곡식을 드리는 제사가 불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 달리 말하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절규 후, 주님께서 하나님을 향한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 그러므로 "지성소 휘장이 갈라짐은 화목과 치유, 소통의 길을 열어주는 너무도 중요한 영적 사건"이다.

- 문제는 "이처럼 주님의 깊은 절규로 휘장이 갈라졌지만, 모두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 실제로 "혹자는 주님께서 열어놓으신 길을 깨닫지 못하고, 혹자는 알면서도 주변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를 거부하기도 하고, 혹자는 그 크신 은혜를 모른 채 무관심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 핵심은 "주님께서 깊은 절규로 휘장을 열어놓으셨기에,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더는 "구약처럼 제사장의 도움이 필요 없기에, 내 믿음과 고백, 내 결단으로 하나님께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 문제는 "길이 열렸지만, 들어가지 않는 무지와 불 신앙, 주저함과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

-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소가 열림보다, 열린 지성소로 내가 얼마나 믿음으로 들어가는가에" 있다.

- 그렇다면 "여러분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님의 절규로, 영생 길이 열려 있음을 알고 믿고" 살아가는가?

 

* 탕자가 "아버지 유산을 탕진한 후, 낙담과 좌절로 실족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갈 길이 열려 있음을" 알았다.

- 그래서 "비록 염치가 없었지만,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열린 길로 아버지를 향해 점점" 다가갔다.

- 그렇게 "열린 길로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기에, 탕자의 삶은 더는 노예가 아닌 아들로 인정을" 받았다.

-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서 절규로 열어놓으신 길로, 부끄럽고 면목이 없어도, 들어가야!" 한다.

- 더는 "체면을 따지고, 허세 부리지 않고, 열린 길로, 감사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가야!" 한다.

 

* 이유는 "주님의 절규로 열어주신 길은, 신분과 성별, 사람이 저지른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 누구라도 "주님을 믿고 회개한 영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영혼은 다 들어올 수" 있다.

- 이처럼 "죄인인 인간이 주님의 절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에, 복음이 귀하고 복된 것"이다.

- 반복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주님 열어주신 길을 안다면,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

- 사순절 "30일째, 우리가 주님께서 절규로 열어주신 길로, 믿음으로 나아가서, 부활을 체험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