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28)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다솔다윤아빠 2024. 8. 3. 02:17

@ 2023년 사순절 특새(28-230325)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15:6~15).

 

* 어떤 "교수가 강의 중, '내 말에 동의하면 손을 들라.' 말하자, 학생 대부분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 당시 "강의 중 오른손을 드는 것이 관례였는데, 유독 한 학생이 왼손을 들어서, 교수가 마음이" 상했다.

- 그래서 "왼손을 든 학생에게 '학생은 지금 내 말에 반대하나? 왜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들지?'" 물었다.

- 그래도 "학생이 말없이 왼손을 들자, 교수가 학생에게 다가갔는데, 놀랍게도, 그 학생에게 오른손이" 없었다.

- 사연을 "듣고 보니, 전쟁 중 적의 공격을 받아서 오른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 교수는 "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원인과 이유를 살피지 않고 경솔하게 판단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 세상 "모든 일의 결과는, 이에 상응하는 이유와 원인이 있지만, 우리는 이유와 원인을 살피려 하지!" 않는다.

-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일의 정확한 이유와 원인을 안다면, 그 결과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에 관해 잘 알지만, 그 이유와 원인을 아는 영혼은 얼마나" 될까?

- 교회와 "기독교인의 영적 침체는, 무엇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원인과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 아닐까?

 

* 유대인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를 살려보려고 노력했던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쳤다.

-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는, 유월절을 앞둔 하루 만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 오히려 "그 전에 주님의 사역과 말씀, 이적과 치유가 신성모독으로 오해되어, 계속 쌓여서 나타난 결과"였다.

-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진짜 이유는, 나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에" 있다.

- 아무리 "인간이 강퍅해도,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진짜 이유와 원인을 알면, 감사하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 문제는 "오늘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진짜 이유를 아는 기독교인이 점점 줄어가고 있음에" 있다.

- 달리 말하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지식에 머물러 있고, 체험적으로, 내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해도, 감동과 눈물이 사라지고, 냉랭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는데, '여러분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와 원인'"을 아는가?

- 사순절 "28일째, 어쩌면 복음의 가장 핵심,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이유를 같이" 살펴보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세상과 사람이 굳건하기보다 세속적 충동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 바울이 "3차 선교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할 때, 많은 사람이 바울을 막고" 만류했다.

- 이유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박해와 고난이 기다리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당시 "저명한 예언자 아가보는 물론, 많은 사람이 바울을 아끼고, 바울이 고생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바울은 비록 죽을지언정,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며, 예루살렘을" 향했다.

- 이처럼 "바울의 위대함은, 사람의 말과 평가보다 하나님만 바라보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음에" 있었다.

 

* 오늘 "우리는 가능하면 편하고 복잡하지 않은 것을 원하기에, 만일 바울처럼 고난과 박해가 기다린다고 하면, 아마도 대부분이 감사헌금 드리며, 처음 가졌던 생각과 결단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그러나 "분명한 것은, 흔들리는 믿음은, 나를 구원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 뜻과도 배치하게" 이끈다.

-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불과 5일 만에 돌변한 유대인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 처음에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던 무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라!' 완전히 달라졌던 것"이다.

 

* 이처럼 "한결같지 않은 믿음, 돌변하고 바뀌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더욱 아프게 할 수" 있다.

- 본문 11절은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말씀한다.

- 여기서 "충동하다. 원어 아네세이산이란 단어는 '지진처럼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다, 타인을 강하게 자극하다. 선동하다.'란 뜻으로, 당시 대제사장이 사람들을 얼마나 흔들어 놓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 안타깝게도 "선민은 자의가 아니라, 충동에 휘말려서, 생각 없이, 성자 하나님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 충동, "이는 믿음이 굳건하기보다 불신이 더 깊었기에, 무책임하게 흔들고, 흔들리고 말았음을 강조"한다.

- 처음에는 "그렇게 환영했던 무리가, 원인과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충동으로 주님을" 죽였다.

- 충동으로 "성자 하나님 대신에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바라바를 선택"했다.

- 만일 "당시 선민이 주님의 오심이 구약의 예언대로 오셨고, 주님의 사역이 구약의 성취임을 알았다면, 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 그 이유와 원인을 알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 문제는 "오늘 우리 신앙도 굳건하지 않고, 많은 경우, 충동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릴 때가 너무" 많다.

- 어떤 경우는 "굉장히 신실해 보이는데, 어떤 경우는 충동으로 이해하지 못할 고집과 궤변에 빠지기도" 한다.

- 입술로는 "가장 의로운 척하면서, 실제 신앙생활은 기독교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신실하게 지키지!" 않는다.

- 생각할수록 "원인은 예수의 십자가 복음, 그 원인과 이유를 내가 머리로만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 이를 보면, "분쟁과 다툼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를 머리로만 알고 살아가기 때문" 아닐까?

 

* 현대사회를 보면, "이데올로기가 흔들리고, 전통적 가치관 중 가족과 결혼 개념도 흔들리고, 심지어 지구가 흔들려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이로 인해 모두가 불안과 공포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

- 문제는 "굳건해야 할 것들이 흔들리면서, 우리 삶과 세상이 점점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 그런데 "가장 큰 흔들림은, 하나님 말씀과 복음은 여전한데, 우리 믿음과 신앙의 흔들림이" 아닐까?

- 믿음이 "흔들리니 가치관과 선택이 흔들리고, 매사가 말씀과 반대로 향하여 세상도 흔들리는 것"이다.

 

* 딤후서 3: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한다.

- 모든 것이 "다 흔들려도 하나님과 복음은 굳건하기에, 우리가 더더욱 복음과 하나님 붙들어야!" 한다.

- 그렇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가 내 삶에 새겨져서, 흔들리는 세상에서 내 믿음부터 굳건해야!" 한다.

- 사순절 "28일째,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고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기" 원한다.

 

2.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만족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 속담에 "'말 타면 종 부리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말하는데, 이는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음을" 풍자한다.

- 실제로 "사람은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그 눈이 자동차를 향하고" 있다.

- 단칸방이라도 "내 집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큰 평수의 집과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 물론 "욕심이 삶에서 필요하고, 무엇보다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다면 욕심도 필요할 수" 있다.

- 그러나 "인간은 하나를 가지면 둘을, 셋을, 계속 늘어가기에, 만족이란 단어를 실천할 수" 없다.

 

* 그러나 "바울은 빌 4:11절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을 강조하고" 있다.

- 기독교인에게 "영적 자족은 성숙의 척도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 이유는 "자족하지 않기에, 우리는 복음, 심지어 십자가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할 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 주님 때문에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이 점점 깊어졌고, 이에 본문 14절에서 빌라도가 이렇게" 소리쳤다.

 

*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주님을 지키기보다, 성난 군중의 폭동을 두려워서, 자기 뜻을 꺾고" 말았다.

- 이에 "본문 15절은,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를 넘겨준 원인이 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함 때문임을" 밝힌다.

- 여기서 "만족, 원어 히카노스는 '무리의 기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이에 "누가는, 같은 내용을 소개하면서, 23:23절에서, 그들(선민의) 소리가 이긴지라!" 말씀했다.

- 그렇다면 "과연 선민이 빌라도가 군중의 만족을 위해 주님을 내어준 선택을 계속" 기뻐했을까?

- 나아가서 "선민이 주님 대신 살려달라고 했던 바라바도 빌리도를 평생 은인으로 알고" 만족했을까?

- 당시 "빌라도가 준 만족은, 엄밀히 말하면 만족도 아니고, 참으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만족"이었다.

- 그렇게 "빌라도와 선민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만족 때문에, 성자 하나님을 십자가로 몰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 이처럼 "죄인인 인간이 자기만족만 추구하면, 십자가 복음의 능력, 성자 하나님의 은혜까지 흐려지고" 만다.

-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바르게 알려면,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만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신다면, 그 결과는 하나님은 물론 인간에게 모두 이롭고 선하기 때문"이다.

- 반면에 "인간의 만족만 추구하면,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의 만족과 역행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 바울은 "6:1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말씀한다.

 

* 우리가 "알 듯, 바울은 당대 석학에게서 배웠고, 전도유망한 바리새인이었고, 헬라 철학에도 능통한 지식인이었고,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상류층 인사"였다.

-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에게는 자랑할 것이 많았지만,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 그리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 만족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했다.

- 이처럼 "인간이 무엇을 자랑하는지, 무엇에 만족하는지는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을 보여주는 잣대"이다.

 

* 인간이 "자기만족을 추구해도 절대로 만족할 수 없지만, 하나님 만족을 추구하면, 내 삶은 만족을 누릴 수" 있다.

- 어쩌면 "가장 추상적인 도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이 가장 구체적으로 복을 받는 비결"이다.

- 찬양 중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 되신 주님 찬양해!" 노래하고 있다.

- 쉽지 않지만, "저는 우리 고백도,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서,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알고 살아가기" 원한다.

- 사순절 "28일째, 오늘도 우리가 주 안에서 만족함을 찾아서, 십자가 붙들고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