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25) - 주님의 억울함과 답답함.

다솔다윤아빠 2024. 8. 2. 01:09

@ 2023년 사순절 특새(25-230322) 주님의 억울함과 답답함(14:53~65).

 

* 현대인은 "드라마를 보거나, 사회 현상과 정치를 평가할 때, '사이다 또는 고구마'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 먼저 "고구마는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할 때를 지칭하는데, 지난 2015년부터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 고구마의 "반대말은 사이다로, 고구마로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통쾌함을 뜻하고" 있다.

- 성경은 "사이다란 말과 유사한 의미로, 바울이 고전 16:18절에서,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 표현했다.

 

* 그리고 "잠언 25:13절은, 충성 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말씀한다.

- 신실한 "신앙, 구원받는 신앙은 하나님 마음을 고구마가 아니라 사이다,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의 악과 죄로 인해, 사이다보다 고구마 심정이 더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 본문은 "유대인이 주님을 재판하는 자리인데, 읽고 볼수록, 당시 주님 마음이 많이 억울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 본문 60~61절에서 "마가는 반복해서,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거늘" 말씀한다.

- 만일 "본문의 재판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면, 주님은 필요한 변론과 답변을 하셨을 것"이다.

- 그러나 "유대인은 억지로 주님을 정죄하고, 일치하지도 않는 증거로 주님의 죄를 확정하고" 말았다.

- 이처럼 "변증해도 바뀌지 않는 유대인의 강퍅함에, 주님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 문제는 "주님은 본문에서 정말 답답하고 억울하셨을 것인데, 오늘 우리를 향해서는" 어떠실까?

 

* 만일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억울하시고 답답해하신다면, 이는 절대로 작은 문제가" 아니다.

- 이유는 "주님께서 지금 나를 향해 답답하고 억울해하신다면, 지금 내 믿음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 신앙생활과 우리 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고구마인지 사이다인지' 생각해야!" 한다.

- 그래서 "비록 힘든 이민 생활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

- 사순절 "25일째, 우리가 오늘도 주님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풀어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자!

 

주님의 억울함과 답답함은 진실(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의 악함 때문이었다.

 

* 뉴욕대학교 "의대팀은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고 물을 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여" 발표했다.

- 변기 "뚜껑을 열고 물을 내리면, 무려 100여 종의 세균이 물과 함께 분무 되어서 바닥에 깔리게" 된다.

- 이렇게 "바닥에 깔린 세균은,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피부염, 장티푸스 콜레라까지 유발할 수" 있다.

- UN "세계 보건 자료도, '한 해에 무려 200만 명 이상이 화장실 세균감염으로 사망한다.'" 보고했다.

- 문제는 "많은 현대인이 이를 잘 모르고, 신경을 쓰지 않아서, 나쁜 습관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 이 외에도 "독버섯인 줄 모르고 먹어서 죽고,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로 죽고, 글을 몰라서 죽기도 하고, 이처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을 잘 몰라서, 손해와 피해를 보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일"이다.

- 4:6절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흥할 수 있다!" 말씀한다.

- 그러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길이요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을 잘 몰라서 주님을 더 답답하게 하고" 있다.

 

* 본문을 보면, "주님을 재판하는 과정이 마치 장난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먼저 "매번 '주님과 함께 죽겠다.' 장담했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주님 홀로" 남았다.

- 나아가서 "주변을 보면, 예수를 칠 증거를 찾았지만 얻지 못했고, 게다가 거짓 증언도 너무도" 많았다.

- 설상가상으로 "거짓 증언도 악한데, 그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았다! 본문 56&59절에서 두 번이나 말씀"한다.

- 게다가 "본문 61절에서, 대제사장이 주님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물었다.

 

* 그러나 "살펴보면, 이 질문도, 주님을 알려는 거룩한 호기심이 아니라, 시비와 올무를 위한 질문"이었다.

- 실제로 "주님께서 본문 62절에서,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말씀하셨지만, 이 답변을 제대로 몰라서, 주님을 십자가로 몰아가고" 말았다.

- 본문을 "읽을수록, 볼수록, 생각할수록, 본문에서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힘들었을까?

-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 오늘은 "과거 그 어떤 시대보다, 신학적 지식과 자료가 풍성해서, 누구나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다.

- 그러나 "현실을 보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보다, 인간 이성에 갇혀 있는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 실제로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보여주셨지만, 인간이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기에, 쉽게 실족하여, 믿음을 저버리는 가나안 성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 문제는 "오늘처럼 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를 보며,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 에서는 "이삭의 장자였지만, 장자 권의 은혜를 몰랐기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고" 말았다.

- 야곱은 "간절함으로 축복받기 원했지만, 에서는 이삭이 축복한다고 해도, 마지못해 받으려는 태도가" 컸다.

- 이유는 "에서가 이삭의 장자였지만, 하나님과 복에 관해 잘 몰랐고, 그래도 큰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문제는 "오늘 우리는 야곱처럼 하나님을 알려는 사모함이 부족하고, 에서처럼 하나님에 관해 너무 무관심"하다.

 

* 에서처럼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함께하심에 입술로는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큰 아쉬움과 불편이" 없다.

-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할까?

- 게다가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서,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할까?

-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기에,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길/진리/생명이신 하나님을 깊이, 바로 알아가야!" 한다.

- 사순절 "25일째,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승리가 있기" 원한다.

 

2. 주님의 억울함과 답답함은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을 서슴지 않는 세상의 악함 때문이었다.

 

* 힌두교와 "불교는 인생의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 원인을 '카르마, 전생 또는 업보 때문이다!'" 말한다.

- 그렇게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전 생애가 지금 내 삶을 주관한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마는 것"이다.

- 문제는 "아담도 범죄 후 아내인 하와에게 책임을 돌렸고,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말았다.

- 현대인 중 "혹자는 별자리에 책임을 지우고, 정신과 의사는 문제를 무의식 세계 때문이다." 말한다.

- 문제는 "이처럼 책임을 지기보다 회피함이 더 빠르기에, 세상은 점점 고구마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 그러나 "성자 하나님은 본인이 범죄 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죄를 책임지고 십자가를" 지셨다.

- 그렇게 "주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책임져 주셨기에, 오늘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까지 약속을 받은 것"이다.

- 문제는 "그렇게 주님의 책임지심으로 구원받았지만, 우리는 책임을 감당하기보다 회피함을 먼저" 찾는다.

- 이를 보면, "우리 주님은 책임지려 하지 않고, 성공에만 참여하려는 영혼을 볼 때, 얼마나" 답답하실까?

- 본문을 "묵상할수록, 혼자 남아 말도 되지 않는 재판을 받는 주님의 모습에,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 실제로 "주님과 무관한 주장, 거짓 증거를 주장하는 사람이,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었을까?

- 본문 58절에서 "혹자는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고, 성전을 사흘 만에 짓는다고 주님을" 고발했다.

-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깨닫지도 못한 사람이 주님에 관해 한 말을 책임질 수" 있었을까?

- 올무로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물었던 대제사장이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는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주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데, 무슨 책임을 질 수" 있었을까?

 

* 본문 64~65절에서 "주님을 사형해야 한다고 소리친 사람들, 주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친 사람들, 주님께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조롱한 사람에게 무슨 책임감이" 있었겠는가?

- 이처럼 "주님을 제외하고, 본문의 모든 인물은 되는 대로, 무책임하게 마구 말을 하고" 있다.

- 나중에 "전혀 책임지지 못할 말, '아니면 말고!' 이런 식으로 그냥 말을 보태고 있을 뿐"이다.

- 주님 "마음에 이런 영혼을 위해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하셨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하셨을까?

 

* 문제는 "오늘 우리도 어떤 일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기보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노력할 때가" 많다.

- 그렇게 "어떤 일을 맡았을 때, 책임감이 없기에, 일의 진척 속도가 느려지고, 문제만 더" 커진다.

- 무책임하기에 "일을 바르게 끝내지도 못하고, 일을 진행하면서도 많은 영혼을 실족함으로 이끌기도" 한다.

- 핵심은 "무책임하기에 삶에서 맺는 열매가 작지만, 하나님 믿고 책임감 있게 일하면, 성취와 은혜가" 있다.

- 그러나 "이처럼 책임감으로 이루는 열매와 성취, 간증과 상급은 아무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행전 20:24절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말씀한다.

-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데, 고난과 핍박이 기다린다고, 가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 그러나 "바울은 여러 사람이 예루살렘행을 만류했지만, 사명감으로, 큰 책임감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 그렇게 "바울이 책임을 다했기에, 예루살렘과 로마, 나중에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이어졌다.

 

* 오늘 "우리도 말만 하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 방관하고 무관심한 사람을 보면, 고구마처럼" 답답하다.

- 그러나 "영적인 기초, 영적인 상식을 지키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사람에게 덕과 은혜를 끼치는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보면,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좋다.

- 이처럼 "인간도 고구마와 사이다가 분명한데, 우리 하나님도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 사순절 "25일째, 우리가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해서, 하나님 마음을 답답함보다 시원하게 해드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