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32) - 부활! 놀라운 복음이기에.

다솔다윤아빠 2024. 8. 3. 02:20

@ 2023년 사순절 특새(32-230330) 부활! 놀라운 복음이기에(16:1~8).

 

*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188545, 당해 부활절은 참으로 의미가 깊고 특별한 날"이었다.

- 이유는 "1884년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혼탁했던 조선, 소망이 없는 은둔의 땅으로 불렸던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날이기 때문"이다.

- 당시 "아펜젤러는 첫 선교보고에서 부활절에 조선에 온 소감을 이렇게" 보고했다.

-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부활의 주님께서 조선에 복음을 주셔서 하나님 자녀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했다!"

 

* 기독교 "절기에서, 부활절도 큰 은혜인데, 부활절에 첫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함도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 이는 "그만큼 죽어가는 조선, 은둔과 우상숭배로 가득했던 조선이 영적으로 부활해서, 부활의 능력으로 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소망이 참으로 컸기 때문"이었다.

-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부활의 복음으로 시작되었기에, 우리도 부활의 능력과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

- 하지만 "오늘 우리는 부활절을, 단지 기독교의 절기로 알뿐, 나와 관계된 의미와 가치를 잘 모르고" 살아간다.

 

* 부활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죽었지만, 사망의 권세를 깨고 다시 사심을 선언하신 은혜"이다.

-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부활을 형식적, 습관적, 지식적으로 알뿐 아니라, 내 이야기, 체험적으로 알아야!" 한다.

- 십자가에서 "죽은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부활"하셨다.

- 하지만 "당시 주님을 신실하게 따랐던 여성들도, 부활보다, 주님의 장례를 더 잘 지내려고만 노력"했다.

- 그런데도 "하나님의 천사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고,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다!'" 말씀하셨다.

 

* 문제는 "부활이 내 이야기, 나를 위한 복음이 되면, 악한 세상의 고난과 아픔에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 부활은 "이 땅의 삶 이후, 다시 하나님 은혜로 살아나서, 영생을 누리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나아가서 그 능력으로 이 땅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 사순절 "32, 우리가 세상이 알 수 없는 놀라운 복음, 부활의 능력을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보자!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진 자답게, 주신 말씀을 다시 깊이 묵상하며, 믿음이 더 깊어져야 한다.

 

* 우리에게 "복음은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확신으로 깊어져야 할 영적 선물"이다.

- 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들어서 익숙하게 알뿐, 복음 안에서 깊어지지 않기에, 영적 위기가 자주" 찾아온다.

- 안악 "출신의 불량배 김익두 청년이 복음을 수용한 후,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그 삶이 바뀌어"갔다.

- 김익두 "청년은 세례받기 전, 신약을 100번 읽었고, 길에서도 성경을 읽다가 행인과 부딪힐 때도" 많았다.

- 김익두의 "위대함은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연구하여, 은혜가 더 깊어짐에" 있다.

 

* 부활도 "우리가 깊이 묵상할수록, 그 가치와 능력을 더 깊이 알 수 있고, 믿음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우리는 부활절을 매년 있는 연례행사, 계란 먹는 날로 착각하여, 깊이 묵상하지!" 않는다.

- 독일의 "신학자 에릭 사우어는, '기독교인은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서 살아간다. 예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활의 인생의 축으로 강조했지만, 오늘 우리에게 부활은 이처럼 중요하지!" 않다.

- 마침내 "부활의 심오한 가치와 능력을 잘 모르고, 심지어 내가 부활할 사실조차 잘 믿지 못하고" 살아간다.

 

* 본문 7절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말씀한다.

- 천사는 "부활의 주님을 전하며,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나도록, 다시" 언급했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모두 두려워서 숨어" 있었다.

- 그나마 "말씀을 들었던 여성들조차 천사의 말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 마침내 "여성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본문 8절에서, 참으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 분명한 것은 "여성들도 주님에게 부활 복음을 들었지만, 부활의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 그래서 "놀랐고, 떨었고,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부활에 관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안타깝지만, "주님은 이미 부활하셨는데, 남녀 제자들은 모두 깨달음이 없어서,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없었다.

 

* 그런데 "오늘 우리도 본문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매년 반복되는 부활의 복음을 들었지만, 그 가치를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깨달음도 없고, 믿음이 깊어지는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부활 복음의 가치를 많이 보고 듣고 배웠지만, 깊이 묵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마침내 "부활이란 단어가 익숙하지만, 오히려 믿음이 깊어지기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만" 한다.

- 부활의 "능력은 지식적 부활이 아니라, 체험적 부활이어야 하고, 내 이야기로 믿어져야 믿음이 깊어질 수" 있다.

 

* 부활의 "능력을 소유하면, 이 땅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굳건할 수" 있다.

- 부활의 "능력을 소유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왕 노릇할 것을 확신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다.

- 고전 15:6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말씀한다.

- 문제는 "주님의 부활을 500여 명이 목격했지만,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기도한 영혼은 120명뿐"이었다.

- 그렇게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믿음이 깊어진 영혼들이, 부활을 보고도 잊은 영혼과 어떻게 그 삶이" 같을까?

 

* 문제는 "'나는 과연 500명 중 120명에 속할지, 아니면, 380명에 속할지' 이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 이처럼 "성경은 부활이 귀하지만, 부활의 능력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는지에 따라, 그 믿음이 달라진다." 말한다.

- 그렇다면 "여러분은 올해 2023년 부활절을 앞두고, 부활의 의미와 가치 능력을 바르게 깨닫고" 살아가는가?

- 만일 "여전히 부활이 나와 무관한 개념이라면, 지금 내 신앙과 삶을 깊이 살펴보고, 되돌려야!" 한다.

- 오늘도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더 깊이 묵상하며, 내 믿음이 깊어져서, 은혜로 승리하기" 원한다.

 

2.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진 자답게, 내 상식과 다르다고 놀라서 도망가지 말고,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 19세기 "하와이 제도에 있던 몰로카이섬은 '저주의 섬'으로 불릴 정도로, 나병 환자들이 가득했던 땅"이었다.

- 당시 "33세의 벨기에 출신의 다미앵 신부가 몰로카이섬에 왔고, 복음을 전했지만, 열매가 거의" 없었다.

- 이유는 "나병 환자들이, 전도하는 다미앵 신부에게 '네가 우리 고통을 아느냐?'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다미앵 신부는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나병 환자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 마침내 "다미앵 신부도 나병에 전염되었지만, 사망 때, 얼굴에 나병으로 인한 부스럼이 사라졌다고" 한다.

 

* 당시 "상식으로, 나병은 더럽고 추악한 병이었기에, 가능하면 멀리 도망가고, 가까이 다가가지 말아야!" 했다.

- 그러나 "다미앵 신부는 나병 환자에게서 도망가지 않고, 담대하게 부활 복음을 전해서, 섬이 바뀌었던 것"이다.

- 이를 보면, "기독교인은 나와 다르고, 내가 모른다고 도망가기보다, 먼저 하나님 뜻을 물어야!" 한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뜻이라면, 도망가지 말고, 오히려 주의 뜻에 더욱 순종해야!" 한다.

- 오늘날 "복음의 계승은 이처럼 도망보다 담대함으로 앞으로 나서서 순종했던 영혼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이다.

 

* 본문 8절을 다시 보면,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청년의 말을 듣고)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말씀한다.

- 이처럼 "당시 제자들과 여성들은 주님에게 부활 복음을 들었지만, 이를 확신하지!" 못 했다.

- 만일 "주님의 부활과 복음을 믿었다면, 두려워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더 힘있게 사역하지!" 않았을까?

- 그러나 "이들은 부활의 능력과 무관했기에, 놀라서 떨며 도망갔고, 무서워서 할 말도 하지!" 못했다.

 

* 안타깝게도! "당시 여성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기에, 잠깐이지만, 부활 복음이 정체되고 말았던 것"이다.

- 문제는 "오늘 우리도 부활을 말씀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대 과학과 상식으로 부활을 평가하려!" 한다.

- 상식적으로 "인간이 부활한 경우가 없었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된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한다.

- 부활이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기에, 부활을 초대교회의 신화로 국한하기까지" 한다.

- 이처럼 "부활 복음을 그대로 믿지 못하기에, 전할 수 없고, 자신감도 잃고,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실제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 중, 부활 복음의 가치와 능력을 자신 있게 전할 영혼이 얼마나" 될까?

- 만일 "부활 복음을 영접해서, 자신 있게 전하며 살아간다면, 현대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갈 수" 있을까?

- 심지어 "현대 교회 안에는, 부활 복음을 깨닫기보다, 부활주일이니까, 교회에 한 번 나와주려는 경향도" 많다.

- 그런데도 "부활 복음을 회피하지 않고 전한 영혼들을 통해서, 오늘도 부활 복음은 곳곳에 전파되고" 있다.

 

* 바울은 "고후서 11장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중, 얼마나 많은 박해가 있고, 어려웠는지'"를 고백한다.

- 수없이 "많은 파선과 돌로 맞음, 투옥되고, 죽을 위기도 많고,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음을" 말한다.

- 그런데 "바울은 그런 어려움 중에도, 한 번도 도망가지 않았고, 침묵하며 복음을 회피하지!" 않았다.

- 그렇게 "많은 박해 중에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헌신했고, 그 복음이 오늘 내게도" 왔다.

- 오늘 "우리의 문제는 그렇게 위대한 부활 복음으로 살았으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도망가고 침묵하고" 만다.

 

* 분명한 것은 "부활 복음을 회피하든 전하든, 여전히 부활 복음은 역사적 사실이고, 은혜요 능력"이다.

- 나아가서 "부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그 손해와 피해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누가 더" 클까?

-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부활 복음을 회피하지 말고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

- 그럴 때 "내가 살아나고, 가정과 자녀들, 우리 교회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 오늘도 "악한 세상으로 나가지만, 부활 복음으로 도망가지 말고, 당당히 그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