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4 잠묵사(잠언을 묵상하는 사순절)

2024 사순절 잠묵사(14) - 미련하지 않으려면.

다솔다윤아빠 2024. 8. 20. 23:04

@ 2024년 사순절 특새(14-230229) 미련하지 않으려면(12:14~19)

 

* 복음서에서 "주님과 자주 대립각을 세웠던 바리새인은 '의로운 삶을 위해 구별된 자, 성별 된 자'라는 뜻"이다.

- 바리새인은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않았고,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하였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

- 그런데 "주님은 그런 바리새인을 외식하는 자라고, 신실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계속 책망"하였다.

- 가장 큰 이유는 "바리새인이 가진 영적인 독선, 항상 자기만 옳은 줄 알고,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 심지어 자기 의로움으로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주님조차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책망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인의 자기 의로움, 독선 때문일 것"이다.

- 많은 경우 "그릇된 길로 가면서, 세상의 요구와 책망조차 외면하고, 자기 의로움에 빠져서 너무도" 고집스럽다.

- 그렇게 "'나는 잘 믿어, 문제없어, 너희가 문제야!' 이런 태도로 일관하기에,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 교회도 "이처럼 독선, 자기 의로움에 빠진 영혼이 많을수록, 평안보다 분쟁과 다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독선과 자기 의로움에 빠진 삶을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지혜롭지 않다고 책망"한다.

 

* 본문 15~16절에서 "'미련하다.' 이 말이 반복되는데, 이는 절대로 미련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 여기서 "미련하다. 원어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경하고, 생활 태도가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 특히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와 삶을 항상 바르고 옳다고 생각해서, 매번 깊은 교만에 빠져서" 살아간다.

- 실제로 "죄인인 인간이 미련하면, 항상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타인에 관하여 비판적이고, 그런데도, 꼭 들어야 할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꼭 바꾸어야 할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다.

 

* 마침내 "미련하면, 영적인 성장과 성숙도 없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타인을 정죄함만 늘어갈 수밖에" 없다.

- 미련하지 "않으려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보다 내 눈에 있는 들보를 알고, 항상 나부터 나를 점검해야!" 한다.

- 그렇게 "매번 하나님 말씀과 은혜로 부족한 나를 교정한다면, 독선과 자기 의로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 사순절인데, "우리가 진심으로 독선과 자기 의로움, 미련함을 이기려면 어떤 삶이 필요할지!" 살펴보자!

 

미련하지 않으려면, 성령님의 권고를 들어야 한다.

 

* 본문 15절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말씀한다.

- 솔로몬은 "미련한 자는 독선, 자기 의로움에 빠져서, 권고를 듣지 않는다." 지적한다.

- 반면에 "지혜로운 영혼이 듣는 권고는 '충고 방책 계획'이란 의미로, 선한 목적의 모든 말을 포함하고" 있다.

- 특히 "듣다. 원어 솨마으는 청각적인 들음이 아니라, 들은 것을 바로 이해하고, 이를 감정적으로 기쁘게 수용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전폭적인 순종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이다.

 

* 사람이 "타인의 권고를 들음은, 그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기 주관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태도이고, 더 나아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이다.

-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이, 선하고 필요한 권고를 외면하면, 당연히 독선과 자기 의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들어야 할 권고는 사람의 권고보다 성령님의 권고"이다.

- 사람의 "권고는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성령님의 권고는 항상 옳고 온전하기 때문"이다.

 

* 오늘날 "교회가 정체되는 이유는, 성령의 권고가 있지만, 이를 제대로 듣지 않고, 들어도 외면하기 때문"이다.

- 성령님은 "직접 권고하시고, 말씀을 통해 권고하시고, 사람을 통해 권고하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권고"하신다.

- 그러나 "우리는 내 독선과 자기 의로움이 너무 강해서, 권고를 거부함이 습관이 되어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 이유는 "바꾸고 새롭게 되기 원하면서, 이를 귀찮아하고, 번거롭고,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 10:29절은 "모세가 처남인 호밥에게, 더는 미디안에 거하지 말고, 가나안에 함께 가자고 권하는 내용"이다.

- 그런데 "10:30절은,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말씀한다.

-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 그래서 "처남이 더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함께 가나안에 가길 원했던 것"이다.

 

* 그러나 "호밥은 모세의 간곡한 권고를 듣지 않았고, 너무도 강하게,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

- 당시 "모세의 권고는 갑자기 뜬금없는 권고가 아니었고, 오히려 자세한 설명과 설득, 간곡함이 있는 권고"였다.

- 그러나 "호밥은, 어리석게도 모세의 권고를 거부하였고, 더는 성경에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 만일 "호밥이 모세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그 삶은 물론 후손까지, 정말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 내가 "알건 모르건, 성령님은 항상 내게 가장 좋은 권고를 하시고, 꼭 들어야 하기에, 계속 권고를" 하신다.

 

*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의 선한 권고를 분별하지 못하고, 마침내 이를 거부하고,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 더욱 "큰 문제는, 성령님의 권고를 한 번 거부하면, 나중에 거부하기가 더 쉬워질 수밖에" 없다.

- 그렇게 "성령님의 권고를 거부함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생활화, 내 신앙 인격으로" 굳어진다.

- 그도 그럴 것이 "선하고 신실한 권고를 계속 반복하여 거부한다면, 내 삶은 당연히 미련해질 수밖에" 없다.

- 작년 922()"어떤 장로 부부에게 구역 식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토요일 오전에 같이 심방 하자!' 말했는데, 계속 성령님의 강권이 있어서, 장로 부부에게, 당일 늦은 밤에 병원 심방을 요청"했다.

* 다행히 "그 장로님 부부가 쾌히 수락하셔서, 저희 부부가 위독한 교인을 심방 하며, 임종 예배를" 드렸다.

-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심방 후 귀가 중인데, 12:37분에 전화가 와서, 사랑하는 교우의 소천 소식을" 알렸다.

- 만일 "제가 제 생각대로, 토요일 오전에 심방 했다면, 사랑하는 교우의 임종 예배를 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 생각할수록 "신기한 것은, 그날 제가 몸 상태도 안 좋았고, 늦은 심방 요청이 무리하게" 여겨졌다.

 

* 그러나 "성령님의 권고를 거부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간증과 역사를 직접" 보여주셨다.

- 분명한 것은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바르고 선한 것을 위해 계속 권고"하신다.

- 그러므로 "성령님의 권고가 있다면, 찔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대로 그 권고를 받아서 순종해야!" 한다.

- 오늘도 "성령님의 권고를 귀담아듣고 순종해서, 미련함을 이기고, 지혜로 승리하기를" 원한다.

 

2. 미련하지 않으려면, 지혜롭게 말하는 훈련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 잠언을 보면 "계속 강조하는 몇 가지 주제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쓰는 말에 관한 것이 가장" 많다.

- 본문 18절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말씀한다.

- 솔로몬은 "우리 말이 때로 누군가를 칼로 찌름 같이, 예의 없이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말한다.

- 짧은 "한 구절이지만, 인간이 말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여기서 "함부로 말한다. 이는 '성급하게 말한다. 쓸데없는 말을 한다. 거짓되게 말한다.'라는 뜻"이다.

 

* 이를 보면, "함부로 말함은, 타인의 상황과 처지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내 기분대로 말하는 것"이다.

- 그리고 "찌름 같이, 이는 '꿰뚫음, 찌름'이란 뜻으로, 성경 전체에서, 오직 잠 12:18 절에만 나온 단어"이다.

- 여기서 "찌름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죽이려는 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 문제는 "이처럼 공격적인 말이 의도적으로, 정말 악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훈련이 되지 않음이 원인"이다.

 

* 문제는 "이처럼 말에 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연약한 인간은 계속 미련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인간의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삶을 표현한 지문이 되기에, 그 사람 전체를 상징"한다.

- 그러므로 "인간의 말로 그 사람의 영적 수준과 깊이, 생각과 선호하는 것, 배려와 섬김에 관해 알 수" 있다.

- 실제로 "말은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평가 잣대이기에, 바른말을 위해서는 항상 훈련이 필요"하다.

- 훈련하지 "않으면, 인간의 말은 칼로 찌름 같이 무기가 되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 20:21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말씀한다.

- 이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세배대의 아내가 예수께 절하면서 두 아들에 관해 부탁하는 내용"이다.

- 그런데 "10:37절은,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마가는 어머니가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이 같은 내용을 직접 부탁했다고" 말씀한다.

 

* 학자들은 "야고보와 요한도 이를 부탁했고, 그 어머니도 이를 부탁했다고, 둘 다 했다고" 해석한다.

- 문제는 "주변에 제자들이 10명이나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부탁함은 상식적이지!" 않다.

- 어쩌면 "이들은 자신이 한 말이 주변 동역자 모두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 매사에 "그렇게 직설적이고, 자기 위주로 하는 말 습관에, 본인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그러나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기에, 함부로 말했기에, 제자들 모두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 이를 보면, "사람이 말하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본인도 힘들어지고, 주변 사람도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

- 우리도 "야고보와 요한, 그 어머니의 요청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무례할 수 있지!' 생각할 때가" 많다.

- 그런데 "오늘 우리도 본심은 그렇지 않은데, 말하는 훈련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미련함에 빠질 때가" 많다.

- 운동선수마다 "더 나은 경기력을 위해서 훈련해야 하듯, 우리가 선한 말을 하려면, 말 훈련을 해야!" 한다.

 

* 몇 년 전 "저희 어머니가 '다솔이와 다윤이는 왜 전화 안 하냐?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니?'" 물으셨다.

- 그때 "제가 어머니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실 때, 비난하지 말고 요청하세요!'" 말씀드렸다.

-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손주가 연락을 자주 하는 것인데, '왜 안 했냐!' 비난하면, 전화를 더 하지!" 않는다.

- 반면에 "할머니가 손주에게 '너희들 보고 싶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 좀 자주 해 줘!' 요청하면" 어떨까?

- 같은 "목적을 위해서 말해도, 비난과 요청은 다른데, 우리도 요청보다 비난 조의 말을 더 자주" 한다.

 

* 교회도 "요청하면 되는데 '왜 그것도 안 해 주냐, 무엇을 하는 거냐, 나를 무시하냐!' 비난하면 관계가" 어떨까?

- 이처럼 "우리는 지혜로운 말을 위해 훈련해야 하고, 훈련하면, 절대로 미련함에 빠지지 않음을" 기억하자!

- 훈련하면 "우리가 즉흥적으로,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줄일 수 있고, 오히려 지혜롭게 잘 말할 수" 있다.

- 그렇게 "먼저 우리가 말을 훈련한다면, 내 삶과 가정, 교회가 미련함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잠언이 "계속 반복하는 말에 관한 교훈을 마음에 새겨서, 훈련해서, 미련함을 이겨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