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4 잠묵사(잠언을 묵상하는 사순절)

2024 사순절 잠묵사(11) - 공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다솔다윤아빠 2024. 8. 20. 23:02

@ 2024년 사순절 특새(11-230226) 공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11:1~6)

 

* 그리스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으로 불리는 디케의 모습을 보면, 한 손에 정의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공평의 뜻하는 저울을 들고" 있다.

- 그런데 "디케의 또 다른 특징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데, 눈을 가린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는, 주관적 판단을 버려야 정의롭고 공의로운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연약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볼 때,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 따라서 "인간이 공의로움으로 건강한 사회와 교회를 만들려면, 반드시 주관적 생각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 본문 4절은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말씀한다.

- 솔로몬은 "진노의 날, 환난과 어려움의 날에, 우리에게 재물보다 공의로움이 훨씬 더 유익하다!" 강조한다.

- 실제로 "많은 재물이 이 땅의 삶을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를 죽음에서 건질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 여기서 "공의, 원어 체다카는 의로움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의롭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그러므로 "체다카, 공의로움은 절대로 주관적 판단과 사적인 이익이 기준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준, 말씀과 지혜로만 가능할 수" 있다.

- 따라서 "3,000년 전에 기록된 잠언은 물론, 오늘 이 시대에도 체다카는 꼭 필요한 개념이자 도전"이다.

-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바른 삶이 기준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으면, 내게 유익하면 모든 것이 다 용인되는 탈현대주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 사사기처럼,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오늘 이 시대에, 체다카는 더욱 필요한 개념"이다.

- 부족해도 "우리가 공의롭게 살아가면 죽지 않고, 자기 길을 곧게 하고, 자기를 죄에서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공의, 체다카는 사회와 공동체에 필요할 뿐 아니라, 오늘 내게도 꼭 필요한 개념"이다.

- 오늘도 "우리가 세상에서 주관적 삶이 아닌 체다카, 공의롭게 살아가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갈지!" 살펴보자!

 

속임을 미워하고 정직하고 공평한 삶을 기뻐해야, 공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전제는, 하나님은 공의를 기뻐하시고, 공의롭지 못함을 미워하신다는 것"이다.

- 본문 1절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말씀한다.

- 여기서 "'속인다.' 원어 미르마는 '반역, 궤휼, 거짓, 궤계' 등으로 쓰였고, 구체적으로, 상인이 물건을 사고팔 때, 무게가 다른 저울추를 사용하여 사람을 속이는 행위, 그래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 행위를" 뜻한다.

- 특히 "미르마를 확대하여 해석하면, 자기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저지르는 모든 부정행위를" 뜻한다.

 

* 여기서 "공평한 추는 정해진 표준 추를 사용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로움, 체다카를" 뜻한다.

- 실제로 "비록 속이는 저울로 물질적 이득을 얻어도 하나님께서 이를 미워하시는데, 정말 이득이" 될까?

- 또한 "정해진 표준 추로 정직한 추를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에, 그 결과가 얼마나" 풍성할까?

- 이에 "공의로운 삶은 자기 이득을 위해 속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떳떳하고 의로운 것"이다.

- 그런데 "오늘 우리 삶을 보면, 정직하고 공평한 삶보다, 거짓되고 속이는 모습이 너무도" 많다.

 

* 실제로 "많은 분이 해 보지도 않고, 정직하고 공평하면 바보가 되고, 마침내 망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많다.

- 나아가서 "남들도 다 속이고 거짓되게 살아가는데, '왜 나만 정직하고 공평해야 하는지!'" 항변한다.

- 물론 "그럴듯하지만, 훗날 우리 삶은 인간의 평가보다 하나님께 평가가 훨씬 더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거짓 된 추를 사용하여 속인 후, 잘 먹고 잘사는 삶을" 기뻐하실까?

- 과연 "거짓되고 속이는 삶으로,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살아간다 해도, 그 삶이 천국까지" 이어질까?

 

* 무엇보다 "기독교인이라면 세상과 주변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오히려 "조금 손해 보고, 부족해도, 공의롭게, 체다카의 삶을 살아감이 진짜 지혜" 아닐까?

- 26:12~13절은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말씀한다.

- 이삭이 "그랄 땅에 거할 때, 모든 일이 형통하였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고" 괴롭혔다.

 

* 심지어 "이삭이 우물을 파면, 이방인이 팔레스타인에서 생명줄과 같은 우물을 흙으로 메우기를 반복"했다.

- 하나님은 "그렇게 이방인이 계속해서 에섹과 싯나 우물을 메꾸었지만, 브엘세바 우물을 이삭에게" 주셨다.

- 이는 "당시 이삭이 정직했고, 블레셋 사람들이 보기에도 공의로움, 체다카로 복을 누렸기 때문"이었다.

-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항상 속임과 멀어지고, 정직하고 공평한 삶을 살도록, 항상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 무엇보다 "체다카는 기독교인이 인간적인 재물보다 하나님 주시는 물질을 더욱 사모해야 가질 수 있는 은혜"이다.

- 핵심은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정직해야, 공의로움으로 인한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다.

- 잠언은 "연약한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힘과 지혜를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는 "그만큼 정직이 어렵고, 그런데도, 하나님 백성은 반드시 정직해야 하기에, 잠언까지 주신 것"이다.

- 밴더빌트 대학의 "수학 교수인 메디슨 체럿은 무감독 시험을 볼 때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 "우리는 오늘 두 종류의 시험을 치릅니다. 하나는 수학시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직 시험입니다. 수학 성적이 좋으면 일시적 성공을 거두겠지만, 정직 시험을 통과해야 진짜 성공할 수 있습니다."

- 어쩌면 "우리 일상도, 매일 사람에게 평가받는 시험과 하나님께 평가받는 시험을 치르며" 살아간다.

- 이에 "우리가 이왕이면, 선하고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항상 정직하고 공의로워야!" 한다.

- 실제로 "속임과 정직함은 처음에는 그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천국과 지옥을 가를 수도" 있다.

 

* 성경은 "우리 주님의 별명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말하기에, 더욱 정직해야!" 한다.

- 정직은 "정해진 시간만이 아니라, 계속 지켜야 할 덕목이고, 특히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지켜야!" 한다.

- 그럴 때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내 정직함을 보시고, 악한 세상에서 공의롭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실 것"이다.

- 그러므로 "비록 정직해서 손해가 나도, 하나님 주실 더 큰 복, 공의로움의 은혜를 사모하며 정직해야!" 한다.

- 사순절인데, "우리가 매일 속임을 이겨내고 정직함으로, 공의로운 삶을 하나님께 인정받기" 원한다.

 

2. 교만을 미워하고 겸손한 삶을 기뻐해야, 공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본문 2절은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말씀한다.

- 잠언은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죄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교만함, 거만함을 꼽고" 있다.

- 솔로몬은 "연약한 인간이 교만에 빠지면, 그 후로 반드시 치욕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여기서 "치욕, 원어 칼론은 '가볍게 여겨진다. 수치스럽게 된다. 부끄럽게 된다.'라는 뜻"이다.

- 그런데 "칼론은 상당히 자극적인 용어인데, 칼론이 인간의 육신 중 가장 수치스러운 곳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솔로몬은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에 빠지면, 마치 인간이 자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곳을 노출할 때 느끼는 감정에 빠질 수 있기에, 교만과 거만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 특히 "우리는 교만과 치욕의 시간적 순서에 주목해야 하는데, 치욕이 온다면, 그 전에 교만이 있었던 것"이다.

- 달리 말하면, "교만이 없이 치욕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교만하면 꼭 치욕을 겪는다는 뜻"이다.

 

* 그런데 "겸손은 단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 본래의 연약함을 깨닫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 성경은 "인간을 흙으로, 티끌로 말하는데, 이는 인간이 가진 본래 모습을 뜻하고 비유하는 표현들"이다.

- 이처럼 "겸손은 단순한 낮아짐이 아니라, 인간 본래의 연약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 오늘날 "세상은 겸손을 어리석고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여기는데, 이유는 인간 본래가 가진 특성을 모르고, 교만함에 빠져서,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함이 크기 때문"이다.

 

* 주님은 "공생애 마지막 밤, 제자들에게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말씀하자, 베드로가 뜬금없는 말을" 한다.

- 26:33절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말씀한다.

- 당시 "베드로의 문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자신의 태생적 연약함과 부족함을 전혀 깨닫고 못함에" 있었다.

-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장담했던 바로 그 밤에,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 당시 "베드로는 우쭐하려는 마음, 다른 제자들보다 높아지고, 주님께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도" 컸다.

- 그렇게 "교만에 빠진 베드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고, 치욕스럽게 되고" 말았다.

- 조금은 "격한 표현이지만, 인간이 자기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면, 절대로 교만할 수" 없다.

- 반면에 "자기 주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교만하고, 이어서 치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 무엇보다 "교만은 지금 나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꾸며지고, 허구, 포장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잘못된 욕망"이다.

- 어쩌면 "심중에 그렇게 되고 싶은 허구의 모습을 위해, 일부러 강한 척, 있는 척, 센 척하며 교만에" 빠진다.

- 문제는 "그렇게 교만함이 인간과 세상은 속일 수 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 이유는 "하나님은 내 머리털까지 세시고, 나의 모든 것을 전부 아시는 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 최근 "출판되는 서적을 보면,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책들이" 많다.

 

* 혹자는 "인간이 우주의 근원이고, 주인이기에,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버젓이 거짓말을" 한다.

- 혹자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통제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 혹자는 "아침에 거울 앞에서 '나는 할 수 있어!' 백번을 외치면, 못 할 일이 없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 혹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생명 연장까지, 인간 복제까지, 질병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 물론 "인간이 가진 능력이 절대로 작지 않지만, 그래도, 인간은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는 약한 존재"이다.

- 그러므로 "인간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고, 그래서 교만함보다 겸손함이 더욱 필요"하다.

- 인간은 "하나님 말씀으로 '아파르' 티끌에서 창조된 후, 생기를 불어넣은 존재,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이다.

- 그러므로 "인간이 체다카, 공의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내 주제 파악을 하고, 겸손해야!" 한다.

- 사순절인데, "나 위주의 생각과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찾아서, 날마다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