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4 잠묵사(잠언을 묵상하는 사순절)

2024 사순절 잠묵사(19) - 더 나은 것을 택하는 삶.

다솔다윤아빠 2024. 8. 20. 23:10

@ 2024년 사순절 특새(19-230306) 더 나은 것을 택하는 삶(17:1~4)

 

* 어떤 "회사가 세 가지 상품, '좋은 것, 더 좋은 것, 제일 좋은 것'을 출시하고, 가격도 조금 다르게 책정"했다.

- 놀랍게도, "고객 대부분이 좋은 것, 더 좋은 것보다, 오히려 제일 좋은 것을 가장 많이" 샀다.

-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단지 어떤 것이 좋다! 그저 좋다.'라는 내용에 만족하지!" 않는다.

- 이유는 "좋은 것을 인정해도, 더 좋은 것, 나아가서 제일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어쩌면 "비용이 든다 해도, 사용 후 그 평가와 결과가 제일 좋다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지갑을 열 것"이다.

 

*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이왕이면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선택하려는 본능이" 있다.

- 문제는 "더 나은 것을 선택하려는 본능이 세속적 삶에는 잘 적용되지만, 영적인 삶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 신앙이 더 나아질지 알지만, 순종보다 연기하고 미룰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 본문 1절은 "우리 삶에서 부유한 중 다투는 가정과 가난한 중 화목한 가정 중, 무엇이 더 나은지 묻고" 있다.

- 여기서 "나으니라, 원어 토브는 천지 창조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 선하고 아름답다.' 그 뜻이 같은 단어"이다.

- 솔로몬은 "고기를 먹으면서 다투는 것보다 마른 떡 한 조각으로 화목함이 더 토브, 낫다고" 말한다.

- 문제는 "우리가 이 내용을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실제 삶은 다투더라도 부유함을 선호할 때가 더" 많다.

- 이유는 "우리는 더 나은 것을 항상 물질적인 풍성함, 넉넉함과 편안함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십자가로 구원받은 인간이 가장 나은 삶을 살아가려면, 절대로 세속적인 삶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 오히려 "인간은, 비록 가난하고 부족해도,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누릴 때,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 사순절은 "이처럼 세속적인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나음을 알고,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는 절기"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삶이, 날마다 더 나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려면, 어떤 삶이어야 할지!" 살펴보자!

 

더 나은 것을 택하려면,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 본문 2절은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슬기로운 종이 누릴 수 있는 혜택에 관하여" 말씀한다.

- 여기서 "슬기로운 종이 주인의 아들을 다스림은, 어떤 상하 관계, 지배함의 모습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 오히려 "고대 근동에서, 슬기로운 종은, 특히 주인의 아들이 어리석을 때, 아들의 후견인이 될 때가" 있었다.

- 비록 "신분은 종이지만, 그 충성심과 성실함이 인정된다면, 아들처럼 유산까지 받는 경우가" 많았다.

 

* 실례로 "15:2절은,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말씀한다.

- 이는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었을 때, 종이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했다는 내용"이다.

- 여기서 "우리는 왜 주인이 종을 아들의 후견인이 되게 하고, 유산까지 주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 무엇보다 "주인이 보기에 종이 슬기로웠고, 믿을 수 있었고, 충성스럽게 헌신함을 인정했기 때문" 아닐까?

 

* 종이었지만, "누구보다 충성스러워서, 다른 종이 누리지 못하는 삶, 더 낫고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면, 내가 매사에 충성스러워야 한다!'" 도전한다.

- 하지만 "오늘 우리는 더 나은 삶은 원하지만,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삶, 내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 삶, 남들보다 더 수고해야 하는 삶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 어쩌면 "많은 분이 적은 수고로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이를 가성비 있는 삶, 심지어 지혜라고 착각" 한다.

- 그러나 "대충의 충성은 대충의 결과를 낫고, 온전한 충성은 제일 좋은 삶의 결과로 이어짐을" 기억하자!

- 이유는 "내가 얼마나 충성하는지, 이는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이 아시고, 이에 걸맞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 비록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내 충성을 인정하시면, 내 삶은 항상 제일 좋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

-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가서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자를 택하려 할 때, 다윗은 부름조차 받지!" 못했다.

 

* 당시 "이새조차 다윗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며, 맡은 일에 충성하며 헌신"했다.

- 다윗은 "가족에게 차별받는 아픔이 있었지만, 항상 충성하는 삶을 살아서, 마침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 이를 보면 "다윗이 선민의 왕, 메시아의 조상으로 선택된 이유는, 그의 헌신과 충성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 충성은 "한문으로 '마음의 중심으로 말한 것을 이루는 열정과 헌신이기에' 절대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 그러나 "충성은 절대로 그 노력을 배신하지 않고, 특히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갚아주셔서,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게" 돌아온다.

- 그러므로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역과 직분에서 충성하고 또 충성해야!" 한다.

- 무엇보다 "충성은 그 기간과 환경이 영원하지 않고, 제한적이기에, 주어진 시간에 더욱 충성해야!" 한다.

- 실제로 "나이가 들면, 건강이 약해지면, 충성하고 싶어도 충성할 수 없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올 수밖에" 없다.

- 또한 "충성은 상승작용이 있는데, 충성하면 더 충성하게 되고 충성을 잃으면 충성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 어촌에서 "40척의 배를 운영할 정도의 부자가 있었는데, 폭풍으로 하루아침에 40척 배를 모두 잃고" 말았다.

- 이에 "그 부잣집의 어린 아들이 캐나다 선교사 집의 머슴이 되어, 온갖 궂은일을 다 감당해야!" 했다.

- 어린 "소년은 삶이 너무 힘들어서 많이 울었는데, 한 번은 선교사가 소년이 알만한 곳에 돈을" 놓아두었다.

- 소년의 "정직성을 시험한 것이었는데, 소년은 정직했고, 힘들었지만,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했다.

- 마침내 "선교사는 그 소년을 서울에서 교육받게 했고,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하도록 힘껏" 도왔다.

 

* 훗날 "이 소년이 남대문교회를 섬기고, 대한신학교 설립자인 김치선 박사가" 되었다.

- 충성은 "우리 삶을 어리석음보다 지혜와 슬기로움으로 이끌기에,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성령의 열매"이다.

- 하나님은 "2;10절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셨다.

- 우리가 "항상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아니 모두가 원하기에, 더욱 충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면서,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은혜로 승리하기" 원한다.

 

2. 더 나은 것을 택하려면, 내 믿음이 굳건하도록 항상 훈련하며 살아가야 한다.

 

* 본문 3절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말씀한다.

- 여기서 "연단하다. 원어는 '녹이다. 제련하다. 불을 통과하다.' 금속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 그런데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면, 연단은 '우리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훈련하여 굳건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 실제로 "금과 은은 귀한 보석이지만, 그냥 뚝 떨어지지 않고, 도가니, 끓이는 솥과 금속을 녹이는 용광로 풀무를 통과해야,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 그래서 "솔로몬은 더 나아지려면, 이처럼 우리 신앙을 도가니와 풀무를 통과하듯 연단이 필요하다!" 도전했다.

- 실제로 "삶에서 겪는 다양한 아픔과 시련,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내와 겸손, 온유와 절제, 신중함과 바른 언행을 훈련받고 배우며, 더 나은 삶으로 바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연단의 "목적은 어떤 금속에서 다양한 불순물을 제거하고 가장 좋은 것을 추출함에" 있다.

- 마찬가지로 "영적인 연단의 목적도, 우리 삶에서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도록 훈련함에" 있다.

 

* 무엇보다 "연단은 한 번으로 되지 않고, 계속 꾸준하게 연단의 과정을 거칠수록,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있다.

- 실례로 "영적인 연단을 겪는 삶과 연단을 모르는 삶, 피하는 삶이 어떻게 그 삶의 결과가 같을 수" 있겠는가?

- 연단은 "뜨거운 풀무와 도가니를 지나야 하기에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확실한 훈련이 될 수" 있다.

-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많은 기독교인조차 연단을 좋아하지 않고, 훈련받음에 너무도" 게으르다.

- 심중에 "더 나아지고 싶지만, 좋은 것은 알지만, 연단과 훈련에 대하여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한다.

 

* 그러나 "연단과 훈련을 이겨낸 영혼은, 절대로 뒤로 물러서거나 실족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

- 하나님은 "마귀에게 욥을 자랑할 정도로, 욥은 신실하고 순결한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다.

- 하지만, "마귀의 참소로, 욥은 모든 재산, 그리고 무려 10명이나 되는 자녀, 심지어 건강까지!" 잃었다.

- 생각해 보면, "자녀를 잃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일 텐데, 10명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 생각할수록, "욥도 사람인데, 어떻게 이 연단에도 흔들리지 않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 그러나 "욥은, 비록 친구들을 원망하고, 불평과 하소연도 많았지만, 그래도 연단과 훈련의 과정을 잘" 견뎌냈다.

- 힘들었지만 "견뎌냈다고 표현함은, 욥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절망으로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하나님 주신 연단과 훈련을 이겨낸 욥이 욥기 4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연단과 "훈련의 통과한 욥은, 하나님을 귀로 듣다가, 이제는 눈으로 직접 뵙는 은혜를" 누렸다.

 

* 그렇게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욥에게 이전보다 2배의 물질과 복으로 더 낫게" 역사하셨다.

- 생각해 보면, "연단과 훈련은, 어떤 특별한 시기와 방법을 통해 다가오지 않고, 어쩌면 이민자인 우리 일상, 하루하루 매일 연단을 통과하는 삶이고, 훈련을 받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면, 이처럼 연단과 훈련이 있는 삶에서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 힘들고 "어려울수록, 내 뜻이나 계획과 달라도, 하나님을 믿으며,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더 나아져야!" 한다.

 

* 혹자는 "우리는 포기한 사람을 실패자로 기억한다. 반대로, 우리는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은 사람을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마음에 담아둔다. 실수하느냐, 실수하지 않느냐, 이보다 포기하지 않는 삶이 더 중요하다." 말했다.

-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여 넘어질 수도 있고, 연단과 훈련을 겪다가 상처받고, 실패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연단과 훈련을 통해 더 나아지려면, 어떤 경우에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 실례로 "금과 은을 풀무와 도가니에 넣었다가, 중간에 불을 끄고 멈추면, 어떻게 금과 은을" 얻겠는가?

-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하시고, 때로는 욥처럼 정말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끌고 가실 때가" 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 목적은, 나를 넘어뜨림이 아니라, 나를 더 낫게 세워주시기 위함에" 있다.

- 그러므로 "역설적이지만, 연단과 훈련이 힘들수록, 하나님 주시는 복과 은혜는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다.

- 사순절인데, "삶의 연단과 훈련이 버겁지만, 포기를 이겨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승리가 있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