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묵상(16) - 세상의 거절이 커도.

다솔다윤아빠 2024. 8. 21. 23:12

@ 금요기도회 출애굽기 묵상(16~240112) - 세상의 거절이 커도(7:14~19)

 

11:17절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말씀합니다. 주님의 "공생애 때, 택함을 받은 선민조차, 예수를 거절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을 죽이기까지 거부했던 세상과 유대인을 품어주셨고, 그 귀한 보혈로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절당함을 싫어하고, 거절로 인한 상처와 위축됨으로 삶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거절당하기 연습,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용기, 거절의 힘! " 이처럼 "현대인은 거절을 이겨 보려고, 거절에 관한 다양한 서적을 사서" 읽습니다. 그러나 "거절이란 주제를 공부한다고, 세상의 거절이 덜해지고, 거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성도일수록, 세상의 거절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는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을 보았고, 직접 애굽 술사들의 한계도 보았지만, 그 마음이 여전히 완강"했습니다. 마침내 "바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내용, '선민을 보내라.' 이 말씀마저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거절하다. 원어 마엔은 '달가워하지 않는다.'란 뜻으로, 주로 하나님의 율법이나 명령을 불순종하여 거역할 때, 많이" 쓰였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전한 말씀을, 바로가 거절한 이유를, 그의 마음이 완강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바로의 거절은 너무도 완강하고 극심해서, 무려 10가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그 고집을 꺾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재앙이 선포될 때, 바로는 조금도 선민을 보낼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생각보다 강한 세상의 거절과 공격, 반대에 직면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조차 세상의 거절이 강할수록, 그 심령이 위축되고, 그 뜻과 결심을 쉽게 내려놓고" 맙니다.

 

문제는 "그렇게 세상의 거절에 쉽게 패하고, 위축되어 넘어진다면, 내 신앙과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기독교인인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거절은 두려워해야 마땅하지만, 세상의 거절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는 "세상의 거절은 나를 다시 믿음으로 일으켜 세워 주는 자양분이 되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세상의 거절이 클수록,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살펴봅시다.

 

세상의 거절이 커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바로는 "'선민을 보내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해 달라!' 모세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당시 "바로는 절대권력자였기에, 충분히 모세와 아론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나일 강가로 가서 바로를 만났고, 피로 변하기까지 나일강을 지팡이로 쳤고, 아론은 지팡이를 애굽의 물들 위로" 내밀었습니다. 만일 "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거절에 위축되어, 뒤로 물러섰다면, 출애굽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출애굽의 시작은, 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거절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거절을 경험하는데, 문제는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있습니다. 혹자는 "세상의 거절을 어떤 일을 피할 변명과 핑계로 여기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내려놓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 누가 그런 상황을 이겨내? 그건 하나님이 막으신 거야!" 반면에 "혹자는 세상의 거절이 강할수록, 말씀을 더 굳게 붙잡고, 해야 할 일에 더 헌신"합니다.

 

당연히 "결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어떤 태도를 더" 원하실까요? 일반적으로 "우리 신앙생활에는 선순환과 악순환이 항상 공존"합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헌신하면, 새로운 길이 열려서, 선순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나중에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이 버거울수록, 항상 선순환을 기대하며, 해야 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다윗은 "도망치는 중, 엔게디 황무지와 하길라 산에서, 사울을 두 번" 살려줍니다. 다윗은 "먼저 동굴에 들어온 사울의 옷만 조용히 베었고, 다음에는 잠든 사울의 물병과 창을" 취했습니다. 당시 "아비새와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이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함부로 죽일 수 없다!' 말하면서, 사울을" 살렸습니다. 다윗도 "사람인데, 사울이 자신을 계속 죽이려 할 때, 그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컸겠어요?

 

아비새의 "말처럼, 다윗은 사울을 죽여야 했지만,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 백성답게, 자신이 해야 할 본분과 도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의 거절이 강했지만, 자기 일에 충실했던 다윗을 더 크게 인정"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주셔서, 메시아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거절이 강하지만, 내 직분과 사역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의 거절이 크고 힘들지만, 오히려 더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아서 받는 하나님의 상급이 더 값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침내 "세상의 거절이 극심해도, 믿음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키는 영혼은, 절대로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거절이 클수록, 오히려 내게 주신 헌신의 자리를 더 잘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 "영국 출신의 신실한 기독교인인 찰스 고든 장군이 후세에 남긴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큰 국가는 물론 작은 나라를 통치할 때, 그 원리는 다 똑같다. 이유는 예수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나 작은 개인의 일이나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주님은 큰일이라고 더 마음을 쓰시고, 작은 일이라고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주님은 "위대하고 큰 사람이나 작고 연약한 사람이나, 언제나 한결같이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절대로 차별하지 않지만, 인간은 너무도 쉽게 사람을 차별하며 아프게"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십자가 보혈로 사랑하기에, 우리가 하나님 일을 감당하며 천국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거절이 아무리 커도, 항상 주님처럼 주어진 일에 더욱 충성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을 향한 세상의 거절과 공격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세요? 우리가 "세상의 거절이 있지만, 믿는 사람답게 주어진 일에 더더욱 충성하며, 승리와 간증을 쌓아나가길 간절히" 원합니다.

 

2. 세상의 거절이 커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받은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로의 거절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져서, 나중에는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는 협박으로" 이어졌습니다. 상식적으로 "당시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절대로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의 강한 거절을 이겨낸 이유는, 매사에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함에"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에게, 바로의 완강한 거절을 이미 들었고, 말씀에 순종하여 나일강으로 가서, 강을 지팡이로 쳐서 피로 변하게" 했습니다.

 

아론도 "지팡이 든 손을 펴서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했습니다. 이처럼 "모세와 아론은 자력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서 바로를" 이겼습니다. 세상의 "거절이 큼은, 그만큼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고,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모르기에, 세상의 거절과 공격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가는데, 어렵고 힘들다면, 하나님 말씀에 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의 "거절이 클수록, 더욱 말씀 붙잡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며, 이를 이겨내야!" 합니다. 이유는 "세상의 거절은 세속적인 방법으로 이길 수 없고,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이에 순종함으로만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핵심은 "오직 성경만이 우리를 하나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모든' 두 단어는 절대로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누가 온전할 수 있고, 누가 '모든'이란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겠어요? 문제는 "우리가 이를 알면서도, 현실은, 세상의 거절이 클 때, 사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거절이 클수록, 더욱 말씀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과 세상의 소리는 절대로 온전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먼저 찾고, 속이고 넘어뜨리는 특징이 큼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아무런 메모와 발신인 주소도 없이, 유명한 뮤지컬 공연 입장권 2장이 배달"되었습니다. 부부는 "입장권을 받고 버리기가 아까워서 공연을 관람했고, 공연 후 기쁜 마음으로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귀가 후 보니, 집에 도둑이 들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귀중품을 모두 훔쳐 가고" 말았습니다.

 

"기막힌 것은, 도둑이 부부의 침대 위에 써 놓은 글"이었습니다. "이제 누가 입장권을 보냈는지 알겠지?" 이처럼 "불완전한 인간의 언행에는 늘 함정과 계산이 있고, 때로 뼈아픈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변 사람은 사랑하고 섬겨야 하고, 동역하고 합력할 대상이지, 절대로 믿고 의지하며, 내 삶을 맡길 대상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자랑할 정도로 신실하고 거룩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실제로 "욥이 얼마나 잘 믿었으면, 하나님이 마귀에게 자랑하고, 마귀가 직접 참소까지" 했겠어요? 서론에 "욥이 고난을 겪고, 세 친구가 욥의 참담함을 보고 무려 일주일간 할 말을" 잊었습니다. 당시 "세 친구는 마음 아파하며, 욥을 아낀다며, 욥을 위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세 친구는 욥이 자기들의 조언을 거부하며 계속 항변하자, 태도가" 바뀝니다. 마침내 "욥을 정죄하며 책망하고, 이에 대해 욥이 반격하면서 논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핵심은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했던 욥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욥을 "향한 세상의 거절과 정죄가 컸지만, 그래도 욥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엎드렸을 때, 이전보다 2배의 복을 받으면서 회복"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의 말에 인생을 걸며"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거부와 공격이 얼마나 강하고 잔혹한지,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음을" 아세요?

 

따라서 "우리는 나를 향한 세상의 거절이 크고 깊을수록,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들어야 하고, 들은 대로 지키며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의 "그 어떤 말도 나를 책임질 수 없지만, 하나님 말씀만이 나를 책임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항상 세상의 거부가 있지만, 더욱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날마다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