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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묵상(07) - 진정한 부흥을 꿈꾸기에.

다솔다윤아빠 2024. 8. 28. 00:49

@ 하박국 묵상(07-240721) 진정한 부흥을 꿈꾸기에(하박국 3:1~7).

 

많은 "목회자가 '좋은 교회는 3B를 갖추어야 한다!'" 말합니다. 첫째 "Building, 좋은 교회는 예배당, 주차장, 교육관을 갖춘 건물이 있어야 한다." 강조합니다. 둘째 "Budget, 좋은 교회는 해야 할 일을 힘있게 감당할 재정이 든든해야 한다." 말합니다. 셋째 "Baptism, 세례받고 믿는 사람이 증가해야 좋은 교회다." 말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회의 수많은 논란과 문제점은, 이처럼 3B를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더 많이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과 인간이 원하는 부흥의 개념이 많이"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부흥을 교회의 수적 팽창과 확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십자가 복음으로 거듭나서 새롭게 살아나는 영혼이 많아지는 것을 부흥으로" 말씀합니다. 부흥은 "죄인이 성령의 은혜로 살아나서, 그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는 영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아닌 성경적 관점으로 부흥을 말한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교회의 부흥을 원한다면, 먼저 부흥의 참된 의미부터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박국이 "선민의 패역함에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항변한 이유는, 선민이 심판과 몰락이 아닌 부흥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악한 바벨론이 선민을 심판함에 항변한 이유도, 선민이 새롭게 되어 부흥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하박국은 본문 2절에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간절히" 구했습니다.

 

부흥하다. "'하이에후는 살다, 생명을 보존하다.' 뜻으로, 오늘날 부흥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박국은 "선민이 수적 팽창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이기고, 영적으로 살아나서 생명을 보존하기" 원했습니다. 그렇게 "하박국은 선민이 더는 바벨론에 짓밟히지 않고, 수년 내,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영적으로 살아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3장은 1~2장과 달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부흥을 갈망한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나부터 먼저 영적으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나는 부흥과 무관하면서 교회가 부흥한다면, 오히려 나는 더 영적 외톨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교회가 진심으로 부흥하기 원하는데, 참된 부흥을 위해 과연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진정한 부흥을 꿈꾸기에, 우리가 어려운 중에도 더욱 하나님을 찾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절은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시기오놋은 '슬픔의 노래, 만가(挽歌)'"를 뜻합니다. 특히 "만가는 장례 중 상여꾼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곡소리, 애도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이는 "당시 죄악과 패역에 빠진 선민, 바벨론의 심판 앞에 서 있는 선민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둡고 힘든 상황에서, 하박국은 더는 원망과 불평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했습니다.

 

당시 "선민의 상황이 너무 힘들고 비참했지만, 그래도 선민의 부흥, 선민을 살려내고 생존하게 하실 분은 하나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박국은 '수년 내에 선민을 다시 영적으로 살려달라, 긍휼을 베풀어 달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박국은 불평과 항변보다, 선민의 회복을 소망하면서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생각지 않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아픔이라면, 누가 고난과 어려움이라고" 말하겠어요? 무엇보다 "개개인의 영적 수준과 깊이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대하는 태도로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혹자는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면 놀라고 당황해서 무책임하게 도망가지만, 혹자는 침착하게 믿음으로 대처하고, 하나님 은혜로 상황을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이 당하는, 생각지 않은 고난과 아픔, 두려움과 좌절에 대한 해결책은 인간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내 주인이고, 나를 책임지시고, 나를 천국까지 인도하실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41: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삶의 어려움을 만나면, 불신자보다 우리가 더 낙담하며 실족하고" 맙니다. 나폴레옹 힐은 "사람은 모두 성공을 원하는데, 성공을 위한 변화를 주저하고 망설인다." 말했습니다. 사람이 "이처럼 변화를 주저하는 이유가 두려움에 있는데, 특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곱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 외모와 나이 들어감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자유를 잃어버림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문제는 "우리도 일곱 가지 두려움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지만, 이 모든 두려움은 세상과 사람이 해결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정답이 됨을 알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살아갑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본문 2절에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합니다. 긍휼 "'라헴은 여성의 자궁, '를 뜻하고, 여성의 태는 태아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무 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영혼을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주님을 찾았을 때, 긍휼로" 고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음을 선고받고 눈물로 하나님을 찾았을 때, 15년 인생을 더" 주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 간절히 주님을 찾던 두 자매를 긍휼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가 아들을 잃고 슬퍼할 때, 긍휼로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언제나 같은 하나님을 찾는다면, 왜 긍휼히 여기지!" 않겠어요?

 

부흥 "하이에후는 지금 내 현실과 미래, 내 가족과 교회를 새롭게 바꾸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나 자신과 교회의 부흥을 원한다면, 나부터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내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며, 일으켜 세워주고, 생명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주는 "물론 평생 어떤 어려움과 아픔에도, 크고 작은 일에 구애받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찾아서 참된 부흥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2. 진정한 부흥을 꿈꾸기에,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본문 3절은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 도다." 말씀합니다. 학자들은 "하박국이 데만을 시내 산을 염두에 두고 썼다." 말합니다. 따라서 "시내 산을 상징하는 데만은 하나님을 불신했던 선민을 심판하고 징계하면서, 또한 선민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란 산도 시내 산과 가데스바네아 중간에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 책망과 징계, 둘 다 상징"합니다.

 

따라서 "데만과 바란 산은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보호와 지켜주심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선민은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보호와 지켜주심, 둘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믿고 받아야 했고, 은혜는 감사로 받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선민은 하나님 주시는 모든 것을 아멘으로 받아야 부흥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선민은 책망과 징계는 거부하고, 사랑과 보호만 받으려!" 했습니다.

 

주님은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말씀합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영접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은혜를 모르고, 알아도 거부한다면, 어떻게 내 삶과 가정, 교회가 부흥을 누릴 수" 있겠어요?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은, 항상 가장 좋고 선함을 믿고, 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은 엄청난 은혜가 주어지면, 감사함으로 받기보다 주저하며 생각이" 많아져요! 한번은 "아들이 제게 '사랑해요!' 말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왜 저러지, 뭘 잘못 먹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뭐가 필요한가." 우리가 "부흥을 원한다면, 하나님 주시는 것은 따지고 묻지 말고,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20년간 토속종교를 믿다가, 친구에게 전도를 받고서, 깊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래서 "청년은 자기가 믿는 산신령에게 '기독교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려달라!' 기도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며칠 후 "전도했던 친구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기도해봐!' 권했고, 청년은 '하나님을 상제님!' 부르며 기도하다가, 사흘째 놀라운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 중 "방안에 옥 피리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서 괴성이 들린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 이에 "길선주는 땅에 엎드려서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나를 살려주세요!' 외치며, 그동안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가 이어졌고, 그렇게 한국 장로교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심지어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도, 언제나 한결같이 응답"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응답과 도움이 있는데, 내가 이를 거부하고 외면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감사하고 기쁠수록, 항상 하나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절대로 "말씀 앞에서 고집부리며 거부하지 말고, 주시는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만일 내 상황과 감정에 따라 말씀을 가려서 받는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내 손해가 될 뿐"입니다. 때로 "혹자는 '양심이 있는데! 면목이 없어서.' 주저하다 은혜에서" 멀어집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부끄럽고 참담했지만, 그래도 주님 말씀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을 때, 부끄러웠지만 '사랑한다.'"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고 후회가 컸지만, 주님의 호의와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만일 "유다가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주님을 찾았다면, 어떤 책망도 다 받겠다고 다가갔다면, 과연 주님께서 유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요? 생각할수록 "유다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베드로와 유다, 둘 다 참으로 큰 죄인이었지만, 하나는 말씀을 영접하였지만, 하나는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죄인인 인간이 복음을 거부하고 영접함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보다 나를 더욱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과 은혜를 주시면, 그대로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부흥을 사모하며, 언제나 한결같이 하나님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로 다가오는 하나님을 거부하지 말고, 아멘으로 영접해서, 부흥을 누리며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