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모음/이재철 목사 성숙자 반

성숙자반(01) - 믿음.

다솔다윤아빠 2024. 9. 3. 00:06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01) 믿음

 

* 성경은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니라" 말씀한다.

- 실제로 "믿음은 큰 믿음과 작은 믿음, 연약한 믿음과 굳건한 믿음, 거짓 없고 진실한 믿음과 파선(破船)한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과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매일 내 믿음의 상황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1. 믿음은 구체적이다.

 

*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자신의 삶으로 연결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 우리에게 "바르고 성숙한 믿음을 위해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신앙 용어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도 이론적으로만 알고 나의 삶에 연결되어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 현대 교회는 "전도의 문이 막혔다고 우려하지만, 원인은 믿는 자들의 삶이 전도에 걸림돌이 될 때가 많은데,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불신자들이 신앙인을 볼 때 믿고 싶지 않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 또한 "현대 기독교인은 정말 잘 믿고 싶지만, 은혜를 받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회복의 신앙(pp 141~177, 홍성사 1999)에서 서술한 믿음에 대한 열 가지 표현과 정의


(1) 믿음은 "순종인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과 환경과 현실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2) 믿음은 "용기인데, 마리아가 천사에게 순종하였듯, 말씀에 순종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3)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는 시선인데, 말씀대로 살아가는 용기 있는 신앙인의 시선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4) 믿음은 "다루어짐인데, 하나님 앞에 나는 작은 피조물이기에, 하나님 손으로 잘 다루어지고 빚어져야!" 한다.
(5) 믿음은 "신실인데, 신실함은 절대로 자기 욕망, 거짓된 것, 헛된 것을 구하지 않고" 살아간다.
(6) 믿음은 "눈에 보이기에, 믿음은 절대로 추상적이지 않고, 삶으로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7)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죽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다.
(8) 믿음은 "자기 가꿈인데, 믿으면 말씀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자신을 신실하게" 가꾸어간다.
(9) 믿음은 "자유인데, 믿는 자는 불의와 불법에 매이지 않기에, 사단이 그를 종으로 부릴 수" 없다.
(10) 믿음은 "삶인데,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삶,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아름다운 삶"이다.

 

2. 믿음의 대체 어(2)

 

* 믿음의 의미를 "재정립하면 재정립할수록 믿음에 관한 이해의 폭과 넓이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믿음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

 

- 여기서 "지피지기(知彼知己)란 단어는 손자병법 모공편에 지피기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 우리가 "성숙한 믿음을 위해서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알고 또한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

- 구체적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고, 나는 피조물임을 바르게 아는 것"이다.

- 문제는 "많은 신앙인이 삶에서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 히브리어 "에노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과 깨지기 쉬운 존재란 뜻을 가지고" 있다.

- 성경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내 안에(고후 4:7)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 말씀한다.

-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기에, 이를 알면 세상을 부유하고 풍성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연약한 "인간이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믿음을 가지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 사람이 "상처를 받거나 주지 않고 살아감이 귀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가기에, 유 여하를 불문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나는 아직 미숙한 사람"이다.

-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고, 내가 그분의 자녀임을 확신할 때, 이 세상 누가, 어떤 말로도 우리를 상처 줄 수 없고, 세상에서 상처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질그릇임을 알기에 평생 겸손함으로 헌신할 수" 있다.

- 교만과 "허영으로 살아가는 삶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질그릇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겸손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믿음은 거룩한 부담이다.

 

-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은 국가의 멸망을 예언해야 했기에, 선민과 국왕 선지자 모두가" 힘들었다.

-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 거룩한 부담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사도 바울도 역시 "거룩한 부담감으로 자비량 선교를 담당했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해도 요동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 여기서 "부담이 생겼다는 말은 그만큼 믿음이 생겼다는 반증"이다.

- 평생 "주님을 믿으면서 거룩한 부담감이 없으면, 추상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다.

 

믿음은 약속 어음이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자손, , 복을 약속하셨지만, 실제 그가 살아갈 땅과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은 아브라함 당대에 전혀 체험할 수" 없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현찰이 아니고 약속 어음과 같은 것"이었다.

- 현대 신앙인은 "항상 하나님께 현찰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약속 어음만 허락"하신다.

- 현찰은 "단순한 거래이지만, 약속 어음은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 현찰은 "서로 신뢰가 없어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약속 어음은 서로 신뢰가 있을 때만 주고받을 수" 있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거래가 아닌 믿음의 관계"이다.

- 하나님의 "약속 어음에는 부도가 없고, 유효기간이 영원하고, 언제나 인생을 바르게 세우며" 도우신다.

- 이처럼 "믿음이 약속 어음임을 아는 기독교인은 그 믿음을 대대손손 물려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믿음이 약속 어음임을 안다면, 믿음은 기다림이란 사실도 알아야 한다.

 

- 일반적으로 "약속 어음을 받은 사람은 어음의 만기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기간은 허송세월이 아니라, 그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새롭게 빚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 시간에 나를 은을 단련하시듯, 우리를 단련(66:10)"하신다.

- 하나님께서 "원석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시듯, 우리 인격과 자존심을 완전히 해체시킬 때가" 있다.

- 우리가 "삶에서 어려운 그물에 빠지면, 그물 구멍으로 빠져나갈 정도로 자기 자신을 감량해야!" 한다.

- 때로 "우리 삶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는 기다림 가운데 소명을 완성하도록 주시는 훈련임을 알아야!" 한다.

-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 어음은 때가 되면 반드시 결재되고,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이고, 기다리는 중에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지고 변화되는 것"이다.

 

믿음은 자기 확장이며 자기 성장이다.

 

- 믿음의 "약속 어음을 받기까지 기다리며, 우리는 새롭게 빚어져서 자기 확장과 성장을 체험하게" 된다.

- 그런데 "신앙인의 자기 성장과 확장은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 자신의 "사고방식과 사고의 틀을 깨버리면,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언제나 Setting이 끝난 보석이 아니라 원석"이다.

- 하나님께서 "주신 원석의 비밀을 알려면, 내가 철저하게 열려있어야!" 한다.

- 하나님을 향해 "내가 확장될 때, 나와 다른 상대방의 가치를 알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 마침내, "자기 확장과 성장을 위해 우리가 날마다 나의 틀을 깨야!" 한다.

 

믿음은 선택다.

 

- 날마다 "자기 성장을 꾀하는 영혼은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 신앙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함인지? 사람을 위함인지? 선택해야!" 한다.

- 특히 "신앙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은 갈릴리 바다가 아닌 황제의 바다 디베랴 바다"이다.

- 21:4"우리 말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과거형으로 서셨지만, 제자들은 현재형으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라어 원어는 예수께서 지금 현재형으로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과거형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현재형으로 서 계신 주님을 망각"했다.

- 신앙인은 항상 "삶의 현장에서 현재형으로 계신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 문제는 "너무 많은 신앙인이 예배당을 나서며 주님을 과거형으로, 세상 논리를 추구함에" 있다.

 

믿음은 계산이다.

 

- 바르게 "계산할 줄 아는 사람만 바르게 선택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적 평등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는 공평함"이다.

-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도 있고, 작은 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항상 계산하며 살아가야!" 한다.

- 바른 계산은 "인간적인 계산법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산법을 바로 알아야만 가능"하다.

- 세상 계산법은 "무조건 높아지는 것이지만, 주의 계산법은 남을 섬기는 것을 으뜸으로" 말씀한다.

- 한 번뿐인 "인생의 승부는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서 날 것이기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계산법대로 살아가는 것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믿음은 모험이다.

 

- 하나님 앞에서 "바른 계산을 할 줄 아는 사람만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험을 하며 살 수" 있다.

-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길이가 137.4m, 너비 22.9m, 13.7m)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금전적인 지원도, 도와주는 일군도 없고 다만 명령만" 하셨다.

- 순종을 위해 "노아는 자기 재산과 전 인생을 걸고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 세상의 "모험과 도박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패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모험은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채우시기에, 믿음의 모험 중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얼마나 큰 잠재력과 은사를 주셨는지 알게" 된다.

 

믿음은 초지일관(初志一貫)이다.

 

- 우리가 "주를 신뢰하고 믿는 것은 초지일관으로 사는 견고한 삶을 의미"한다.

-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께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다.

- 우리가 "곤고해지는 이유는 내가 정한 기준까지만 하나님을 기대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 그러나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살아가는 삶"이다.

 

믿음은 본()이 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교사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 차이가 있다면, "혹자는 배우고 싶은 친면교사, 혹자는 배우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기 있을 뿐"이다.

- 신앙의 "위인들이 위대한 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유익한 삶으로 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 신앙인이 "유익을 구하되, 항상 자기 유익만 구하면 다만 반면교사가 될 뿐"이다.

 

3. 결론.

 

우리가 "믿음의 개념을 재정립할수록 우리의 믿음은 날로 새롭게 될 수" 있다. 믿음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수록, 우리는 새로운 심령,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이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노래로 승화될 것"이다.

날로 "새로워지는 믿음은 다가오는 미래는 물론 과거까지도 새롭게" 한다.

날로 "새로워지는 믿음은 이 땅에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영원한 이정표가" 된다. 날로 "새로워지는 믿음 생활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잊혀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