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해/바나바

바나바 묵상(08) ▶ 하나님 말씀이 퍼져나가려면(사도행전 13:44~49).

다솔다윤아빠 2024. 10. 16. 05:33

미국에는 "만 명 이상 모이는 메가 교회가 37, 한국은 23개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한국에 메가 교회가 많지만, 불행히도,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망과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로 "만 명이 넘는 메가 교회가 23개나 된다면, 복음이 확장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오히려 복음을 막고 하나님 영광을 가릴 때가 더" 많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교회가 복음을 퍼트리기보다 오히려 복음을 쌓아만 둠이 문제일지" 모릅니다.

 

말씀은 "우리 삶에 주신 생명력을 땅끝으로, 삶의 현장 곳곳으로 퍼트리라고 하지만, 오늘 우리는 말씀을 쌓아 두고, 이에 만족하며, 우리끼리만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말씀의 확장은, 삶의 현장에서 말씀이 퍼져나가는 선교적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명의 말씀이 퍼져나가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와 내 신앙은 말씀을 쌓아놓고 사는지, 퍼트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본문 49절은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이 두루 퍼졌다.' 원어는 '모든 지방, 모두에게 두루 퍼졌다.'란 뜻"입니다. 특히 "퍼진다. '디에페레토는 여러 방향으로 나른다. 널리 퍼트린다.' 미 완료 동사를" 썼습니다. 이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안디옥 전역에 하나님 말씀이 계속 확장되고 전달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가 계속 자라가듯, 하나님 말씀이 곳곳으로, 모두에게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당시 "말씀이 퍼져나가는 속도와 영향력이 얼마나 컸으면, 유대인이 시기하고 질투할 정도"였습니다. 안디옥 "사람들이 '두 사도의 말씀을 다음 안식일에 또 듣겠다.' 말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자는 다 믿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안디옥 지역에 메가 교회가 없었지만, 말씀을 쌓아 두지 않고 퍼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세상이 주는 기쁨과 말씀이 생명력 있게 퍼져나가며 주는 기쁨이 같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기독교인을 통해서, 말씀이 쌓이지 않고 퍼져나간다면 얼마나" 복될까요? 문제는 "많은 영혼이 기독교인임을 자처하지만, 말씀이 퍼져나가는 은혜를 체험한 영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주는 물론 남은 우리 삶에서, 교회와 나로부터 말씀이 퍼져나가는 체험과 승리를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나님 말씀이 퍼져나가려면, 우리가 담대함으로 빛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47절은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두 사도는 "49:6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말씀과 빛이신 예수를 모든 곳, 모두에게 퍼트리며, 땅끝까지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그러나 "당시 두 사도는 많은 박해와 고난을 겪었기에, 담대해야 했고, 실제로 담대했기에, 말씀이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담대히 말하여, 원어는 '바로 옆에서, 간접보다 직접 다가가서 말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두 사도가 이방인 옆으로 다가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퍼트렸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완악한 이방인이, 두 사도가 옆으로 다가가서 말한다고 예수를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도행전은 두 사도가 말씀을 삶으로, 복음의 빛을 직접 보여 주면서 사역했음을" 강조합니다. 두 사도는 "받은 말씀을, 삶에 쌓아 두지 않고, 오히려 담대함으로 직접 이방인에게 다가가서 빛의 삶으로 퍼트려서, 안디옥이 하나님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퍼져나감은 나부터 타인의 바로 옆에서, 말씀대로 살아냄을 보여 주어야 가능한 열매"입니다. 본문에서 "담대함은 겁 없고 당당함이 아니라, 삶에서 직접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바로 옆에서 말씀을 직접 보여 주라고 우리를 세상에 파송"했습니다. 전도 집회에서 "강사가 '불신자와 논쟁에서 기독교인이 이기거나 질 때, 언제 전도가 될까?'" 물었습니다. 모든 "회중이 고개를 젓자, 강사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불신자와 논쟁에서 지면 무지하다고, 이기면 말만 잘 한다며 안 믿는다!" 말씀의 "퍼짐은 말이 아니라, 직접, 옆에서 다가가서 복음을 삶으로 보여 줄 때" 가능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며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내가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을 알리지 말라!'" 말한대요.

 

이유는 "내 삶이 주변 사람에게 기독교인답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막는 장애물, 세상보다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마이클 프로스트의 ", '세상을 놀라게 하라!'는 삶으로 불신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기독교인의 접근 방법을 다섯 개 동사로 도전"합니다. "축복하기(Bless), 타인에게 복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진심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먹기(Eat), 불신자를 초대하거나, 함께 나누는 식사 자리를 통해, 복음을 퍼트려야 함을 도전"합니다.

 

"듣기(Listen), 옆으로 다가가서 주님 말씀과 타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배우기(Learn), 마음을 열고 성령과 불신자에게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파송되기(Sent), 나부터 타인에게 보내져서,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이처럼 "말씀이 퍼져나감은 그냥 쉽게 되지 않고, 나부터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서, 축복하고, 함께 먹으며 들어주고, 배워가며 파송되어야!" 가능합니다. 생각할수록 "예수께서 나만 은혜받고 잘 살라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이 수고해서, 내게 복음을 전해준 이유도, 나만 행복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게 말씀과 은혜를 주셔서 기독교인 되게 하심은, 받은 은혜로 세상의 불신자에게 먼저 다가가서, 복음의 빛을 퍼트려야 함에" 있습니다. 그렇게 "나부터 복음과 은혜의 통로가 되라고, 주님께서 죄인인 나를 살려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나부터 복음의 빚진 자로서, 세상 곳곳에 복음을 퍼트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는 "죄인 옆으로 먼저 다가가서, 삶으로 복음을" 퍼트렸습니다. 두 사도도 "먼저 이방인에게 다가가서, 박해와 핍박 중에도, 삶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지금도 먼저 불신자에게 다가가서, 양보와 배려로 말씀을" 전합니다. 많은 "선교사가 지금도 현지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예수의 사랑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훗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그동안 했던 일, 평생 이룬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받은 복음의 은혜를, 얼마나 주변 사람 옆으로 다가가서 전하고 퍼트렸는지'에 주목할 것"입니다. 한주도 "내가 받은 복음의 은혜를, 주변 사람 옆으로 다가가서 말씀을 전하고 퍼트리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하나님 말씀이 퍼져나가려면, 우리가 말씀을 듣고 지금 영접해야 합니다.

 

두 사도가 "안디옥에서 담대히 말씀을 퍼트리자, 본문 45절은 당시 유대인의 반응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불행히도, "정작 복음을 믿어야 할 선민이었지만, 하나님 백성이란 엄청난 특권이 있었지만,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좋은 기회를 거부"하였습니다. 반면에 "이방인은, 두 사도가 말씀을 전하고 퍼트릴 때, 즉시 영접하여 영생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본문 46절에서 '버리고, 향하노라' 이는 모두 현재형 동사"입니다. 당시 "유대인이 두 사도의 말씀을 듣고 거부하자, 두 사도는 즉시, 곧바로 이방인을 향해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도는 말씀을 거부한 유대인을 즉시 떠났고, 바로 이방인에게 다가가서 말씀을 전하자, 영생을 얻기로 작정 된 모든 자가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과거의 믿음, 현재의 믿음, 미래의 믿음까지도 기쁨으로" 받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 내게 주시는 말씀과 은혜를 받고 누리라고" 도전합니다. 지금 "은혜받지 못하면, 과거와 미래의 은혜까지, 모두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고후 6:2절은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 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말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말씀을 받기보다, 나중으로 미루는 변명과 핑계가 심히" 많습니다.

 

어떤 "교사가 고3 교실에서 '자려면 자, 놀려면 놀아, 신나게 놀다 보면 서울대는 너를 버려도 서울역은 너를 반겨줄 거야!'" 경고했대요. 연약한 "인간은 지금을 놓치면서, 나중에 더 잘할 기회가 또 온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21절은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말씀합니다. 이는 "출애굽 중 하나님의 권능을 믿었던 라합이, 여리고를 정탐한 선민의 요청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입니다. 선민은 "자신을 숨겨준 라합에게, '전쟁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매면 살 수 있다.'"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라합은 이 말을 듣고,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정탐꾼이 떠나자마자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았습니다. 그렇게 "라합이 지금 즉시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 훗날 메시아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우리 교회와 나부터 말씀을 쌓아 두기보다 퍼트리려면, 나부터 지금부터 헌신해야!" 합니다.

 

물론 "영적 갈등과 도전, 방해가 많지만,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과 도전이 버거울 수도 있지만, 들은 것을 지금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내가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훗날 받을 은혜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만일 지금 은혜받지 못한다면, 어쩌면, 지금 내가 받을 은혜를 타인이 받고 누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이 "지금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데, 어쩌면 지금의 내가 가장 젊다는 것을" 아세요? 지금의 "내가 미래의 그 어떤 시간보다, 가장 건강하고 정신과 영이 또렷함을" 아세요? 무엇보다 "지금 주어진 봉사와 헌신의 기회, 말씀을 퍼트릴 사명은 나중에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 '세 가지 질문'을 보면 이런 질문들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톨스토이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내게 해야 할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답했습니다. 라틴어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놓치지 말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원어의 의미는 훨씬 더" 깊습니다. 카르페 디엠! "이는 '하루를 수확하라.'란 뜻인데, 농부가 지금 가장 좋은 포도를 수확하지 못하면, 최상품 포도를 놓치기에, '카르페 디엠, 그날의 포도를 그날 수확하라!'란 도전"입니다.

 

따라서 "카프레 디엠은, 지금 내게 주어진 삶에서 받는 은혜로 충실하게 살아가야 함을 도전"합니다. 지혜로운 "영혼은 과거의 상처, 미래의 불투명함보다, 오늘을 믿음과 말씀 붙들고" 살아갑니다. 한주도 "우리 삶에 많은 일이 있겠지만, 카르페 디엠, 하루하루 오늘을 수확하는 마음으로 살아서, 말씀을 퍼트리면서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