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해/바나바

바나바 묵상(09) ▶ 고난 중에 맺어가는 풍성한 열매(사도행전 14:1~7).

다솔다윤아빠 2024. 10. 16. 05:34

1997"폴 스톨즈 박사는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 말했습니다. 역경지수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생산적으로 대응하는 능력과 수준, 어떤 역경에도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 판단으로 끊임없이 도전해서 목표를 이루어가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역경을 만나면, 쉽게 포기하는 유형, 역경에 적당히 안주하는 유형,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을 향하는 유형, 이렇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폴 스톨즈는, 어떤 공동체나 조직에서, 적당히 안주하려는 유형이 80% 정도이다."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역경과 고난을 겪게 되는데, 문제는 역경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있습니다. 불행히도 "똑같은 시간과 상황을 통과하면서, 혹자는 성장하기도 하고, 혹자는 퇴보를 겪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겪는 모든 역경과 고난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강하지만, 우리는 기독교인을 자처하면서, 고난과 역경에 너무 쉽게 쓰러지고" 맙니다.

 

두 사도가 "큰 핍박과 박해 때문에,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와 더베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안디옥에서 이고니온까지, 계속 무리를 선동해서, 두 사도에게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유대인은 두 사도를 말로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기에, 사역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대인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두 사도를 말로 상처 주고, 직접 폭행하면서, 무례하고 공격적인 태도로 계속 사역을 방해하며" 막았습니다.

 

이처럼 "고난이 심했는데도, 본문 3절은,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오래 머물렀다." 말씀합니다. 게다가 "본문 4절은,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었고, 본문 1절은,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말씀합니다. 이에 "본문은, 당시 두 사도의 사역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 열매는 참으로 컸다." 말씀합니다. 비록 "겪는 고난이 컸지만, 열매가 풍성했기에, 역경지수가 높았던 두 사도는 계속 다른 도시를 찾아 말씀을 전하고 퍼트리며, 영적인 열매를" 맺어갔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과 역경은 위기가 되기도 하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나와 하나님, 모든 사람마다 고난과 역경이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어 더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다행히 "삶의 모든 역경보다 더 큰 하나님 은혜가 있기에,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로 고난을 이기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지" 살펴봅시다.

 

고난 중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를 끊임없이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두 사도는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 피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 3절은,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말씀합니다. 상식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이 계속 자행된다면,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불행히도 "당시 두 사도가 겪는 고난은 인력으로 이길 수 없었고, 그대로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도는 오히려 이고니온에 오래 머물며, 고난 중에도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힘듦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가 컸고, 유대인에게 선동된 이방인을 복음으로 살리려는 사명감도 컸고, 무엇보다 일신의 안전보다 복음 전파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두 사도는 '주를 힘입어 예수께 집중해서' 주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공급하시는 은혜가 두 사도를 더욱 굳건하고 강건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도는 엄청난 고난에도, 계속 복음을 전하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았고, 그 결과,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 말씀을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존재이지만, 불신자와 확연히 달라 보일 정도로, 독특한 표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세상과 구별됨은, 하나님과 연결된 은혜에" 있습니다. 불신자는 "역경과 고난을 세속적 방법으로 이기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급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역경을 외면하지 않고, 당신 일처럼" 아파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하나님 은혜를 계속 공급받아야!" 합니다. 진짜 "기독교인은 단지 교회에 나오는 것보다 하나님과 깊이 연결된 영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진짜 기독교인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민을 위해서, 사울과 다윗, 솔로몬을 택해서, 각각 40년간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사울과 솔로몬은 처음은 좋았지만, 그 끝이 불행"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해서, 아들들과 비참하게 전사"했습니다. 솔로몬은 "그 끝이 안 좋아서,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고, 북 왕국의 패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과 "솔로몬의 문제는, 하나님과 영적인 연결이 끊어져서, 위로부터 공급하는 은혜에서 멀어짐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냄은 하나님과 연결됨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개인과 국가, 교회의 운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얼마나 깊고 강한지에 따라서,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결같이 풍성한 은혜를 공급하지만, 우리가 내 뜻과 다르다고, 시험, 상처, 고집, 편견으로 하나님 은혜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문제는 "하나님 은혜가 공급되지만, 우리가 그 은혜를 거부한다고, 하나님께서 손해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고 영적 공급이 끊어지면, 내 역경지수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인을 "둘로 나눌 수 있는 데, 먼저, 왕 같은 제사장, 택한 족속과 같은 기독교인"입니다. 풍성한 "은혜를 공급받기에,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에 무엇을 하든 평안하고 넉넉"합니다. 반면에 "걸인처럼 힘겹고 고되게 살아가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서, 그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는 항상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공급받으며"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은혜를 공급받아도 역경과 고난은 여전히 나를" 괴롭힙니다. 유명한 "찬양, '나는 믿네!'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겪는 시험이 어렵고 힘겨워도 내 주님보다 크지 않네. 내 앞의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리." 살면서 "우리는, 내 뜻과 전혀 다르게 바다처럼 막막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역경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주저앉고 싶어지고, 낙심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가 공급되면, '고난의 바다가 갈라지고, 갈라지지 않으면, 바다 위를 걷을 수 있다.' 도전"입니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힘들 때, 하나님은 그 고난의 바다 위를 걷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한결같은 은혜와 힘을 공급하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한주도, 우리 삶에 고난이 크고 깊어도,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으며, 고난 위를 걷는 승리를 주심을 믿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2. 고난 중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주신 소명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연약한 "인간은 처음 겪는 어려움에 많이 당황하고 힘들어하는데, 같은 어려움이 계속 반복되면" 어떨까요? 두 사도는 "안디옥에서 1년간 열정적으로 사역하며,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보냄을 받았지만, 바보와 안디옥, 이고니온, 그리고 루스드라와 더베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대인의 핍박과 박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만일 "두 사도가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말해도 누가 뭐라고!" 했겠어요?

 

게다가 "마가 요한은 밤빌리아 버가에서 중도 하차"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핍박과 박해가 반복되어 힘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둘은 핍박과 박해로 힘들수록, 더더욱 사명을 붙들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명 붙들고 흔들리지 않고 이겨냈기에, 많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들였기에, 오늘 나에게까지 온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매사에 한결같을 수 없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공급하는 말씀과 은혜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데,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 시험과 상처로 내가 약해지고,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변해가기에, '받은 소명이 무엇이고, 무엇이 선과 악인지'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특히 "하나님 주신 소명을 망각하기에, 과거의 악습에 또 빠져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또 반복"합니다. 이처럼 "연약한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가, 하루에 장례식과 결혼식이 함께 섬기며,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졸았습니다. 문제는 "결혼식을 시작하며, 정신이 혼미했던 목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사랑하는 고 OOO군과 고 OOO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연약하고 온전하지 않아서,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살면서 흔들리는 영혼과 굳건하고 단단한 신앙을 가진 영혼이 맺는 열매가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굳건함! "흔들리지 않음, 그런데도 믿음을 지킴이, 항상 신실한 열매를 맺어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면서 흔들리면 시간이 갈수록, 작고 사소한 일에도 계속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매사에 "어렵다고 멈추려 한다면, 더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막바지에, 여리고를 지나가시는데, 두 시각장애인이 크게" 소리쳤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문제는 "당시 무리가 두 시각장애인에게 '조용히 하라.' 꾸짖었지만, 이들은 더욱 크고 간절하게" 소리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사람들의 핍박에도, 체면과 자존심마저 다 버리고, 계속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이 마침내, 두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 주었습니다. 믿음은 "처음 가지는 것보다, 이를 끝까지 빼앗기지 않고, 약해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귀의 "공격은 믿음을 흔들어서 빼앗고, 영생까지 잃게!" 합니다. 이에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지킬 때, 지켜낼 때, 능력이" 있습니다. 1:17절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합니다. 또한, "17:12절은,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믿음, 내려오지 않게 하다.' 두 경우 모두 에무나란 단어를" 썼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신앙생활은 항상 평탄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워도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말씀합니다. 따라서 "구원받는 믿음은 세상이 변하고 주변이 악해져도, 모두가 힘들고 어려워져도 버티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물론 "견디고 버티는 것이 너무도 어렵지만,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말씀으로 버티고 견딜 때, 하나님 주시는 열매도" 커집니다. 이민자의 "삶이 버겁지만, 내 의지와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버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무엇보다 "어렵고 힘들수록, 믿음으로 버티고 견딜 때, 하나님 주시는 상급과 변화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포기하면 편할 수도 있고, 덜 힘들 수도 있지만, 삶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주도 "하나님이 내가 힘들어함을 알지만, 그래도 버티고 견디려 할 때, 새 힘을 주시기에, 소명 붙들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