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19) - 주님의 죽음이 다가오기에.

다솔다윤아빠 2024. 8. 2. 01:04

@ 2023년 사순절 특새(19-230315) 주님의 죽음이 다가오기에(14:1~9).

 

* 맨발로 "마라톤을 완주하여 올림픽 2연패를 이룬 아베베는, 훗날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 아베베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내겐 아직 건강한 두 팔이 있다!' 말하며 팔의 힘을" 단련했다.

- 그리고 "1970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 썰매경주 부분에서 우승하여 또 다른 금메달을 획득"했다.

- 우리 "인생에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 찾아오지만, 문제는 현실의 어려움보다 절망에 빠짐에" 있다.

-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기독교에서 절망은 가장 악한 죄이다!'" 말했다.

 

* 물론 "절망은 원인 없이 다가오지 않지만, 그래도 절망을 이길 방법을 찾으면 더 나은 길이 분명히"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도 절망에 빠져 포기하기보다, 절망을 이길 방법을 말씀과 은혜로 찾기" 원하신다.

- 본문 1절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주님을 흉계로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말씀한다.

- 게다가 "주님은 본문 8절에서,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을 사람들이 책망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당시 "제자들은 이를 깊이 깨닫지 못했지만, 외적으로, 내적으로 주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 문제는 "주님의 죽음은 제자에게 가장 큰 절망이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도록 포기를 유발하는 아픔"이었다.

- 당연히 "본문의 분위기는 무겁고, 어둡고, 희망과 소망보다는 절망과 낙담, 어두움이 더 깊었을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주님의 죽음이 절망으로 다가왔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음을" 안다.

- 달리 말하면, "주님의 죽음은 절망 그 자체였지만, 얼마 후, 주님의 죽음은 소망 그 자체가" 되었다.

 

*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삶의 절망에 함몰되어 절망하고 낙담으로 살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 실제로 "우리가 알듯, 절망은 내 삶을 무기력하게 하고, 아무런 소득과 열매가 없도록 이끄는 악함이" 크다.

- 그러므로 "오히려 우리는 절망을 통해, 배워야 할 것, 절망을 통해 주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소망해야!" 한다.

- 더욱 "중요한 것은, 절망을 이기는 소망의 복음은 오직 하나님 말씀과 은혜로만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 사순절 "19일째, 우리가 주님의 죽음이 다가오기에, 절망을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보자!

 

주님의 죽음이 다가와도, 그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바르게 알고 해석하고, 이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

 

* 어떤 "청년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부자이지만 구두쇠인 아버지에게 차를 사 달라고" 졸랐다.

- 이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사람에게 왜 두 다리가 있는 줄 아니?' 말하며, '걸어 다녀라!' 말하려" 했다.

- 이에 "아들이, 아버지 질문에 바로 '! 아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있죠!'" 답했단다.

- 인생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그 추구하는 방법과 목표가 달라질 수" 있다.

- 나아가서 "삶은 물론 절망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인생에서 상급과 열매를 바꾸는 원인이 될 수" 있다.

 

* 실제로 "지혜로운 영혼은 절망이 가득한 무덤에서도 소망과 생명을 보지만, 어리석은 영혼은 소망이 가득한 곳에서도 죽음과 절망, 다 포기하고 싶은 낙담을 볼 수밖에" 없다.

- 이처럼 "삶에 다가오는 절망과 믿음도, 내가 어떤 관점,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도전"이다.

- 본문은 "주님의 죽음이 다가오는 중, 이를 해석하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비교하여" 말씀한다.

- 하나는 "가룟 유다가 해석하는 관점으로, 유다는 주님의 죽음에 관하여 본문 4~5절에서 이렇게" 항변했다.

 

*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 요한은 "당시 유다가 돈궤를 맡았지만, 도둑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유다의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 유다는 "주님의 죽음이 다가왔지만, 자신이 챙길 이익, 자기 위주로만, 주님의 죽음을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 반면에 "주님의 죽음이 다가왔지만, 베다니 여인,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의 관점은 이와" 달랐다.

 

* 본문 8절은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말씀한다.

- 물론 "여인이 주님의 죽음을 정확히 알고, 장례를 위해서 향유를 부었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다.

- 그러나 "적어도! 주님의 죽음을 유다처럼 이기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달랐다.

-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죽음, 절망의 상황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주님의 평가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 부족해도 "우리가 절망을 통해 일하실 주님의 의도와 계획을 알면, 우리 믿음은 후세에까지 본이 될 수" 있다.

 

* 반면에 "우리가 절망으로 넘어지고, 내 이익만 생각한다면, 마침내 주님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다.

- 기독교인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는 대속의 죽음임을 알아야!" 한다.

- 주님의 "죽음은 절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죽음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서 절망을 만날 때, 이를 하나님 관점으로, 믿음으로 해석하며 살아가야!" 한다.

- 믿음으로 "해석하면, 절망에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고, 새롭게 다가오는 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바울이 "3차 선교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는데, 많은 사람이 바울을 만류하고" 막았다.

-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당할 고난과 박해, 어쩌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 바울에게 "박해와 고난은, 어쩌면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바울은 박해와 고난을 자신을 로마를 넘어 스페인까지 보내실 하나님의 비전과 꿈으로 해석해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 바울은 "박해와 고난, 절망을 더 크고 위대한 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디딤돌로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 살면서 "절망은 분명히 힘들고 버겁지만, 내 관점과 해석에 따라, 절망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 사람은 "누구도 절망으로 넘어져서 삶을 끝내고 싶지 않기를 원하기에, 관점과 해석을 바꾸어야!" 한다.

- 무엇보다 "절망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절망을 아시고, 절망을 이길 방법과 은혜를 예비하고" 계신다.

-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이 다가올수록, 절망이 클수록, 내가 영적 눈을 열어 내 믿음을 다잡아야!" 한다.

- 사순절 "19일째, 절망이 있지만, 하나님 관점, 말씀의 관점으로 절망을 극복하고 승리하기" 원한다.

 

2. 주님의 죽음이 다가와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더 마음을 쓰며 헌신하며 살아가야 한다.

 

* 미국 "다이빙 선수 로라 윌킨슨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3개월 전, 부상과 싸워야!" 했다.

-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무려 7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기에, 모두가 올림픽 출전을 만류"했다.

- 그러나 "윌킨슨은 어렵고 힘든 중에도, 4:13 절 말씀을 암송하고 또 암송하며, 훈련을" 이어갔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절망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과 훈련의 목표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채널과 맞추었던 것"이다.

 

* 마침내 "당시 중국이 여성 다이빙을 거의 독식했는데, 기적과 같이 10m 다이빙에서 우승"했다.

- 우승 후 "인터뷰에서, 로라 윌킨슨은 '저에게 능력을 주신 분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 답했다.

- 이처럼 "절망 중에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찾았던 윌킨슨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우승"했다.

- 분명한 것은 "주님의 죽음이 다가올수록, 낙담하면 낙담으로 끝나고, 소망을 보면 소망으로 승리할 수" 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분명한 영적 원리지만, 이를 체험하는 기독교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 본문 3절은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말씀한다.

- 당시 "베다니의 마리아는, 주님을 향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부정적 생각과 위협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러나 "마리아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주님을 뵙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향유를 온전히" 드렸다.

- 분명한 것은 "마리아의 행위가 가룟 유다를 통한 논쟁을 유발하려는 목적으로 향유를 부은 것이" 아니었다.

 

* 비록 "절망과 어두움이 깊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높이고자 향유를 부었던 것"이다.

- 그렇게 "주님의 죽음이 다가오는 절망 중에도, 주님을 기쁘게 했기에, 주님은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절망 중에, '내 이익이 먼저인가? 주님을 기쁘게 함이 먼저인가!'" 묻는다.

 

* 본문은 "가룟 유다와 베다니 마리아를 비교하며, 절망 중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강하게" 도전한다.

- 힘들지만 "절망이 클수록, 오히려 절망보다, '지금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먼저 생각해야!" 한다.

- 그리고 "힘들어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행하면, 절망을 잊고, 삶의 보람을 찾아갈 수" 있다.

-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하면, 절망을 이길 방법을 찾고, 내 삶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 팬더믹과 "전쟁, 지진으로 인한 절망이 크지만, 어쩌면 지금이 더욱 하나님 기뻐하실 것을 찾아야 할 때"이다.

 

* 1:22절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말씀한다.

- 하루아침에 "재산과 10명의 자녀, 게다가 건강까지 잃었다면, 세상에 이런 절망이 또 어디에" 있을까?

-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미칠 수도 있고, 정신 줄을 놓아 버릴 수도 있고, 자살을 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그러나 "욥은 마음은 물론 입술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 물론 "세 친구의 격동으로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하나님 기뻐하심을 먼저" 찾았다.

 

* 그 결과 "하나님은 욥이 잃은 모든 재산의 두 배를 주시고, 장수와 건강의 복까지 허락해" 주셨다.

- 절망 중에 "절망으로 끝나면 거기서 끝나지만, 오히려 하나님 기뻐하심을 찾으면, 역전이" 있다.

- 그리고 "그 역전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은혜와 회복, 치유로" 다가온다.

- 물론 "절망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 기뻐하심을 먼저 찾음은 믿음의 결단이요 선택"이다.

- 사순절 "19일째, 삶의 절망이 적지 않지만, 먼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