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3 마가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 사순절 마가의 발자취(21) - 또 다른 유다가 되지 않으려면.

다솔다윤아빠 2024. 8. 2. 01:06

@ 2023년 사순절 특새(21-230317) 또 다른 유다가 되지 않으려면(14:17~21).

 

* 속담은 "아니지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욕하면서 배운다.'라는 말을 자주 쓰고, 또 체험하기도" 한다.

- 일례로 "시모에게 극심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자신이 시모가 되면, 더 독한 시모가" 된다.

- 군대에서 "선임에게 혹독한 어려움을 당하면, 말년에 자기는 더 혹독한 선임이 되어 타인을 괴롭히기도" 한다.

- 직장에서도 "심지어 목회 현장에서도, 누군가를 욕하고 비판하지만, 자신이 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주님은, 7:2절에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하셨다.

- 지혜는 "틀린 것, 아닌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따라 하지 않아서, '2~'이 되지 않는 것"이다.

- 주님은 "본문 21절에서,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유다를" 평하셨다.

 

* 주님은 "주님을 판 '유다가 화가 있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말씀하셨다.

- 그만큼 "유다가 돈을 받고 주님을 판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 영국의 "어떤 사원에는 12 사도 이름을 새긴 나무가 있는데, 유다의 이름이 있는 나무만 시들었다고" 한다.

- 이유는 "유다의 악행을 책망하고 저주했기 때문인데, 문제는 우리도 유다처럼 행할 때가 참으로 많음에" 있다.

- 마치 "욕하면서 배우는 것처럼, 유다의 배반, 돈에 마음을 빼앗김이, 우리도 제2의 유다가 될 때가" 많다.

 

* 문제는 "그렇게 유다를 욕하면서 유다처럼 살아가는 것이 틀렸다면, 이제부터라도 내 삶을 바꾸어야!" 한다.

- 더는 "욕하면서 배울 것이 아니라, 욕한다면 이를 행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려는 결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핵심은 "내가 또 다른 유다가 되지 않으려면, 이는 인력이 아닌 말씀과 은혜의 힘을 덧입어야!" 한다.

- 사순절 "21일째, 우리가 오늘도 또 다른 유다처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살펴보자!

 

우리가 또 다른 유다가 되지 않으려면,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 어린이 찬양 중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2절의 가사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이 참으로" 크다.

- "이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하나님이 가르쳐준 한가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 짧고 "흥겨운 찬양이지만, 우리가 훗날 주님을 만나서 뭐라고 해야 할 말이 있어야 함을" 도전한다.

- 무엇보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미움 다툼 시기 질투를 버리고 사랑해야 함을" 강조한다.

 

* 문제는 "우리는 훗날 주님 앞에서 해야 할 말이 있지만, 매일의 일상에서도 주님께 할 말이 있어야!" 한다.

- 부끄러움은 "훗날 주님 앞에서만 논할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도,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말아야!" 한다.

- 그도 그럴 것이 "이 땅에서 주님 앞에서 부끄러웠는데, 어떻게 훗날 주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는가?

- 물론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전혀 부끄럽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을 줄일 수는" 있다.

- 그러므로 "신실한 신앙생활은, 이 땅은 물론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줄여가는 삶일 것"이다.

 

* 본문 18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말씀하셨다.

- 문제는 "본문 19절인데,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말씀한다.

- 당시에 "만일 제자 중 적어도 주님을 팔 마음이 없었다면, 주님 말씀에 흔들리거나 물을 필요가" 없었다.

- 주님을 "팔 마음,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주님의 말을 듣고, 분개하며 '누구냐? 누가 감히!' 소리쳐야!" 했다.

- 더욱 "기막힌 것은, 유다를 제외한 11명 중에서 하나라도, 몇 명은 '나는 아니에요!' 말해야 하지!" 않을까?

 

*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아주 부끄럽게 고개 숙이며" 물었다.

- 비록 "유다처럼 직접 행동으로, 돈을 받고 대제사장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제자들은 각자 마음에 주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운 언행이 생각났고, 그래서 '나는 아니지요?'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이를 보면, "당시 11명 제자 중에도, 어쩌면 심적으로, 영적으로 제2의 유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 문제는 "과연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말씀하시면, 그 반응이" 어떨까?

 

* 우리 중 "과연 몇 분이나 '나는 아니에요! 누가 감히 주님을 팔려고 해!' 거룩한 분노를" 표할까?

- 어쩌면 "우리는 주님의 질문에, 더 깊이 고개를 숙이고, 할 말을 잃고 자리를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이유는 "우리는 어린이 찬양처럼, 삶에서 미움 다툼 시기 질투에 빠져 살아갈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 "당당하게 '나는 이렇게 했어요!' 말하기보다 '어쩔 수 없었어요! 죄송해요!'가 더 많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주님께 부끄러운 언행과 선택을 줄이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고전 11:1절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씀한다.

- 바울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세상 그 누구도 아니고, 예수를 본받고 살아가려고 항상 선한 싸움을" 싸웠다.

- 힘들었지만 "말씀으로 마음의 법, 유체의 법과 싸워서 이겨나갔기에, '나를 본받아라!' 말씀한 것"이다.

- 따라서 "우리도 제2의 유다가 되지 않으려면, 성령님 음성에 순종해서 육체와 마음의 법을 지켜나가야!" 한다.

- 마귀가 "미혹하여 내 욕심이 생기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생길 때, 성령님 음성을 먼저 들어야!" 한다.

 

* 그리고 "의도적으로, 힘이 들어도 나와 세상 음성이 아닌 성령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 처음에는 "성령님 음성대로 살아감이 쉽지 않지만, 그 삶이 반복되면, 부끄러움은 점점 줄어갈 것"이다.

- 그렇게 "성령님 음성을 듣고 부끄러움을 줄여가야, 자녀와 동역자에게, 나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우면 위축되고, 자신감을 상실하고,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 사순절 "21일째, 오늘도 우리가 성령님 음성에 순종하여 부끄러움을 줄여가며, 유다처럼 살지 않기" 원한다.

 

2. 우리가 또 다른 유다가 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깊이 듣고 깨달음도 깊어야 한다.

 

* 많은 이민자가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안타깝게도 '영어도 못 하고 한국말도 못 하게 되었다!'" 하소연한다.

- 저도 "미국 생활이 23년째인데, 가끔 한국 방송은 물론 미국 방송을 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너무" 많다.

- 특히 "아이들은 웃는데, 저는 왜 웃는지를 몰라서, 어색하게 따라서 웃을 때가 적지!" 않았다.

- 과거 "미국에서 처음 공부를 할 때, 학생들이 웃으면, 의미도 모른 채, 알아듣는 척하며 웃곤" 했었다.

- 핵심은 "듣지만, 그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깨닫지 못해서, 이처럼 어색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이를 "달리 해석하면,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이처럼 말씀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깨닫는 척하며" 살아갈까?

- 그래도 "직분자로 오래 믿었기에, 다 깨닫지는 못해도, 내가 못 깨닫는 것처럼 보이면 무안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말씀을 듣고, 예배드려도 말씀에 대한 깨달음 없음이 반복된다면, 나도 제2의 유다가 되지!" 않을까?

- 그도 그럴 것이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기에, 말씀과 역행하고,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말씀을 깊이 듣고 깨달음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만 줄 수 있는 거룩한 은사"이다.

 

* 본문 20절에서 "주님은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누가 팔지에" 답하셨다.

- 제자들이 "주님을 누가 팔지 관심을 깊이 가졌다면, 누가 주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지 관찰해야!" 했다.

-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누가 주님과 그릇에 손을 넣는지' 깨닫지" 못했다.

-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제자들이 유다가 주님을 팔 것을 알았다면, 적어도 유다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산만했고, 말씀에 집중하지 않았고, 그냥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 나아가서 "유다는 왜 삼 년간 동고동락한 주님을, 주님을 가장 거부하던 대제사장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을까?

- 만일 "유다가 주님의 사역과 말씀에 깊이 깨달았다면, 주님을 파는 일은 절대로 없지!" 않았을까?

- 이처럼 "주님을 파는 사건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 주님을 제대로 몰랐고, 깨달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불행히도! 말씀을 깨닫지 못했기에, 유다는 물론 제자들 모두 주님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말씀을 깊이 깨달음은 너무도 중요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이다.

 

* 하지만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 없이, 교회 마당만 밟고, 교회에 와도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에 빠져서, 진리와 복음과 무관한 것에만 마음을 빼앗겨,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다.

- 실제로 "오늘날 교회로 오는 발걸음은 많지만, 과연 말씀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 두렵게도 "많은 분이 교회로 오지만, 그들이 신실함보다 제2의 유다처럼 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 교회마다 "부흥과 성장이 어려운 이유는 불신자와 세상이 아니라, 말씀을 깨달은 교인이 줄기 때문" 아닐까?

 

* 실제로 "말씀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물론 세상도 더 선하게 달라지지!" 않을까?

- 우리가 "알듯이, 출애굽 1세대가 모두 광야에서 사망했는데, 이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얕았기 때문"이다.

- 모세가 "그렇게 반복하며 말씀을 가르쳤지만, 그들은 여전히 애굽 문화에 젖어 금송아지를 만들고" 말았다.

- 하나님 "보시기에,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에서 도저히 선민답게 살아가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다.

- 그래서 "하나님은 더더욱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을 깨달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강조했다.

 

* 하나님은 "선민이 가룟 유다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깨달음이 양보할 수 없는 주제였던 것"이다.

- 문제는 "오늘 우리도 말씀에 대한 깨달음 없이 진행하는 모든 것은, 마침내 세속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 무엇보다 "말씀의 깨달음은 내가 사모하는 만큼, 갈급한 만큼 더 깊게 새겨짐을 기억해야!" 한다.

- 무엇보다 "말씀을 깨달으면, 죄인이지만, 누구도 또 하나의 유다가 되어 주님을 외면하지!" 않는다.

- 사순절 "21일째, 우리가 더더욱 말씀을 사모하여 깊이 깨달아서, 유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승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