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요나서

요나서 묵상(03) -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다솔다윤아빠 2024. 8. 15. 04:30

@ 요나서 묵상(03-220814)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요나서 1:4~7).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하며 저마다 계획을 세우는데, 이유는 계획안에 내 목표와 의지 열정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계획대로 안 되고, 계획과 무관하게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과거 "우리가 어렸을 때, 방학이 되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어떻게 방학을 잘 보낼지 계획을 세워보지만,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이 어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들이" 있습니다.

 

먼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그렇지 뭐!' 부정적 생각으로 나를 자책"합니다. 둘째 "'어차피 안돼! 소용없어!' 무책임한 말과 생각으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셋째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고 다시 시작해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기" 원하실까요? 요나가 "말씀을 거부하고 다시스 행 배를 탄 후, 본문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얼마 후, 여호와께서 큰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당시 "하나님께서 내리신 큰바람과 폭풍은 다시스 행 배를 깰 정도로, 배에 탄 모두가 두려울 정도로, 그 파괴력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특히 "내리셨다, 무엇인가를 강하게 내던졌다는 뜻으로, 바람과 폭풍의 강도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처음에 "요나는 자기 계획대로 모든 일이 되는 것처럼 보이자 기뻤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뜻과 다른 요나의 계획을 하나님 방법대로" 막으셨습니다.

 

마침내 "요나는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에 회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고, 오히려 뜻대로 되지 말아야 할 때가 더 많지만, 하나님 계획은 언제나,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올해는 "하나님 계획으로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이 해방된 광복 77주년"입니다. 함석헌은 "저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해방을 이렇게" 말합니다.

 

"해방을 미리 안 사람은 없었다. 이는 아무도 꾸미고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은 오직 하나님 계획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생각할수록 "인간과 하나님 계획이 매사에 일치하면 좋겠지만, 현실을 보면, 정반대일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계획을 먼저 찾아야 하고, 이에 내 계획을 맞추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내 계획이 하나님과 다를 때, 내 계획대로 안 될 때,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갈지" 살펴봅시다.

 

살면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누구를 부를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본문 5~6절에서 "사공들과 선장은 심히 두려워서 자기 신을 부르고, 요나에게도 일어나서 네 신에게 구하라!" 명했습니다. 여기서 "부르다. 와이즈아쿠는 짐승이 큰 소리로 울부짖는 모습, 깊은 절박함을" 뜻합니다. 특히 "출애굽 선민이 노예로 엄청난 박해를 당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도 와이즈아쿠 동사가" 쓰였습니다. 또한 "선장이 배 밑창에서 잠든 요나에게 절박하게 '일어나서 구하라!' 명하는데, 여기서 두 동사 사이에 접속사가" 없습니다.

 

직역하면 "일어나라, 구하라. 잠든 요나를 향한 강한 책망"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길을 막자, 불신자는 살려고, 짐승이 울부짖듯 자기 신을 찾았지만, 선지자 요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영육이 잠들어서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구를 찾고 부르는지, 어떤 도움을 청하는지로 그 영적 수준이" 보입니다. 실제로 "혹자는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사람과 세상, 인터넷을 검색" 합니다.

 

반면에 "혹자는 잠깐 멈추고 하나님 계획이 무엇인지, 그 답을 말씀에서" 찾습니다. 과거에 "일부 목사가 역술인을 찾아가서 '어디에 교회를 개척하면 부흥할지' 물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많은 기독교인이 그날의 운세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새해를 토정비결로 시작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야 하고, 누구를 불러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날 때가 더" 많습니다.

 

왕상 18:21절은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말씀합니다. 이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영적 전쟁을 치르기 직전에, 선민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당시 "극심한 가뭄과 우상 숭배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더 큰 문제는, 선민이 누구를 부르며 도움을 청해야 할지 그 방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문제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이는 오늘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 오면 하나님을 따른다고 결단하지만, 교회 문만 나서면 다시 세상에 빠져" 들어갑니다. 심지어 "매사에 영적으로 머뭇거리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 않고, 마침내 길이 더욱 막혀도 큰 문제의식조차" 없습니다.

 

43:1절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매번 "반복하여 죄짓는 나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너는 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 계획대로 안 될 때, 더더욱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답이고, 막힌 것을 열어주시고, 나를 온전히 책임질 분이기 때문"입니다.

 

무디가 "집회 중 자주 선포했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너 자신을 믿어보라, 만족을 누릴 수 없고 반드시 실망할 것이다. 친구를 믿어보라! 친구는 죽거나 헤어질 것이고, 사람이기에 절대로 온전하지 않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그것은 끝이 있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계획대로 안 될 때, 나와 친구, 내 명성과 예수 중 누구를 부르고" 찾으세요?

 

팬더믹과 "전쟁, 이 시대의 어려움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 삶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때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의 함정들이 내 계획을 막아서기도" 합니다. 문제는 "국권의 회복을 소망했던 우리 선조도 이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는 자유와 주권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당연한 권리조차 계획하지 못했고, 참으로 비참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 계획을 찾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계속 하나님을 부르며 도움을 청했던 우리 선조에게, 36년 만에 해방을 허락"하셨습니다. 핵심은 "계획대로 안 될 때,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찾아야, 가장 선한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한주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2. 살면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본문은 "큰바람과 폭풍으로 배가 깨질 듯 위험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말씀합니다. 특히 "본문 5절에서 두려움은,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뜻합니다. 당시 "모두가 두려워서 돈 되는 물품과 식량까지도, 살기 위해 다 바다에" 내버렸습니다. 선장도 "처음 본 요나에게 '일어나서 하나님께 구하라!' 소리칠 정도로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요나만 배 밑창에서 여전히 잠자며, 깊은 무기력에 빠져 폭풍을" 맞았습니다.

 

또한 "본문 7절에서, 선원들은 제비를 뽑아 풍랑의 원인을 찾았고, 마침내 요나가" 뽑혔습니다. 생각할수록 "큰 폭풍 중 제비뽑아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한들 뭐가" 나아지겠어요? 이처럼 "연약한 인간은, 큰 폭풍 앞에서 두려움 무기력 책임 회피로 대응하며 상황이 더 나빠졌던 것"입니다. 토인비는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말했습니다. 실례로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여 살아남은 민족과 문명은 번영을" 누렸습니다.

 

반면에 "무사안일로 바르게 응전하지 못한 민족과 문명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핵심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이에 반응하는 내 태도와 자세"입니다. 만일 "계획대로 안 된다고 두려워하고, 무기력한 회피와 책임 전가로 대응하면, 길은 더 닫힐 것"입니다. 이유는 "두려움과 무기력한 회피, 책임 전가는 열린 길조차 더 막고, 나와 모두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딸이 "엄마에게 삶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딸을 주방으로 데리고 가서, 세 개의 냄비에 물을 넣고, 각각 당근 달걀 커피를" 넣었습니다. 얼마 후 "냄비 세 개가 각각 끓자, 엄마가 딸에게 냄비 속 당근 달걀 커피가 어떻게 변했는지" 물었습니다. 딸이 "냄비를 각각 살피고서, '당근은 물렁물렁해졌고, 달걀은 더 단단해졌고, 커피를 더 깊은 향을 내요!'" 답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딸에게" 말합니다. "당근 달걀 커피가 똑같이 끓는 물을 통과하면서, 당근은 무르고 약해졌다! 달걀은 더 단단해졌다! 커피는 향기롭게 변했다. 그렇다면 지금 고난에 대한 너의 반응은 더 약해졌니? 아니면 더 단단해졌니?" 119:71절은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매사가 내 계획대로 다 된다면, 고난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는 도전"입니다.

 

어쩌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야, 내가 다시 생각하고, 기도하게 되고, 영적 눈을 떠서 다시 하나님을 부르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오히려 내게 주신 믿음의 자리를 더욱 잘 지켜야!" 합니다. 요나가 "자기 계획대로 하나님을 회피하여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무슨 문제가 해결"되었나요? 오히려 "자기 계획과 다르게, 다시 믿음의 자리, 니느웨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며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살면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고 어려워질 때, 이 버거움을 이기려면, 내게 주신 믿음의 자리를 더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막혔던 길을 열어주시고, 더 선하고 복된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지!" 않겠어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다시 갈릴리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갔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어쩌면 "베드로는 유다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 수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연약함이 굴욕이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받아주셨고, 사도 베드로가 되게 역사"하셨습니다. 살면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어려움이 점점 깊어질수록, 내게 주신 믿음의 자리, 부모와 자녀의 자리, 배우자의 자리, 직장에서 주어진 자리, 교회에서 맡겨주신 자리를 더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고 사소한 문제로 쉽게 흔들리고, 믿음의 자리를 너무 쉽게 이탈"합니다.

 

77년 전 "우리 선조도 '끝났다. 안 된다.' 두려움과 포기, 책임 회피보다, 오히려 믿음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켜서, 하나님 은혜로 국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더 믿음의 자리를 지켰기에, 해방 후 한국교회는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내게 주신 헌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획대로 안 되어 억울해도, 믿음의 자리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한주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내 믿음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키며 날마다 승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