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묵상(13) - 어찌하여 이같이 하시나이까?

다솔다윤아빠 2024. 8. 16. 04:42

@ 출애굽기 묵상(13-231203) 어찌하여 이같이 하시나이까(5:15~6:1)?

 

한국의 "모 가수가,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서러워, 제발 좀 내버려 둬!' 항변하듯 노래한 곡이"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왜 나만, 어찌하여 남들은 안 겪는 아픔을 겪는지!' 낙담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나만 힘들고 가난하고, 나만 아픈 것 같고, 내 자식만 문제인 것 같다!' 생각이" 큽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 다 나름대로 아픔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누구나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속은 나름대로 큰 아픔과 눈물이" 있습니다. 어떤 "찬양은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 불평하지 마세요.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도 주님은 일하고 있어요. 힘을 내세요,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어요.'" 노래합니다. 문제는 "'왜 나만, 어찌하여' 삶에서, 내가 무엇을, 누구를, 어디를 바라보고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400년간 "노예로 살아오던 선민에게, 모세의 등장과 출애굽 비전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했습니다.

 

당시 "모세와 선민은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으로 믿었지만, 바로의 갑작스러운 억압과 폭정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뜻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왜 나만.' 이는 예상과 다른 현실과 결과로 인한 큰 두려움과 놀라움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왜 나만' 이런 현실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은 여전히 선민을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달프면, 내 아픔에만 집중해서, 하나님과 주변을 못 보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이런 삶이 반복되면, 점점 영적으로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올해 마지막 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맞습니다. 비록 "내 삶에 '어찌하여, 왜 나만!' 한탄이 커도, 다시 영적으로 힘을 내야 할 시기"입니다. 살면서 "'왜 나만, 어찌하여' 이런 아픔의 원인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살펴봅시다.

 

1. 우리가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고 살면, '어찌하여! 왜 나만!' 한탄과 절망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선민은 "4:31절에서, 하나님께서 선민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음을 듣고, 진심으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렇게 "선민은 모세와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에, 자신 있게 바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선민은 너무도 강한 바로의 협박과 폭력에, 모든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로는 "선민에게 '짚을 주지 않고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어 내라, 게으르다!' 강요하고 책망하며, 매를 때려서, 고통과 억압은 더 커져" 갔습니다.

 

마침내 "선민은 그렇게 환영했던 모세와 아론을 미워하며 배척했고, 모세와 아론도 받은 사명을 잃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불행히도 "선민, 모세, 아론, 모두 눈앞의 고난과 아픔, 억압과 폭력, 현실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바로의 강퍅함, 출애굽의 여정이 쉽지 않음을 말씀하셨지만, 이를 모두" 잊었습니다. 그저 "지금 눈앞의 내 삶이 힘들고 버거우니까, 내 계획과 뜻대로 안 되니까, '어찌하여! 왜 나만!' 불평만" 깊어졌습니다.

 

연약한 "인간은 눈앞의 현실, 지금 내가 겪는 일에 대한 평가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변적 존재"입니다. 아내가 "집에서 식사를 몇 끼나 하는가로, 남편을 다르게" 부른데요! "하루 한 끼면 일식 씨, 두 끼면 이식 군, 세끼를 다 먹으면 삼식이 새끼, 한 끼도 안 먹으면 남편님!" 저도 "과거 LA에서는 남편님이었는데, 지금은 삼식이 새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일에서 눈앞의 현실에 따라, 내 믿음의 분량까지도 오락가락하며" 살아갑니다.

 

눈앞의 "현실이 내 뜻대로 되면 기뻐하며 감사하고, 표정도 밝고, 내면의 자신감도" 커집니다. 반면에 "현실이 내 기대와 다르면, 불평과 원망, 낙담과 좌절이 많아지고, 관계까지" 깨집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눈앞의 현실과 동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고, 현실이 주는 무게와 부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눈앞의 현실에 따라 내 선택과 결정, 믿음의 양상까지 계속 변해간다면, 마침내 불 신앙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눈앞의 현실을 전부로 생각하여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주신 은혜와 사명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울과 "다윗은 사적으로 가족, 장인과 사위였지만, 사울의 괴팍함으로 정적이" 되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왕이 되었지만, 그 평가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훗날 "사울은 전장에서 비참하게 죽었지만, 다윗은 영광스럽게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사울은 하나님과 멀어진 후, 항상 눈앞의 현실만 보고" 살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무엇을 했는지, 누구인지, 왜 하나님이 쓰는지, 상관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다윗이 밉고 싫어서 죽이려" 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수많은 고난 중에도, 눈앞의 현실보다 하나님 약속을 붙들고 '어찌하여, 왜 나만' 현실을" 이겨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어디를, 누구를,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세요? 매번 "하나님보다 눈앞의 현실만 보고, 믿기보다 계산하고, 감사보다 원망이 크면 어떻게" 될까요? 핵심은 "눈앞의 현실만 보면, '어찌하여, 왜 나만!' 원망과 불평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눈앞만 보고 한탄과 낙담에 빠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버거운 삶에서 무엇을 누구를 어디를 보며 살아가야!" 할까요?

 

2. 우리는 한탄과 절망으로 힘든 중에도 나를 기다리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본문 6:1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말씀합니다. 당시 "선민, 모세와 아론이 '어찌하여, 왜 나만!' 원망하고 한탄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어려움을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선민이 낙담과 좌절에서 일어나서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강퍅한 바로가 당할 일을 볼 거야! 바로가 자기 뜻을 꺾을 거야! 약속대로 출애굽 할 거야!" 말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선민과 모세의 절망과 좌절을 책망하지 않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돕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현실은 "'어찌하여, 왜 나만!' 어렵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민과 모세를 위해 일하셨던 것"입니다. 훗날 "선민과 모세가 출애굽, 위대한 역사를 경험한 이유는, 그들의 공로와 자격, 믿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찌하여, 왜 나만!' 절망한 선민과 모세를 참아주고, 기다리고, 한결같이 힘있게 일하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불신은 "눈앞의 현실만 보고 '어찌하여, 왜 나만!' 낙담하게 하지만, 믿음은 지금도 일하는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이처럼 "성도의 가장 큰 힘은 '어찌하여, 왜 나만!' 현실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한결같이 나와 함께하며 일하시고 나를 기다려 주시기에, 그 하나님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결단은 철저하게 내 몫"입니다. 무엇보다 "내 믿음의 깊이, 내 마음의 평안과 영적 승리는 '어찌하여, 왜 나만' 현실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고,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찾고 의지하는가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10~02, 수술을 받던 날, 수술 대기실에서 마취과 의사가 제게 '걸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당시 "저는 '걸을 수 있다!' 답하고, 직접 걸어서 수술실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수술실은 무척 밝았고, 10여 명이 수술을 위해 많이 분주했고, 무척 추운 중에 수술대에 누웠는데, 특이하게도 십자가형 수술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이기에 "두렵고 긴장되었고, 무척 추웠는데, 당시 십자가형 수술대가 제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가 너를 밑에서 안아줄 거야! 너를 지키며 함께할 거야! 두려워하지 마라!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두려웠지만 "십자가형 수술대에서 주께서 저를 기다려 주셨음을 깊이 절감"했습니다. 그렇게 "8시간 반 동안 가슴을 20cm 열고, 수혈받으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 "무려 12개의 IV를 몸에 꽂고 나와서, 9일의 입원 기간에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수술 이튿날, 너무 아파서 뒤척이지도 못하는데, 2시간이나 의자에 앉혀 놓기도" 했습니다. 밤에 "아내가 귀가하면, 너무 아파서 용변 때마다 간호사를 부르는 것도 큰 고역"이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어찌하여, 왜 내가' 갈등과 한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시 십자가형 수술대에서 저를 기다려 주신 주님, 한결같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여러분의 기도가 있었기에, 이렇게 많이 회복되어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많이 회복되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아직 갈비뼈가 완전히 굳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허락을 받고, 이렇게 말씀을 나누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찌하여 내게, 왜 나만!' 한탄이 있지만, 그 한탄이 나를 회복시키고 더 낫게 하지!" 못합니다. 또한 "'어찌하여, 왜 나만!' 이런 현실은 절대로 사람의 조언과 도움으로 이길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오직 '어찌하여, 왜 나만!' 현실의 아픔은 하나님의 기다려 주심, 일하심, 함께하심으로만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살면서 '어찌하여, 왜 나만!' 한탄이 생기면,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일하심을 더욱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신하는 영혼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사로가 죽고,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렸던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죽은 오빠를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억울함과 안타까움으로,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기다렸던 요셉을 기억하고,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멸감과 상처가 컸지만, 하나님을 기다린 한나에게 사무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던 영혼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속도를 너무도 중시해서,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고, 너무도 성급"합니다. 하나님은 "매사에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기다려 주시지만, 나는 짧은 시간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주님은 "힘들고 어려운 우리를 여전한 사랑으로 기다리시며, 일하시며, 함께"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어찌하여, 왜 나만' 아픔을 이기고 돌아오기를, 다시 헌신하길, 다시 기도하길, 다시 신실한 예배자로 서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선 나부터 나를 여전히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회복과 치유, 은혜와 사랑을 소망하고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2023"대림절 첫 주일, 현실이 '어찌하여, 왜 나만' 힘들어도 나를 위해서 일하고 기다리는 주님 붙들고,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