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묵상(12) -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바로의 전략.

다솔다윤아빠 2024. 8. 16. 04:41

@ 출애굽기 묵상(12-230618)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바로의 전략(5:6~11).

 

어떤 "신학자는 마귀가 기독교인을 공격하는 방법이 시대에 따라 다르다!" 말했습니다. 마귀는 "구약 때는 율법주의로, 신약 시대와 로마제국 때는 핍박과 박해로, 기독교 공인 후는 돈과 명예, 형식적 신앙으로, 교회와 기독교인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마귀의 전략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 봉사하고 헌금도 잘 드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본받지 마, 십자가 복음을 믿기보다, 십자가를 장식품으로 여겨!"

 

그래서 "오늘날 교회와 교인은 많지만, 점점 참된 교회, 진짜 기독교인이 줄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말씀대로 예수 믿고 살아가기가 너무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마귀의 공격은 점점 다양하고 교묘해지는데, 우리는 너무도 안일하고 무지"합니다. "믿는다며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가까운 지체도 품지 못하는 편협함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와 내 신앙을 바로 세우려면, 무엇보다 마귀의 공격 전략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민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살피심과 찾으심을 듣고서, 모두가 진심으로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바로는 '선민을 보내라!' 모세의 말을 듣고, 선민의 노역을 이전보다 더 힘들게" 합니다. 심지어 "바로는 '저들이 일을 쉬려 한다. 게을러서 저런다, 모세의 거짓말에 속고 있다!' 선민을 더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게다가 "평소 벽돌 제작에 필요한 짚도 주지 않은 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끝내라!" 다그쳤습니다.

 

마침내 "선민은 바로의 공격에 모세와 아론, 하나님마저 비판하며 등을" 돌립니다. 그렇게 "선민은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의 집요하고 악랄한 공격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마귀의 "공격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기에, 우리는 반드시 마귀의 공격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는 누구나 마귀의 공격을 이겨야 함을 알면서, 정작 마귀의 공격이 시작되면, 선한 싸움보다 쉽게 포기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 중 혹자는 '지금 내 신앙은 괜찮아, 나 정도면 돼!' 자기 의로움에 빠져 있기도 하고, 혹자는 '나는 못해, 부족하고 쓸모없어!' 위축되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두렵게도 "마귀는 이처럼 우리의 자기 의로움과 위축됨을 잘 알고 더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집요한 공격을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바로의 전략은 미루지 않고, 즉시 공격함에 있습니다.

 

본문 6절은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 날은 모세가 바로를 만난 당일이고, 놀랍게도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들은 그 당일에 선민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감독, '폭력을 동반하여 어떤 대상을 압박하는 사람'을 세워서, 미루지 않고, 바로 그 날 즉시 폭력까지 동원하여 선민을 크게 핍박"했습니다. 이처럼 "바로의 즉시 공격하는 전략은, 선민에게 이전보다 더욱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마귀의 공격 전략이 이처럼 신속하고 집요하고, 한꺼번에 몰아친다!" 말씀합니다. 맹수가 "사냥할 때, 목표물을 주시하고, 최적의 때, 즉시 공격"합니다. 반면에 "사냥감은, 주변에 여러 동료가 있기에, '나는 아니겠지!' 생각하다가" 잡힙니다. 이처럼 "마귀의 타이밍은 정말 탁월해서, 연약한 기독교인을 가장 정확하게 찾아서 공격"합니다. 심지어 "마귀는 지금 내가 가장 약한 곳,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까지 정확히 알고, 즉시 공격"합니다.

 

또한 "마귀는 내 눈을 가려서 미워하게 하고, 죄를 죄로 인지하지 못하게 미혹"합니다.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리고, 마음에 섭섭함과 무시당한다고 오해해서, 내 마음과 영혼을 흔들어" 놓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마귀의 공격을 알면서도, 무방비로 당할 때가 더" 많습니다. 다윗이 "출정하지 않고, 지붕 위를 거닐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봅니다. 당시 "다윗은 밧세바가 충직한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불러서 동침"합니다.

 

다윗은 "마귀의 미혹에 굴복하여 욕정에 눈이 멀었고, 훗날 밧세바 임신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우리아를 불러들여서 자기 죄를 덮으려" 했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사탄에게 속아서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보내서 죽이고" 맙니다. 문제는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성군 다윗의 삶에서 일어났다면, 오늘 우리는 더하지!" 않겠어요?

 

이처럼 "악한 마귀는 직분과 신앙 연륜, 상황과 시간조차 가리지 않고, 누구든 틈만 보이면 즉시 공격"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마귀의 즉각적인 공격을 이겨내려면, 우리가 더욱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미루지 말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당시 "바로는 당일에 즉시 선민을 공격했지만, 선민은 그렇게 시작된 바로의 공격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바로의 공격 전략을 몰라서 헤매다가, 모세와 아론, 서로를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선민이 즉각적인 바로의 공격을 받고, 선민도 즉시 하나 되어 믿음을 지켰다면" 어땠을까요? 문제는 "마귀의 공격은 이처럼 즉각적이지만, 우리는 매사에 나중으로 미루다가 때를" 놓칩니다. 심지어 "마귀의 공격이 시작됨을 알고도, 다양한 변명과 핑계로 시간을" 끕니다. 마귀는 "우리를 공격할 때, 절대로 예고하지 않고,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라면, 일단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으면, 즉시 순종해서, 마귀의 공격을 처음부터 제대로 막아내야!" 합니다. "이따가 밥 먹고 할게! 숙제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할게! 새해부터 담배 끊고 운동할게!"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결심하고 약속해도, 실천과 행동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누군가 "'밥 먹고 할게!' 이는 '지금은 하기 싫다!' 강한 거부감이고, '내일 아침 일찍 숙제할게!' 이는 '내일 아침까지는 절대로 숙제하지 않겠다!' 강한 고집"입니다.

 

또한 "'새해부터 금연과 운동하겠다.' 이는 새해까지 계속 골초로, 운동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지만, 또 다른 핑계와 변명을 대며 딴소리" 합니다. 핵심은 "지금 못하는 것은 나중에도 잘 할 수 없고, 나중에 그 일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알면, 받은 말씀 그대로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연기하고 "미루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지금 실천하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 기억력이 나중보다 낫기에, 말씀 공부, 예배와 기도, 봉사와 헌신을, 바로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심중에 "'나중에 할게, 조금 회복되면 할게!' 생각하지만, 그 기회가 다시 안 올 수도 있기에, 지금부터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마귀의 "공격 전략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기에, 우리도 은혜받으면 일단 순종부터!" 합시다. 한주도 "말씀대로 꼭 감당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바로 실천하여서, 마귀의 공격을 이겨내기" 원합니다.

 

2. 바로의 공격 전략은,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본문 7절은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원어는 '그들이, 스스로' 두 단어를 모두 ''이란 단어로" 씁니다. 히브리 "문법에서 같은 단어의 반복은 강조를 뜻하는데, 특히 인칭 대명사의 반복은 감정적 흥분이 컸음을 강조"합니다. 생각할수록 "당시 바로가 점잖고 부드럽게 '전처럼 벽돌을 만들어야 한다! 게을리 일하면 안 된다!'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두가 듣도록, 흥분해서 큰 소리로 선민을 책망하며 압박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는 이성적 판단보다 흥분한 감정으로 선민을 공격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반면에 "선민은 흥분한 바로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전보다 더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마귀가 "우리 감정을 공격하면, 많은 사람은 바른 판단과 분별력을 잃고" 맙니다. 심지어 "아닌 줄 알면서 나도 격하게 감정으로 대응해서, 자녀와 배우자를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아닌 줄 "알면서, 나도 흥분해서 가까운 동역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귀는 우리 감정을 흥분하게 만들고,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자신은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렇게 "흥분하여 남은 감정적 상처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이 인간의 감정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향하는 모든 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고통받을 것이다."

 

"진정한 힘은 느긋하게 앉아서 논리적으로 상황을 관찰하는 모습, 감정의 절제에 있다. 만약 누군가의 말이 당신을 흥분하게 한다면, 누구나 당신을 흥분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심호흡하고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려라." 버핏은 "감정적 공격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흥분해서 즉시 대응하지 말고 기다려라! 관찰하고 절제하라!" 말합니다. 또한 "누군가 사소한 일로 나를 흥분하게 하면, 나는 누구에게도 쉽게 내 감정을 통제당할 수 있다!" 경고합니다.

 

그래서 "심호흡하고 기다리라고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하면, 정말 감정적 공격을 이길 수" 있습니까? 물론 "잠깐 감정적 공격을 이길 수는 있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 근본적 해결책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마귀가 감정으로 공격할 때, 더욱 말씀에 맞게 대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정은 가변적이지만, 말씀은 불변의 진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듣고 격노해서, 게으르다고 책망하며, 선민을 강하게"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만일 선민이 바로의 감정적 공격에, 모세의 교훈을 받아 더욱 하나 되어 합력했다면, 힘들수록 더 굳게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선민은 바로의 감정적 공격을 받고, 선민도 마음이 크게 상해서, 받은 말씀을 모두 잃어버렸고, 모세와 아론,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서도, 더욱 감정적으로 격하게 항의하며 등을" 돌렸습니다. 예수는 "공생애 시작 전, 40일 금식하고, 광야에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넉넉히" 이겨내셨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해! 성전에서 뛰어내려! 내게 절하면 천하를 다 줄게!" 생각할수록 "오늘 우리도 마음이 동할 정도로 명예와 권력, 물질에 관한 미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귀의 공격에 감정적, 의지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말씀으로 모든 미혹을" 이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마귀의 미혹을 받고, 성경을 펴서 대응하기보다, 오히려 암송하신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모든 공격과 미혹을 이겨내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정말 말씀 외에 달리 방법이 없어서, 말씀으로 마귀의 공격을" 이겼을까요? 주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귀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택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마귀의 감정적, 지적, 관계적 공격을 무엇으로 이겨야 할지를 교훈"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감정과 물질, 자존심과 자녀를 통해 나를 공격"합니다. 이에 "우리는 다시 말씀 앞에 서서, 다시 말씀을 더더욱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딤후서 3: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오늘날 "마귀의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기에, 우리는 다시 덮었던 성경을 펴고, 예배자리를 지키며, 무너져가는 내 신앙을 다시 세워가야!" 합니다. 한주도 "우리가 말씀 붙잡고 마귀의 감정적 세속적 공격을 이겨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