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묵상(11) - 찾으시고 살피시기에.

다솔다윤아빠 2024. 8. 16. 04:41

@ 출애굽기 묵상(11-230528) 찾으시고 살피시기에(4:27~31).

 

주일학교 "교사 세미나에서, 강사가 '하땡이란 말을 아세요?'" 물었습니다. 모두가 "모른다고 하자, 강사가 '하땡'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기독교인 아이들이 식사할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나님 땡큐).' 이 말을 축약해서 '하땡!' 말하고 먹어서 생긴 용어입니다." 문제는 "그나마 '하땡'을 말하고 먹는 아이는 낫고, 대다수가 '하땡!'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늘날 주일학교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예"입니다.

 

세상은 "투자를 하면 이윤을 기대하듯, 은혜를 받으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간다면서, 실제 삶은 '하땡!'조차 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아름답고 신실한 가정과 교회를 원한다면, 받은 사랑과 은혜에 걸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출애굽 전 "선민은 400년 동안 이어진 노예 생활로 인해 소망을 잃고, 절망과 상처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민은 아론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적을 보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민을 찾으시고, 그 고난을 살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찾는다, 파카드는 연약한 자를 향한 강한 자의 적극적인 배려와 사랑"입니다. 또한 "살핀다, 라아는 목동이 양을 보호하고 동행하며 살피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였던 선민을 계속 살피고 보호했지만, 선민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받은 사랑과 은혜에 걸맞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선민이 하나님의 파카드와 라아를 알고 진심으로 경배했다면, 그 삶이 이전과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민은 하나님의 파카드와 라아를 받았지만, 그 삶이 새로워지거나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도 하나님의 파카드와 라아의 은혜로 살아가지만, 이에 걸맞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파카드와 라아를 당연히 여기고, 변화보다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내가 부족하고 세상이 악해도, 나부터 파카드와 라아의 은혜로 변화되면, 우리 미래는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정과 교회가 더 나아지려면, 나부터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에 걸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찾고 살피신 것처럼, 내게도 같은 은혜를 주시는데, 우리가 새로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찾음과 살피심을 은혜를 받았기에, 항상 주시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27절은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 이어, 아론에게도 나타나셔서, '광야에서 모세를 맞아라!'" 말씀합니다. 이에 "아론은 말씀에 즉시 순종해서, 어떤 광야인지 잘 몰랐지만, 광야로 나가서 마침내 모세를" 만났습니다. 이처럼 "아론은 말씀대로 모세를 맞았고, 이스라엘 장로를 모았고, 모세를 통해 받은 말씀을 계속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아론은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에, 하나님의 찾으시고 살피신 은혜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순종이란 단어를 자주 듣지만, 진정한 순종은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실례로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기쁨으로 순종하지만, 반대의 경우, 너무 쉽게 불순종에" 빠집니다. 마침내 "순종의 중요성을 알지만, 내 마음과 내 식대로 순종함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순종을 강조하심은, 하나님 말씀이 항상 옳기 때문"입니다.

 

순종해야 "가장 좋은 길, 바른길이 열리고, 선하고 복된 열매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받은 말씀대로 따라가는 복 받을 순종보다, 내 식대로 순종하여 자기만족에 빠질 때가 더욱" 많습니다. 에디슨이 "축음기 설계도를 기술자에게 건네며, '설계도대로 만들어 달라!'" 청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자가 설계도를 보고 '이대로 기계를 만들어봐야 소용없을 겁니다.'"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이 기술자에게 다시 강하게" 부탁합니다.

 

"이 설계도대로만 기계를 만들어 주게! 기계가 작동되는지는 내 책임이니까!" 여러분은 "이 기술자의 태도와 답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술자는 "에디슨의 요청대로 기계를 만들 뿐, 그 가능성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가타부타,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 평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은 안 돼! 시대에 안 맞고 불가능해!' 순종보다 세상 상식대로 평가하고 거부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확신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론이 모세처럼, '나는 못 해, 안 돼!' 하나님 말씀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요? 본문 30절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말씀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행한 주체가 아론이었다." 말씀합니다.

 

얼마 후 "아론은 10개 재앙 중 3가지, 나일강이 피가 되고, 개구리가 애굽을 뒤덮고, 티끌이 이가 되는 이적까지 주관"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부족해도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적도 행하고, 마침내 가정과 교회도 바꿀 수 있다!" 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부터 더더욱 의심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과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비록 "내 뜻, 상식과 달라도, 바쁘고 분주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순종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순종해야 함을 알면서도, 순종과 멀어지기에, 하나님을 너무 약하고 시시한 하나님, 제한적인 하나님으로 만들고" 맙니다. 기드온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미디안과 전쟁할 때, 300명과 순종해서 크게" 이겼습니다.

 

당시 "기드온은 32,000명이 10,000명으로 줄고, 마침내 300명으로 줄었을 때,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수적으로 "워낙 많은 적군을 보고서, 출정하는 300명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당시 "기드온과 300명 군사는 출정하며 자기 생명이 소중함을 왜 몰랐겠으며, 수많은 적이 왜 부담스럽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기드온과 300명의 승리는, 어떤 지형과 전술로 인한 승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찾으시고 살피시는 은혜에 걸맞게 사역하려면, 먼저 저와 장로, 안수집사와 권사, 구역장과 사역부서장, 찬양 대와 교사 모두 먼저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저력과 잠재력이 크지만, 모이는 순종, 하나 되어 합력하는 순종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모이고 헌신하는가에 따라서, 구역과 사역, 교회와 가정, 내 인생까지도 달라질 것"입니다. 한주도 "하나님의 찾으시고 살피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말씀대로 순종해서 더 큰 열매를 맺으며 승리하기" 원합니다.

 

2. 하나님의 찾음과 살피심의 은혜를 받았기에 항상 동역자와 함께 매사에 합력해야 합니다.

 

400년간 "노예로 살던 선민이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기까지, 모세와 아론의 동역이" 있었습니다. "아론이 모세와 만나 입 맞추니, 모세가 모든 말씀과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 모세와 아론이 가서, 아론이 모세가 이른 모든 말씀과 이적을 행하니!" 이처럼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찾으심과 살피심의 은혜를 받고, 모든 일에 동역"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모세가, 막상 선민의 긍정적 반응을 보고, '내가 하겠다!' 아론보다 앞섰다면" 어땠을까요?

 

만일 "아론이, 자신의 말과 이적을 보고 선민이 마음을 여는 것을 보고서, 이제부터 모세 없이 혼자 하겠다고 나섰다면" 어땠을까요? 선민이 "함께 하나님께 고개 숙여 경배함은, 이처럼 모세와 아론부터 서로 마음을 다해 합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33:1절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선하고 아름다움! 토브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보기에 좋았다!' 이 말에도" 쓰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합력을 원하지만, 현대 교회는 점점 합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가 분쟁과 다툼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버스에서 두 사람이 다투자, 승객이 내리며, '여기가 교회인 줄 알아!'" 소리쳤답니다. 불행히도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인데, 그렇다면, 우리 한 소망 교회는" 어떤가요? 어쩌면 "내가 조금 이해하고, 내가 사과하고, 내가 내려놓으면 되는데, 이를 못할 때가 많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하자, 노아 가족 8명에게 방주를 건조해서 홍수를 준비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8명의 합력으로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 구원받았고, 땅의 모든 동물도" 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기간 방주를 지으며, 노아 가족의 분열 없는 합력에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9장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벌어진 사건을 소개하는데, 이는 노아 가족도 충분히 합력에 실패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합력하여 구원받았다! 도전"합니다.

 

핵심은 "주 안에서 합력은 영생을 선물로 받지만, 합력을 잃으면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교회와 가정이 힘들어"집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찾으심과 살피심의 은혜를 입었다면, 합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합력을 원하시지만, 마귀는 항상 합력을" 깹니다. 따라서 "교회와 내 신앙이 굳건하려면, 항상 나부터 힘을 다해 합력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진심으로 합력하려면, 주안에서 서로를 신뢰해야!" 합니다.

 

당시 "모세와 아론은, 무려 40년 만에 만났지만, 서로 깊이 신뢰했고, 그 결과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출애굽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죄인인 인간은 서로 깊이 신뢰하지 않으면 합력할 수 없고, 합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찾으심과 살피시는 은혜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내 삶, 가정과 교회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합력과 "신뢰는 비례할 수밖에 없고, 신뢰는 가장 큰 공통점을 공유해야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가장 큰 공통점, 예수 믿는 믿음이 있지만, 이를 잃고서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마침내 나뉘고 상처 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믿지 못하고 편파적이면서, 문제의식도 없고, 오히려 잘 믿는다고 착각"합니다. F 후쿠야마는 "'트러스트' 책에서 '현대사회에서 신뢰가 높은 공동체일수록 경쟁력이 높다!'" 말합니다.

 

비록 "외적인 조건이 다 좋아도, 공동체 안에 신뢰도가 낮으면, 제구실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외적 조건은 나빠도, 서로 신뢰하며 합력하는 공동체에 성장과 번영이" 있습니다. 이처럼 "신뢰는 공동체를 강하게 이어주는 접착제와 같고, 신뢰가 깊을수록 주어진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만한 신뢰가 있는지,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내가 죄인이지만,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를 신뢰하시기에, 지금도 내게 말씀과 은혜를 주시고, 지금의 내 삶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남이 먼저 신뢰를 보여주어서 신뢰하기보다, 오히려 내가 먼저 신뢰해야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찾으심과 살피심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예수란 가장 큰 공통점을 붙잡고, 신뢰하며 합력해서, 한주도 교회와 가정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