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묵상(19) - 구원의 은혜가 이어지려면.

다솔다윤아빠 2024. 8. 24. 02:10

@ 금요기도회 출애굽기 묵상(19~240209) - 구원의 은혜가 이어지려면(12:21~28).

 

한국 교회 "최초의 장로교 목사 중 한 분인 이기풍 목사의 아내, 윤 함애 사모가 남긴 간절한 유언이" 있습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라. 5분 이상 예수를 잊지 마라. 열심히 교회 일에 봉사하라. 주의 종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마라." 그런데 "미국의 거부였던 록펠러의 어머니, 엘리자 데이비슨도 유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친 아버지로 섬겨라.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예배시간에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두 분은 "모두 사랑하는 자녀에게, 거룩한 영적 유산을 남기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 예수를 잘 믿어서, 하늘의 복을 자녀에게 계승하기" 원했습니다. 이유는 "살아보니, 물질과 명예, 성공과 세상에서 인정을 받음보다, 믿음이 가장 소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은 예수를 믿으면서, 이처럼 구원의 은혜에 대한 소중함이 그렇게 깊지!" 않습니다. 특히 "나부터 구원의 은혜를 잘 모르기에, 자녀에게 이를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내가 받은 복음이 점점 식어서, 복음의 맥이 끊어지는 지경까지 갈 때도" 많습니다. 본문 24절은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 일은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재앙, 유월절을 제정하여 선민을 구원하신 일"입니다. 무엇보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로, 선민이 선민으로 출발하는 시작이기에, 하나님은 유월절이 대대손손 이어지며 기념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민은 매년 유월절마다 정해진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살려주심, 구원의 은혜를 서로 깊이 나누고 묵상"했습니다. 구원은 "죽어가는 영혼을 끄집어내서 살려내는 것이고, 죽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은 어린 양의 피가 선민을 죄와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물질과 명예, 성공과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다른 무엇보다 구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 보혈로 주신 구원의 은혜, 나를 살려주신 은혜를 우리 자녀에게 전하고 가르치면서, 대대손손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생각할수록 "우리 자녀에게 구원의 은혜가 계승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어요? 유월절 "제정을 묵상하며, 우리 자녀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시다.

 

구원의 은혜가 이어지려면, 우리 삶에 항상 주신 말씀대로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에서 "하나님은 유월절 준비를 위해,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잡아라, 우슬초 묶음으로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라, 아침까지 누구도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또한, "유월절 어린양을 잡고, 그 고기를 무교 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어라. 고기는 날로 먹거나 삶지 말고 반드시 구워서 먹어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 아주 구체적인 말씀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민이 반드시 순종해야 했기에, 이처럼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대로 순종해야, 선민의 장자가 구원받을 수 있었고, 유월절 은혜를 온전히 받아서, 그 능력을 대대손손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당시 선민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일 "선민이 계속 애굽 문화에 동화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반항했다면, 출애굽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주신 말씀 그대로 순종했기에 선민은 구원받았고, 유월절을 통해 선민의 정체성이 정립되었고, 후세대가 선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순종은 "참으로 복되지만, 말씀대로 순종해야, 순종의 능력과 열매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은 자기 상식과 다르면, 순종보다 의심과 거부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내 고집과 상식이 판단 기준이 되고, 순종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내 생각, 내가 배운 모든 것은 온전하지 않기에, 절대로 구원으로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되고, 잘 몰라도, 힘들어도, 말씀대로 순종해야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내 생각과 경험보다 하나님 말씀이 가장 온전하고 옳음을, 말씀만이 나를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나부터 말씀대로 순종해야, 우리 자녀에게 구원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이 내게 주는 교훈을 주의 깊게, 집중해서 잘 경청해야!" 합니다. 이유는 "집중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는 만큼 은혜가 깊어지고, 더욱 복음에 바르게 순종하고, 이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내 고집과 생각, 경험과 상식을 더 중시"합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고기를 구워서 먹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날 것으로, 삶아서 먹으려" 합니다.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어야 하는데, 내 입맛에 맞는 나물을 먹으려" 합니다. 우리 "신앙이 이처럼, 말씀대로 순종하기보다 내 입맛대로 순종이 더" 많습니다. 그렇게 "내 입맛대로 순종하기에,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경적 신앙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오래 믿고,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고집이 더 세고 완고"합니다. 그렇게 "자기 고집대로 믿고 살아가는데, 어떻게 구원의 은혜가 대대손손" 이어지겠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해, 하지 마라.' 하심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구원의 은혜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여러 명이 헤드폰을 쓴 채, 맨 앞사람이 어떤 단어를 보고서, 이를 다음 사람에게 설명하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때 "설명해야 할 단어를 본 첫 사람은 정확한 의미를 알지만, 다음 사람에게 계속 설명이 이어지면서,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마침내 이상한 답이" 나옵니다. 게임에서 "답을 맞히려면, 처음 사람이 바르게 단어의 뜻을 인지하고, 자기 생각을 추가하지 않고 잘 설명해야 하고, 다음 사람도 받은 설명대로 잘 이어가야!" 합니다. 신앙의 "계승은 내가 만든 영적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구원의 은혜가 성경의 가르침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을 명령하심은, 말씀을 받고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면, 그 순종의 시작과 과정, 그 결과까지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성경은 "이미 기록된 말씀에 다른 내용을 첨가하지 말고, 함부로 자기 뜻대로 성경 중 그 어떤 부분도 제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유는 "성경의 교훈은 가감 없이 그대로 순종해야, 구원의 은혜가 능력있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순종하라는 도전"입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님을 통하여 주신 말씀대로 순종해서, 받은 구원의 은혜를 대대손손 우리 자녀에게 이어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2. 구원의 은혜가 이어지려면, 우리 자녀에게 계속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 26절은 "이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말씀합니다. 당시 "유월절 준비과정과 식사 방법이 많이 생소했기에, 후손이 당연히 이를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 "부모는 본문 27절을 꼭 강조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유월절의 은혜를 계속 가르쳐주고 전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의 은혜가 출애굽 선민과 훗날 선민의 후손까지 모두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음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유월절은 절대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자녀에게 계속 가르쳐야 할 복음"이었습니다. 특히 "유월절은 매년 새해를 시작하는 첫 달에 있었기에, 새해마다, 그 의미를 자녀에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가르쳐야 구원의 은혜가 자녀에게 깊이 새겨지고,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우리 자녀를 강하고 지혜롭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의 소중함을 알면서, 자녀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소중한 복음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데, 너무" 게으릅니다. 오히려 "자녀에게 세상 학문과 성공 비결,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치려고" 합니다. 자녀가 "학교 공부를 빼먹으면 크게 책망하지만, 교회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얼마 전 "어떤 기관이 경남지역 초등학교 5~6학년이 하루에 얼마를 공부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초등학생 절반 이상이,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초등학생이 너무 열심히 공부만 하다 보니까, 마음껏 뛰노는 기회, 창의적 생각을 잃게" 됩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부터 이렇게 바쁘니, 주일예배 참석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게다가 "기독교인 부모조차 자녀에게 주일예배 참석을 강조하지 않고, 과거와 달리, 온라인 예배가 유행하며, 복음을 가르치고 구원을 계승함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민 사회도,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점점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는 자녀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구원을 강조함보다, 어떻게 하면 더 성공하고, 더 나은 이력을 쌓아갈지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큽니다. 그렇게 "한국과 이민 사회 모두, 하나님의 교훈과 가르침은 세상 것에 이래저래 밀려나고" 있습니다. 선민은 "자녀를 교육하며, 6:4~9절을 '쉐마 교육'이라고 부르면서, 이를 계속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쉐마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선민은 아이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마다 말씀을 강론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선민이 자녀를 이렇게 키웠지만, 후세대가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쉐마에 비하면, 말씀으로 자녀를 교육함이 턱없이 부족한데, 과연 우리 자녀의 미래가" 어떨까요?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 가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에 "부모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자녀가 말씀을 듣는 자리를 지키도록 계속 강권해야!" 합니다. 어색해도 "자녀와 의도적으로 말씀을 나누려 하고, 함께 기도하며, 영적인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기독교 "절기마다 그 의미와 가치를 나누면서, 구원의 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이제부터라도, 우리 부모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주일부터 시작되는 기도 결연 사역에 모든 어른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로 돕고, 의도적으로 자녀와 복음을 나누면서, 영적인 통로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부모와 자녀가, 서로 진지한 대화를 통해 영적인 통로가 열린다면,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통해서 일하심이 얼마나" 클까요? 영적인 "통로가 열리면, 우리 자녀에게 구원의 은혜가 더욱 강하게 흐를 것이고, 그 은혜가 이어질수록, 은혜가 더 커지지" 않겠어요? 우리가 "계속 자녀와 영적 교류가 깊어지면서, 더욱 힘있게 구원의 은혜가 이어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