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묵상(23) -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세요?

다솔다윤아빠 2024. 8. 24. 02:13

@ 금요기도회 출애굽기 묵상(23~240502) -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세요(14:20~25)?

 

찬송 "96,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믿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임, 잡힌 자의 놓임, 약자의 강함, 맹인의 빛, 병자의 고침, 죽은 자의 부활, 추한 자의 정함, 죽을 자의 생명, 죄인의 중보, 멸망 자의 구원, 온 교회의 머리, 온 세상의 구조, 모든 왕의 왕, 심판 주" 이처럼 "찬송 96장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16개로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다 알 수" 있을까요?

 

다른 "질문을 드리면, 성경이 과연 하나님을 전부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고, 하나님을 가장 많이 알려주고 있지만, 하나님은 성경이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부 다 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갈수록, 우리 신앙과 인생은 더욱 신실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세요? 또한, 얼마나 깊이 알기" 원하세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극적이지만, 상식적으로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적"입니다. 이유는 "상식적으로 인간은 도저히 홍해 사건을 기획하거나 상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홍해에서, 이스라엘과 애굽 군 사이를 흑암과 구름으로 막아주셨고, 밤새 물이 갈라져서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셨고, 홍해로 들어온 애굽 군을 어지럽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위해 끝까지 직접" 싸우셨습니다.

 

그렇게 "선민은 가장 극적인 사건을 직접 체험했지만, 그런데도, 당시 선민이 하나님을 전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선민은 홍해 사건에서 승리하여 엄청나게 감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낙담에" 빠졌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극적으로 체험했지만, 그 체험이 하나님을 전부 안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을 더더욱 깊이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면서, 안타깝게도, 하나님에 관해서 너무도 무지"합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신실한 신앙, 구원받는 신앙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그리고 많이 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전부 알 수 없지만, 본문이 설명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살펴봅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적으로 깊은 간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하나님은 "본문 21절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홍해를 마르게"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 24절에서, 선민이 심히 두려워하던 애굽 군이 홍해에서 어지러워져서 고생"했습니다. 마침내 "그렇게 강력했던 애굽 군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도망"갔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글로 읽지만, 당시 이를 직접 본 선민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렇게 "홍해 사건을 직접 본 선민은, 이 모든 것이 엄청난 간증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느끼도록 큰 간증을" 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항상 큰 간증을 주시지만, 완악한 우리가 이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간증은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믿게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온전히 체험하도록, 내 신앙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서, 강하고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하나님 주시는 간증은 모든 사람이 다 체험할 수 없고 일부만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행전 13장은 "교회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선교 사역에 관해" 말씀합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마가 요한을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선교 사역은,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하고, 선교 열정을 더 뜨겁게 만든 간증이 되었지만, 마가에게는 엄청난 악몽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마가 요한이 "밤빌리아 버가에서 중도 포기했고, 훗날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선교 사역을 시작할 때, 큰 다툼을 제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사건과 장소, 시간을 공유했지만, 바울과 바나바, 마가가 느끼고 체험했던 간증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문제는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간증이 너무도 많지만, 나의 영적 자세와 태도, 말씀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 일에 순종하는 태도에 따라 간증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는 간증이 깊어지려면, 나도 직접 홍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무작정 홍해로 들어가기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홍해로 직접 들어가야 마른 땅을 밟게 되고, 좌우에 물로 된 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간증을 원하면서, 홍해 안으로 들어가는 헌신과 수고, 내 시간과 상황을 포기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자리까지 다가가는 희생을 많이 두려워하고" 주저합니다.

 

최근 "삼성 이재용 회장이 쪽방촌의 극빈 환자를 치료하는 요셉의원에 20년 넘게 후원한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2003"무더위가 한창인 6월 말, 이재용 회장이 후원을 위해 요셉의원을 직접 방문하여 병원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요셉의원 원장인 선우경식 원장이 '쪽방촌이라는 곳을 가보셨나요?'" 물었습니다. 이재용 회장이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아서 가보지 못했다!' 답하고, 선우경식 원장과 함께 쪽방촌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찾아간 쪽방촌에는 술에 취해 잠든 남성, 얼마 전 맹장 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여성, 아이 둘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재용 회장은 작은 신음을 내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너무도 열악한 환경 앞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고" 합니다. 그 후 "이재용 회장은 '그분들을 보고 충격이 커서 지금도 머릿속이 하얗다!'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매달 사비로 일정액의 후원금을 기부했고, 무려 20년이 넘도록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보고 들어서가 아니라, 모든 일에 직접 체험해 봐야, 간증과 배움, 도전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봉사와 "희생은 내가 직접 해 봐야 그 가치를 알고, 이는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말로만 봉사와 선교를 외침보다, 직접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때, 내 신앙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하나님은 "절대로 추상적 이론적인 분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욱 헌신과 수고의 자리, 홍해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는 간증이 깊어지길" 원합니다.

 

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민과 "애굽 군대가 함께 홍해로 들어갔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선민을 살리고 구원하려고 홍해로 이끌었지만, 애굽 군은 심판하려고 홍해로" 이끄셨습니다. 선민에게는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셨지만, 애굽 군은 병거가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습니다. 선민에게는 "보호를 약속하셨지만, 애굽은 도망가야 할 정도로 강하게 심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철저하게 선민의 편에 서서 애굽 군의 반대편이" 되셨습니다.

 

생각할수록 "무려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힘들게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선민의 편을 드셨을 때, 그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 방법으로 선민을 보호하시고, 애굽을 심판하셨을 때, 얼마나 통쾌"했을까요? 이처럼 "죄인인 우리가 악한 세상을 살아갈 때, 내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한다면, 얼마나 감격"할까요? 문제는 "하나님은 항상 주의 백성 편에 서지만, 우리는 이를 모르고,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이미 내 편에 계시지만, 이를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깊이 누릴 수 있는 간증을 놓치고, 마침내 자기 고집과 아집, 자기 의만 남게" 됩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내 편이지만, 이를 내가 온전히 누리고 깨달아야, 진짜 간증이 될 수" 있습니다. 행전 12장에서 "헤롯 아그립바 2세가 야고보에 이어 베드로마저 죽이려" 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철저하게 베드로 편이 되셔서, 그를 보호하고"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 편에 서서, 쇠사슬을 풀어주셨고,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당시 "이 일로, 헤롯 아그립바 2세가 파수꾼을 죽일 정도로 분노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베드로 편에" 서셨습니다. 마침내 "베드로의 출옥은 초대교회 성도 모두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엄청난 간증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 영적인 승리는 베드로의 의로움과 신실함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베드로 편에 서셨기에 가능했던 간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께서 내 편임을 깊이 체험하려면, 나부터 먼저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선민이 "애굽을 대적하고 하나님 편에 섰기에, 목숨을 걸고 홍해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선민 "모두가 하나님 편에 섰기에, 한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끄는 대로 따라" 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 편임을 체험하려면, 나도 한결같이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항상 내 편에 서 주시는데도, 내가 하나님 편에 서지를" 않습니다.

 

심지어 "뻔뻔하게도, 나는 하나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합니다. 게다가 "자기 허물은 생각지 않고,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라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 기뻐하는 일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과거 "일본과 국가 대항 경기를 하면, 많은 분이 '한국이 이기게 해 달라!'" 기도합니다. 문제는 "일본 기독교인도 똑같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도대체 누구를 이기게 해 주셔야!" 합니까?

 

미국은 "1861~1865, 남북전쟁을 통해, 무려 103만의 부상자가 생기고, 62만 명가량의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전쟁 중 "16대 대통령 링컨이 이끄는 북군이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에게 계속 패전하자, 북군 참모들이 불평이" 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닙니다. 남군의 편인가 봅니다." 그때 "링컨이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내 편에 서는지 잘" 압니다. 문제는 "내가 잘 아는데, 나부터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살아가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고 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서는 인생과 반대편에 서는 인생 모두에게, 이에 상응하는 칭찬과 책망을" 하십니다. 이왕이면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칭찬을 들으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바라기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