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모음/이재철 목사 성숙자 반

성숙자반(08) - 성령의 은사.

다솔다윤아빠 2024. 9. 3. 00:13

이재철 목사 성숙자반(08) 성령의 은사

 

1.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 은사는 "'친절 또는 호의를 베푼다. 만족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친절과 호의가 은사"이다.

-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이기적, 독선적일 수 없고, 호의와 친절을 베풀며 만족을 줄 수밖에" 없다.

- 은사의 사람은 "하나님께 거저 받은 것을 또 누군가에게 거저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간다.

- 현대 교회 "분열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성령의 은사를 그릇되게 해석함에" 있다.

- 이에 "성령의 은사에 관련하여 주의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은사는 "선물이기에, 선물은 아무나, 모두가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누군가 "은사를 받음은 성령님 보시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기에 우리는 그를 존중해야!" 한다.

- 은사를 "받은 사람도 받지 못한 사람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받은 은사를 나누고, 헌신해야!" 한다.

- 은사를 "받고 문제를 일으킴은 자신이 무엇인가 잘나고 탁월하여 받았다는 착각이 있기 때문"이다.

 

은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임을 명심해야!" 한다(고전 12:4~6).

- 여기서 "여러 가지란 말의 원어는 뿌리가 같다, 뿌리는 같은 데 모양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 그러므로 "은사의 뿌리는 성령님이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맞는 다양한 형태의 은사를" 주신다.

 

은사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역사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 다양한 "모양으로 드러나는 은사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 선물에 "주는 사람의 인격이 배어 있듯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는 성령의 은사가 배어나야!" 한다.

-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더 겸손하고, 더 이타적이고, 더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유익하게 하시기 위함에" 있다.

- 먼저는 "은사를 받는 사람도 유익하게 되고, 나아가서 주변의 모든 사람도 유익을 얻게" 된다.

- 그러므로 "누군가 은사를 받았다면 본인과 주변, 속한 교회가 평화로워야!" 한다.

- 그러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성령의 은사가 될 수" 없다.

- 또한 "은사를 받았다면 계속 첫 체험과 감격에 머물러 있고자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며, 덕을 끼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으로 성장해가야!" 한다.

 

은사는 "내가 아닌 성령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여 성도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 누군가에게 "은사를 어떻게 언제, 어디서 부여함은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의 소관에" 있다.

- 인간이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인위적으로 움직인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2. 은사의 구분

- 일반적으로 "은사는 내적 은사와 외적 은사로 구분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적으로 주시는 은사는, 내가 이를 받아도 주위 사람이 인식하기가" 어렵다.

- 어떤 경우 "본인도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외부로 배어 나오게" 된다.

- 그러나 "외적 은사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서, 어떤 경우 대단히 화려해 보일 수도" 있다.

- 그러므로 "내적 은사와 외적 은사가 모두 귀한데, 이에 관해 유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내적 은사는 "모두의 유익을 위해 사모하고 간구하는 자에게 주어지지만, 외적 은사는 하나님의 필요와 뜻에 따라서" 주어진다.

- 내적 은사는 "생필품처럼 꼭 필요하지만, 외적 은사는 장식품 같아서 굳이 없어도 무관"하다.

 

일반적으로 "성령의 은사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외적인 은사에서" 드러난다.

- 내적 "은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거의 없지만, 문제는 과시욕에 빠져 구하는 외적 은사에서 발생"한다.

- 대표적으로 "행전 8장에서 마술사 시몬이 외적 은사를 구하여 저주를 받기도" 하였다.

- 외적 "은사의 위험함은 성령의 은사를 자기 소유욕으로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오용하기 때문"이다.

 

외적 은사는 "반드시 내적 은사로 승화되어야!" 한다.

- 이는 "외적 은사를 나 위주가 아니라, 모두의 유익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3.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내적인 은사(고전 12:8-10).

 

지혜의 말씀에서 "지혜는 하나님 말씀으로 자기 인생을 건져 올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 이는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적용하는 은사를 말하며, 성도라면 꼭 사모해야 할 은사"이다.

- 많은 신앙인이 "인생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당장 무슨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지" 모른다.

- 비록 "말씀을 많이 읽어도 그것을 삶의 현장에서 적용할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은 성령께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또 생각나고 깨닫게 하시는 은혜"이다.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은사"이다.

- 모든 "말과 글에, 외시(外視) 의미와 함축 의미가 있듯이, 성경에도 마찬가지"이다.

- 성경을 대할 때, "외시 의미뿐 아니라, 함축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나아가서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해당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 말씀을 "깊이 해석할수록 믿음이 깊어지기에, 바른 해석을 위해 우리 지각이 꼭 필요"하다.

- 그러므로 "지식의 말씀을 가지려면 인간의 이성과 지성, 오성(悟性)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믿음 역시 "성령 하나님의 선물, 은사"이다.

- 믿음은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가질 수" 있다.

-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는 신실, 충성으로 믿음과 신실, 충성이 나뉘지 않고" 쓰인다.

- 그러므로 "'믿는 대로 구하면 다 받으리라!'라는 말은 '신실하게 구하면 다 받으리라!'라고 풀어야!" 한다.

 

4.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외적 은사(고전 12:9-10)

 

병 고치는 은사가 있다.

- 신앙인은 "신유(神癒)의 은사가 절대로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병원과 의술을 주시기 전에 강하게" 나타났다.

-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지 않으시면 나는 신앙의 실패자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 생각해보면, "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가시고, 겸손하게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많은 사역 중 병 고치는 은사에 관하여 자필로 기록하지" 않았다.

- 마침내 "병을 고치는 은사 역시 내적인 은사로 승화되어야!" 한다.

- 실례로 "우리는 병든 영혼의 육체를 위해 기도하지만, 그 영혼이 영적으로 강건해져서, 병의 치유 결과와 무관하게 자유 하는 기독교인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 신앙인에게 "영적 건강의 시금석은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죽음의 의미를 알게 하고,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의 관문을 통과했다면, 나는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의 남은 시간을 영원에 접목해 줌도 역시 신유의 은사"이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희한한 마술과 같은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 만일 "누군가 능력을 체험했지만, 성령의 인격이 배어나는 변화가 없다면, 이는 최면술"이다.

- 능력 행함의 은사가 "내적으로 승화되면 끊지 못하던 것을 끊고, 못하던 것을 하게 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 능력 행함의 은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언 역시 "많은 이들이 외적인 은사로 오해하고" 있다.

- 예언 중에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반작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예언도" 있다.

- 특히 "점쟁이처럼 예언 기도에 몰두하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 예수는 "한 번도 족집게식으로 예언을 하신 적이 없고, 다만 삶의 방향과 틀을 제공해 주셨을 뿐"이다.

- 이처럼 "인간이 점쟁이처럼 예언에만 의존하면, 인간의 자율적인 삶이 실종될 수 있기에" 위험하다.

- 예언은 "미리 말하는 예언(豫言)이 아니라, 무언가에 참여하는 예언(預言)이라 할 수" 있다.

- 구약의 "예언자는 점쟁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맡은 사역자로" 나타난다.

- 그러므로 "예언자는 말씀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해석해 주는 사역을 감당"한다.

- 마침내 "예언의 은사도 역시 내적인 은사로 승화되어야!" 한다.

 

영들 분별의 은사도 있다.

- 과거 "초대교회에서는 누구 말이 참이고, 누구 말이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 그러나 "오늘날 영들 분별의 정확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

- 우리가 입어야 할 "전신갑주 중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의 검을 지닌 영혼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거짓된 영을 분별하고 격퇴할 수" 있다.

- 말씀에 근거하여서 "현대 신앙인이 경계해야 할 모습은 다음과" 같다.

 

회개를 말하지 않는다.

역으로 심판과 회개만 강조하여 말한다.

사랑과 용서만 강조하는 것도 역시 문제이다.

기도만 하게 하고, 찬양만 하게 하는 것도 바르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말하지 않고 복과 권리만 강조한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성령님과 무관한 것이다.

 

방언도 역시 외적인 은사이다.

- 일반적으로 "방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몇 단어 되지 않고, 같은 단어들이 계속 반복"된다.

-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 오래 해도 성령과의 교감으로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 방언의 특징은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 그래서 "많은 이들이 방언을 사모하지만, 잘못하면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되고, 방언 받지 못한 자를 마치 열등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교만에 휩싸일 수" 있다.

- 바울은 "방언에 대하여,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외적 은사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내적인 은사로 승화시켜야 함을 강조"한다.

- 여기서 "방언을 통한 내적 승화는 평소 말이 통하지 않던 사람과 말이 통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 이처럼 "내적 은사로 승화된 방언은 결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방언을 "통역하는 외적 은사도 있는데, 문제는 그 통역이 맞는지 틀린지 누구도 알 수 없음에" 있다.

- 통역은 "단순하게 방언을 풀이해 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 오히려 "말이 통하지 않던 사람과 말이 통하게 되어, 제삼자가 알아듣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 예컨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통하는 것도 일종의 통역 은사라고 할 수" 있다.

 

5. 결론

 

모든 은사는 "내적인 은사로 승화되어야 모두에게 유익으로 나타나게" 된다.

모든 은사는 "X의 수준을 구현하기 위한 성령의 선물로, 모두에게 더 큰 유익이 드러나야!" 한다.

세상에 "속박당하지 않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은사는 영생"이다.

- 영생을 "토대로 살아갈 때만 바르게 살다가 깨끗하게 이 땅에서 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서는 "퇴장은 등장이라고 했는데, 이는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는 퇴장은 퇴장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자체로 재등장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신앙인이 이 땅을 어떤 토대 위에서 어떻게 퇴장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 이유는 "퇴장했던 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