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설교/성경 인물 탐구

요압.

다솔다윤아빠 2024. 9. 5. 03:32

@ 성경 인물 연구(25-210623) 요압(권력에 집착이 강했던 장군) @

 

1. 인적 사항

 

1) 요압의 이름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 여호와는 아버지 되심"이라는 뜻이다.

 

2) 요압은 "다윗의 이복 누이 스루야의 맏아들이기에, 다윗의 조카"이다(삼하 2:18).

삼하 2:18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 노루 같이 빠르더라.

- 스루야는 "상처 입은 자란 뜻이고, 이새가 다윗의 어머니(성경에서 정확하게 다윗 어머니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음) 전에 나하스란 여인을 통해 낳은 딸로, 자매로 아바가일이" 있었다.

 

3) 요압은 "형제로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다(대상 2:16).

대상 2:16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

-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이자 훗날 압살롬 반란 때 충실하게 다윗 곁을 지켰고,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었고, 그 이름은 '선물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 아사헬은 "다윗의 용사 30인 중 하나로 용맹한 장수였고, 사울 가문과 전쟁 중 아브넬을 쫓다가" 사망했다.

 

4) 요압은 "다윗 왕의 군대장관"이었다(삼하 8:16, 대상 11:6).

삼하 8: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 다윗 시대는 "여전히 이방 국가와의 전쟁이 많았기에, 용맹한 군사 지휘관이 많이" 필요했다.

- 당시 "군대 장관은 이스라엘 12지파의 모든 군대를 통솔하는 군권을 가진 지휘관을" 의미한다.

- 요압은 "군대 장관에 대한 애착이 컸는데, 훗날 다윗의 또 다른 이복 누이 아비가일의 아들이었던 아마사(족보를 보면, 요압과 사촌 관계)가 군대 장관이 되자, 이를 시기하여, 아마사를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2. 시대적 배경

 

1) 요압의 "주된 활동기는 B.C. 1010~970년경으로, 다윗의 도피 시기부터 솔로몬의 즉위에 이르기까지!"이다.

- 이를 보면, "요압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부터,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지"였다.

- 나아가서 "어쩌면 다윗과 가장 많은 전쟁에 출정했기에, 누구보다 다윗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다.

 

2) 요압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커서, 민심 수습과 정치적 안정이 요구될 때, 다양한 사건에" 연루되었다.

- 요압은 "오랫동안 다윗과 동고동락했기에, 다윗이 요압의 죄를 알고도 못 죽일 정도로 권력도" 막강했다.

- 그래서 "요압은 때로 다윗의 견해에 동의하며 뜻을 같이했지만, 압살롬 전쟁과 인구 계수 등에서, 다윗과 뜻을 같이하지 않아서, 다윗과 반대의 행동할 때도" 있었다.

 

3) 요압은 "위대한 이스라엘의 장군이었지만, 많은 혼란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대표적으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이고, 압살롬을 죽이고, 인구 계수를 반대하고, 아도니아를" 추종했다.

- 이처럼 "요압은 많은 일에 연루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이스라엘의 위대한 장군임에는" 분명하다.

 

3. 요압의 주요 생애

 

1) 군대 장관 이전의 요압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다윗과 함께하여" 동역했다(삼상 26:6).

삼상 26: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 삼상 24장에서 "다윗은 자신은 죽이려 하는 사울을 엔게디 광야 굴에서 살려준 적이" 있었다.

- 그리고 "삼상 26장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중 십 황무지에 거할 때, 일어난 일을" 말씀한다.

- 당시 "다윗은 밤에 사울 진영을 기습했고,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울의 물병만 가지고" 왔다.

- 이는 "사울이 자신을 박해했지만,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 그런데 "이처럼 사울에게 쫓기며 생명이 위태로울 때도 요압은 다윗과 동고동락하며" 함께했다.

 

요압이 "아브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다(삼하 2:31).

삼하 2:31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육십 명을 죽였더라.

-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76개월간 통치할 때, 사울의 차남인 이스보셋과 계속 전쟁을" 치렀다.

- 이 전쟁에서 "다윗 쪽은 요압이, 이스보셋 쪽에서는 아브넬이 나서서 2년간 치열한 전쟁을" 계속했다.

- 당시 "두 진영의 전쟁을 '헷갈핫수림(날카로운 칼의 밭)이란 단어를 통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이 치열했고, 이로 인해 다윗 쪽은 아사헬을 비롯하여 20명이 전사하고, 이스보셋 쪽은 320명이" 전사했다.

- 아브넬이 "먼저 휴전을 선포하여 전쟁이 멈추었지만, 전사자를 볼 때, 요압이 승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압이 "전장에서 동생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을" 살해하다(삼하 3:27).

삼하 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 아사헬은 "요압의 둘째 동생으로, 아브넬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 위해서 아브넬을 추격하고 공격하여 죽이려 했지만, 오히려 아브넬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고, 이로 인해 요압은 아브넬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 그래서 "아브넬이 다윗에게 투항하려고 찾아왔을 때, 마침내 다윗 몰래 아브넬을 암살하고" 말았다.

- 학자들은 "그 이유를 동생에 대한 복수로 말하지만,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인 것은 전쟁터였고, 게다가 아브넬은 여러 차례 아사헬에게 쫓아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아사헬이 계속 쫓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이는 틀린 말"이다.

 

요압이 "다윗 몰래 아브넬을 살해하여, 다윗에게 엄청난 비난과 저주를" 받다(삼하 3:28~29).

삼하 3: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 당시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사건은, 다윗에게 엄청난 정치적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 그도 그럴 것이 "다윗이 투항하러 온 장군을, 자기 부하를 시켜서 죽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이에 "다윗은 요압을 책망하고 저주했는데, (1) 요압의 복수는 율법과 맞지 않았고, (2) 이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복수였기에, (3) 다윗과 상의하지 않고, 요압이 독단적으로 벌인 범죄였기 때문"이었다.

 

요압이 "여부스 족속의 성읍을" 점령하다(삼하 5:6, 대상 11:6).

대상 11: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 이는 "다윗의 정복 전쟁 중, 요압이 여부스 성을 점령하는 데, 큰 공을 세웠음을" 말씀한다.

- 여부스 족속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때, 예루살렘 주변 산악에 거주하던 이방 족속중 하나"였다.

- 당시 "여부스 족속은 지형적으로, 산 위에 위치하여서, 다윗과 요압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그런데 "요압이 천해인 요새와 같았던 여부스 족속을 무너뜨렸고, 마침내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2) 군대 장관 이후의 요압

 

군대 장관이 되어 "다윗성을" 중수하다(대상 11:6~8).

대상 11: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성의 나머지는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 요압은 "여부스 족속을 굴복시킨 후, 정복지 주변에 성을 중건해서 요새처럼 만들었고, 이를 다윗에게" 바쳤다.

- 요압의 "이와 같은 헌신으로, 다윗 왕국은 전성기를 누릴 정도로 번창하고" 발전했다.

- 병행 구절 "삼하 5:10절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말씀한다.

 

요압이 "아람 및 암몬과 전쟁을 지휘하여" 승리하다(삼하 10:6~14).

삼하 10:14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 당시 "다윗은 암몬 왕이 죽자, 이를 조문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했지만, 암몬 왕 하눈이 이를" 오해했다.

- 그래서 "다윗이 보낸 사신의 수염 절반을 깎고, 겉옷을 잘라서 엉덩이가 보이는 중동 볼기로 모욕을" 주었다.

- 이로 인해 "암몬 왕은 용병을 사서 다윗과 전쟁을 벌였는데, 요압이 출정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 당시 "요압은 동생 아비새와 함께 출정하여, 서로 돕기로 전략을 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크게" 승리했다.

 

요압이 "다윗의 우리아 살해 음모에" 가담하다(삼하 11:14~17).

삼하 11: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 삼하 11장은 "다윗이 정욕에 눈이 멀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까지 죽이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당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요압 수하에 있었고, 충직하고 용맹스러운 장군으로 명망이" 높았다.

-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요압에게 우리아를 치열한 전쟁터로 보낼 것을 편지로" 명령했다.

- 안타깝게도 "당시 우리아는 자신을 죽이려는 편지를 들고 요압에게 갔고, 마침내 전사하고" 말았다.

- 이처럼 "요압은 다윗의 악행을 잘 알았지만, 이를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묵인하여 우리아를 죽이고" 말았다.

- 밧사베 사건은 "다윗의 악행이 가장 컸지만, 이를 도운 요압의 악행도 적지!" 않았다.

 

요압이 "압살롬의 환궁을" 도왔다.(삼하 14:1~23).

삼하 14: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 압살롬이 "다말을 욕보인 암논을 죽인 후, 그술로 피신 가서 3년이 흘렀는데,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했다.

- 이를 "눈치챈 요압이 계략을 써서 압살롬을 귀국시켰는데, 이는 요압이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하여, 다윗에게 인정받기를 원해서 꾸며낸 계획일 뿐"이었다.

- 이를 통해 "겉으로는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론은 압살롬 반역이" 일어났다.

 

요압이 "압살롬 반역 때, 다윗을 도와서, 압살롬을" 죽였다(삼하 18:1~5, 18:9~15).

삼하 18: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삼하 18: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 삼하 18:5절에서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공동 번역 성경은 이를 '압살롬이 아직 철이 없으니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라!'로 되어" 있다.

- 다윗은 "당시 압살롬 전쟁에 출정하는 군인에게 이 말을 했는데, 이유는 (1)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고, (2) 비록 반역했지만, 여전히 압살롬을 아들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에 "요압의 부하들조차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을 보고 죽이는 것을" 주저했다.

- 그러나 "요압은 삼하 18:14절에서, '나는 지체할 수 없다. 죽이겠다!' 말하고 잔인하게 압살롬을" 죽였다.

- 이는 "분명히 다윗 왕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었고, 얼마 후 압살롬의 죽음을 아파하던 다윗을 압박할 정도로, 당시 요압의 위세와 권세는 참으로" 컸다.

 

다윗의 "인구 조사를" 반대하다(삼하 24:3).

삼하 24:3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 다윗의 인구 조사를 "사무엘하는 하나님께서 진노로 다윗을 치려고 시작한 사건으로 말하고, 역대상은 악한 마귀가 다윗을 미혹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말하고" 있다.

- 당시 "다윗은 하나님께서 전쟁마다 승리하게 하셨지만, 여전히 군사 수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원했다.

- 이에 "요압은 다윗의 과시욕을 반대하면서, 인구 조사를 정면으로 반대하였고,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계수에서 제외한 채, 다윗에게" 보고했다.

- 당시 "인구 조사는 무려 아홉 달 스무날(삼하 24:8)이 걸렸고, 총인구가 유다 지파가 50만이었고, 이스라엘 군사 숫자가 80만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요압이 "다윗의 아들 중, 아도니야를" 지지하다(왕상 1:7).

왕상 1: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 아도니야는 "'여호와는 나의 주'라는 뜻이고, 다윗의 넷째 아들이었고, 반란으로 왕위 즉위식까지" 했다.

- 당시 "아도니야는 압살롬처럼 왕을 상징하는 50명을 자신의 호위병으로 세워서 반역을 공론화"했다.

- 아도니야는 "당시 군부의 실세인 요압과, 종교계의 실세인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영입했다.

- 당시 "요압과 아비아달은 다윗 시대 원로로, 아들 중 최고 연장자 아도니야가 등극할 줄 알고 도왔던 것"이다.

- 요압이 "아도니야를 도운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요압이 "솔로몬의 명으로" 사망하다(왕상 2:29~34).

왕상 2: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 요압은 "다윗이 솔로몬을 세우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제단의 뿔을 잡고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 당시 "요압이 살기 위해 도망가서 제단 뿔을 잡은 스스로 죄인임을 시인하는 행위"였다.

- 당시 "요압은 성전에서 살인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여서, 성전으로 도망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 놀랍게도 "다윗은 요압이 행한 악행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반드시 처단해야 함을" 강조했다.

- 이에 "솔로몬은 공의를 세우기 위해서, 성전에서 요압을 죽이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4. 요압의 성품

 

1) 여부스족은 "물론 아람/암몬 동맹군을 격파한 것을 보면 용감하고 책략이 뛰어난 사람"이다(삼하 10:9~14).

삼하 10:9 요압이 자기와 맞서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선발한 자 중에서 또 엄선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려고 진 치고

- 비록 "요압이 저지른 악행과 문제가 많았지만, 이스라엘 최고의 장수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2) 압살롬의 "귀환을 위해 다윗과 중재에 나섰으나, 압살롬의 왕이 될 가망성이 희박하자 곧 압살롬을 외면할 정도로 처세술에 능하고 약삭빠른 사람"이다(삼하 14:1~33).

- 요압의 특징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돕고 함께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쉽게" 돌아섰다.

- 심지어 "이런 태도가 다윗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다윗과의 관계도 그렇게 원만하지!" 않았다.

 

3) 아사헬!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순한 아브넬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살해할 정도로 잔인하고 비열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삼하 3:22~30).

삼하 1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 당시 "아브넬은 다윗의 환영을 받았고, 귀가 중이었는데, 요압이 몰래 다시 불러와서 죽였던 것"이다.

- 훗날 "아마사를 죽일 때도, 그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 체하다가 죽이는 비열함이" 있었다.

 

4)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 왕을 끝까지 돕고, 비윤리적일지라도 왕의 우리아 살해 음모를 전적으로 도울 만큼 다윗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다(삼하 11:14~17, 18:1~5).

삼하 11:14~15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 다윗에게 "요압은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요압의 전공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5) 다윗왕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쳐 줄일 만큼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이다(삼하 18:5~4).

 

6) 다윗왕의 "인구 계수를 반대하고, 또한 전쟁에서 얻은 노략 물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친 것을 보면, 신앙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다(삼하 24:3).

 

6. 주요 공적

 

1) 요압은 "다윗 시대, 여부스, 에돔, 암몬, 아람 등의 주변 이방 국가를 점령할 때, 큰 공을" 세웠다.

- 학자들은 "다윗에게 요압이 없었으면, 주변 이방 국가 점령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한다.

- 이처럼 "요압은 다윗에게 큰 도움을 준 인물이었지만, 권력욕으로 다윗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 실제로 "오죽했으면, 다윗이 유언으로 '요압을 징계해야 한다!' 솔로몬에게" 말했을까?

 

7. 주요 실수

 

1) 자신의 "명예와 감정에 의해 귀순한 군대 장관 아브넬과 군대 장관 아마사를 무모하게" 죽였다.

 

2) 부하 장수 "우리아를 전장에서 홀로 남겨 두어서 죽게" 하였다.

 

3) 차기 왕권 결정에서 "다윗과 뜻을 달리해서 아도니야를" 지지하였다.

 

8. 요압에 관한 평가 및 교훈

 

1)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서,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장군이자 책략가"였다.

- 오늘 "우리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열정을 요압에게서 배워야!" 한다.

- 그러나 "요압은 권모술수에 능해서, 다윗과 관계가 깨지고" 말았다.

-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수고하되, 정직하게 그리고 끝까지 한결같아야!" 한다.

 

2) 반면에 "요압은 권력욕과 자신의 출세를 추구하다가 불의의 삯으로" 사망하였다.

- 충성과 "헌신은 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방향성인데, 사람은 누구나 나를 위한 권모술수에 빠져서,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 이처럼 "하나님 일은 동기와 과정, 결과까지 모두 선하고, 말씀에 합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3) 요압은 "다윗의 충성스럽고 신실한 우리아를 죽이는 과정에서, 맹목적인 명령에" 순종했다.

- 우리도 "살다 보면, 요압처럼 불합리하고 악한 일을 감당해야 할 때가 생기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영적 순결함을 가지고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을 때, 피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우리는 그럴 때 최선을 다하지 않고, 변명과 핑계로 너무 쉽게 악에 굴복할 때가" 많다.

 

4) 다윗에게 "평생 충성을 다하였던 요압이, 말년에 아도니아를 지지하여 사망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 당시 "요압은 권력의 정점에 있어서, 다윗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 이처럼 "우리는 잘 될 때, 성공하고 번영할 때, 선 줄로 생각할 때, 더 겸손하고 하나님 뜻을 찾아야!" 한다.

 

* 요압의 "삶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 배우고, 도전받고, 새롭게 알게" 되었는가?

- 요압은 "다윗에게 꼭 필요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신앙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패망하고 만 인물"이다.

- 그래서 "요압은 원하는 것을 얻고, 목적을 위해서, 성공과 번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 이를 통해 "하나님은 성공과 번영이 중요하지만, 그 기초가 말씀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공과 번영이어야 함을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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