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설교/성경 인물 탐구

여로보암.

다솔다윤아빠 2024. 9. 5. 03:32

@ 성경 인물 연구(26-210630) 여로보암(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

 

1. 인적 사항

 

1)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의미이다.

- 그 이름을 "분석하면 '많음과 번성함을 뜻하는 라바브''백성을 뜻하는 암'이란 단어의 합성어"이다.

 

2)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다(왕상 11:26).

왕상 11: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 여로보암은 "전통적으로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던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다.

- 솔로몬 시대 "하닷과 르손이 반란을 일으켰었는데, 이들은 이방인 출신으로, 외적인 저항세력"이었다.

- 반면에 "여로보암은 선민으로 하나님 예비하신 혁명을 성공시켜서, 12지파 중 10지파를 다스리게" 되었다.

 

3)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22년간 국가를" 통치했다(왕상 14:20).

왕상 14: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열왕기서는 "여로보암이 비교적 순탄하게 생을 마감한 것처럼 말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 특히 "역대기는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가 깊었고, 남 유다의 아비야와 전쟁에서 패하여 죽었다고" 말한다.

-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 19명의 왕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왕을 표현할 때, '여로보암처럼 악한 길을 걸었다.' 표현하며, 여로보암의 악행이 너무도 컸음을 강조하고" 있다.

 

4)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심복이었고, 모친이 수루아였고, 고향이 스레다"였다(왕상 11:26).

(다시 한번) 왕상 11: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 성경은 "여로보암을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솔로몬의 신하(심복)였음을" 말씀한다.

-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사람의 이름 앞에 그 출신지, 또는 아버지 이름이 주로" 나왔다.

- 그런데 "유독 신하(심복)란 단어를 쓴 이유는 왕상 11:11(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에서, 하나님 징계의 성취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 여로보암의 모친 "수루아는 왕상 11:26 절에만 나오고, 다른 어떤 정보도 없이, 다만 과부였음을" 말한다.

 

5) 여로보암의 "아들로는 아비야와 나답이" 있었다(왕상 14:1, 20).

왕상 14: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왕상 11: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아비야는 "'여호와는 그의 아버지이다.'라는 의미이고, 여로보암 가족 중, 유일하게 하나님께 선한 영혼으로 인정을 받았고(왕상 11:13), 왕족에 맞는 장례 예식, 묘실에 들어가도록 장례 절차가" 진행되었다.

- 나답은 "북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고, 바아사의 반역으로 인해 비참하게" 사망한다.

- 당시 "여로보암 가문에 대한 징계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왕상 14:10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성취되었다.

-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이 걸었던 우상 숭배와 악행을 그대로 계승하며, 심판을" 받았다.

 

2. 여로보암의 시대적 배경.

 

1) 당시 "이스라엘은 큰 변혁을 겪었는데,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

- 당시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각각 새롭게 국가와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노력할 때"였다.

 

2) 외적으로도 "솔로몬의 사후, 주변 이방 국가들이 강성해지면서, 이스라엘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3) 여로보암은 "이처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정치적 역량이 뛰어났지만, 종교적 타락은" 극심했다.

- 그러나 "여로보암은 영적으로 악한 영향력을 끼쳐서, 북이스라엘의 타락에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 이로 인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패망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 실제로 "역사를 보면, 여로보암이 북 왕국을 창건한 시기는 기원전 931년이었고, 패망은 기원전 721년경으로, 북 왕국은 약 200년간" 존속했다.

 

3. 여로보암의 주요 생애

 

1) 등극 이전

 

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동하는 역할을" 감당했다(왕상 11:28).

왕상 11:28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 여기서 "큰 용사는 (1) 강한 힘을 가진 용맹스러운 사람, (2) 부를 소유한 상류 계층의 남성을" 뜻한다.

-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솔로몬이 그 젊은이가 너무도 일 잘하는 것을 보았다.

- 요셉 지파는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뜻하고, 여로보암이 유다 지파 출신의 왕인 솔로몬의 부역을 감당하면서, 유다 지파를 향한 경쟁심과 불만이 더 커졌을 것"이다.

 

훗날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고 받았다(왕상 11:30~32).

왕상 11: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 여기서 "나라가 나뉘거나 나라의 통치권이 새로운 주인에게 옮겨지는 경우를 말할 때, 옷을 찢었는데, 이는 사울이 왕으로 옹립될 때에도(사무엘의 옷을 잡았을 때, 옷이 찢어지고, 왕이 될 것을 예언)" 있었다.

- 하나님은 "아히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12지파 중 10지파를" 주셨다.

- 여기서 "나머지 두 지파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이 둘은 지역적으로 가장 가까웠고, 특히 베냐민 지파는 사사 시대 다른 지파와의 분쟁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유다에 속한 것으로" 표현했다.

 

솔로몬에게 "반역하고 애굽으로" 도피하다(왕상 11:26, 40).

왕상 11: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 왕상 11:26절에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했다는 것은 솔로몬에게 복종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권세를 주장했다는 뜻이며, 나아가서 여로보암이 교만해져서, 솔로몬에게 반역을 획책했음을" 강조한다.

- 왕상 11:40절에서 "애굽 왕 시삭은 기원전 945~924년간 애굽을 통치한 세숀크 1세로 여겨지는데, 그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예루살렘을 침략한 장본인"이었다.

 

북쪽 열 지파의 "요청으로 애굽에서 나와서 이스라엘로" 귀국하다(왕상 12:1~3).

왕상 12: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갔기에, 솔로몬의 사망 소식이 그의 귀국을 유도했을 것"이다.

- 여기서 "학자들은 여로보암이 솔로몬 사망 소식을 듣고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에 와서 솔로몬의 사망 소식을 듣고, 르호보암을 찾아가는 데, 일조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분명한 것은 "여로보암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이 그를 부를 정도로 그는 리더로 인정받고" 있었다.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에게 솔로몬 시대부터 이어진 노역의 완화를" 주장하다(왕상 12:4~15).

왕상 12: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 솔로몬 시대 "국가가 재정적으로 든든해서, 국민은 세금이 아니라, 무려 20년간 이어진 성전 건축 사업과 솔로몬 궁전 건축 사업에 투입되어 고생함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에게 요구한 말, '가볍게 하소서!' 이는 원어로 명령형"이다.

- 이를 통해 "당시 여로보암이 요청한 내용은 상당히 강경했고, 반드시 들어주어야 한다는 강압도" 있었다.

 

북쪽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다(왕상 12:20).

왕상 12: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 안타깝게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어머니가 이방인 암몬 여인 나아마)이 아버지 시대 신하들의 조언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성장한 젊은 층의 조언대로, 여로보암에게 과격하게 말해서, 국가가 갈라지고" 말았다.

- 그렇게 "기원전 931년에, 여로보암이 10지파와 함께 북 이스라엘을" 건국하였다.

- 학자들은 "이처럼 국가 분열의 원인을 (1) 르호보암의 억압 정책, (2) 솔로몬의 우상 숭배, (3) 이스라엘 12지파 간 뿌리 깊은 경쟁과 불화였다고" 분석한다.

 

2) 등극 이후

 

세겜과 브누엘을 "요새화하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다(왕상 12:25~30).

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 12:28~29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왕상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 당시 "세겜은 에브라임 지파에 있었고, 여로보암이 북 왕국의 수도로 정하여 수축하고 정비한 도시"이다.

- 여로보암은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요새화하여 외세의 침입을 막았지만, 예루살렘에 성소가 있어서, 성전을 방문하는 북 왕국 백성의 마음이 변할 수 있음을 예견하고,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 방문을" 두려워했다.

- 그래서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서, 하나는 벧엘에, 또 다른 하나는 단에 세우고, 섬기게" 하였다.

- 그러나 "여로보암의 이런 처사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해서, 마침내 국가 전체가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말았다.

- 이처럼 "두 금송아지가 죄가 된 이유는 (1) 율법의 제2계명(우상을 만들지 말라!)을 어겼고, (2)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소를 무시했고, (3) 선민 공동체를 영적으로 나누었고, (4) 불법적인 제사장을 세우고, (5) 하나님께서 정한 절기를 어기고 다른 날에 세워서 제사했고, (6) 마침내 백성의 신앙을 부패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여로보암이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하고, 장막절 날짜를" 변경하다(왕상 12:31~32).

왕상 12:31~32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 유대 달력으로 "715일은, 출애굽 중 광야에서 장막(초막)에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한 장막절"이었다.

-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기 마음대로, 815일로 절기를 정했는데, 이는 북쪽이 남쪽보다 추수가 약 한 달가량 늦어졌기 때문이었지만, 사실은, 여로보암이 종교적으로 남과 북을 나누려 했기 때문"이었다.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재앙을" 선포하다(왕상 14:7~10).

왕상 14: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 여로보암을 "왕으로 예언했던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아팠을 때, 다시 만나게" 된다.

- 당시 "여로보암은 영적 타락으로 아히야 보기를 두려워했기에, 자기 아내를 보내면서 '여로보암의 아내처럼 보이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아히야는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여로보암의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속한 모든 남자 후손들의 멸족을" 예언했다.

 

유다 왕 "아비야와 전쟁에서" 패하다(대하 13:1~20).

대하 13:19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의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들과 여사나와 그 동네들과 에브론과 그 동네들이라

- 당시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북 왕국 군인에게, 전쟁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 그리고 "마침내 남 왕국과 북 왕국의 전쟁에서, 군사력도 열등했고, 전술적인 실패가 있었지만, 남 왕국이 승리했고, 그 이유를 대하 13:18절은,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말씀하며, 승패의 원인을 하나님 의지함의 깊이에서" 찾았다.

- 남 왕국의 "아비야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북 왕국 도시 중 일부를 빼앗아, 남 왕국 영토로" 귀속했다.

 

여로보암이 사망하다(대하 13:20).

대하 13:20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 하나님께서는 "북 왕국 창시자인 여로보암을 많은 죄로 인해 치셨고, 전쟁에서 패하여 사망하고" 말았다.

- 특히 "역대서는 여로보암의 패망을 우상 숭배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결과로 말씀하고" 있다.

- 그렇게 "여로보암은 북 왕국 왕으로 22년을 통치하고, 어쩌면 비참하게 이 땅의 삶을" 마감했다.

 

4. 여로보암의 성격

 

1)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공사의 감독자로 발탁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왕상 11:28).

-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피해 애굽까지 갔고, 그곳에서도 대접받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 왕이 된 후에도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방법이 하나님 뜻과 달라서, 죄에 빠지고" 말았다.

 

2)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 반란을 일으킬 만큼 정치적 야망이 강한 사람"이었다(왕상 11:26~32).

대하 11:29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을 압박할 때, 매우 강경했고, 이로 인해 많은 이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 게다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으로 인해, 하나님의 인정까지 받고, 마침내 북 왕국을 건국하게" 되었다.

- 정치적 야망이 컸고, "생각도 깊어서, 북 왕국과 남 왕국의 교류까지 막을 정도로 집요함도" 컸다.

 

3) 애굽 망명 후 "유다 지파와 솔로몬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목을 충동질하여 정권에 도전할 만큼 계략이 뛰어난 사람"이었다(왕상 12:2~4).

대하 12: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번성했던 솔로몬 시대의 허점을 찾아서 공격할 줄" 알았다.

- 게다가 "솔로몬의 통치도 못마땅하게 여겨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4) 이스라엘 10지파의 "지지를 받고 북 왕국 초대 왕이 되었으니, 정치력, 군사력 지도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5) 등극 후 "성막을 가진 남 왕국으로부터 종교적으로 독립하는 동시에 왕권 강화를 위해 북쪽 지역에 많은 산당과 우상을 만들 만큼, 대담한 인본주의적 인물"이었다(왕상 12:27, 31).

 

6)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책망조차 거부할 만큼 교만한 인물"이었다(왕상 13:1~10).

대하 13: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 생각해 보면,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책망을 두려워했다면, 우상 숭배에 빠져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주권보다, 기존의 정치 세력 규합을 위하여 제사 대상, 제사 장소, 제사 시간까지 바꾸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걸맞지 않게 살아다가, 심판을 받고" 사망했다.

 

5. 주요 실수

 

1)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했다.

 

2) 여로보암은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3) 여로보암은 "후세에 악한 선례를 남김으로, 북 왕국의 멸망을" 초래했다.

- 북 왕국의 "모든 왕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더라! 그만큼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하나님과 멀어졌고, 마침내 신약 시대에 선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천하고 천한 존재로 낙인이 찍혀" 살았다.

 

6. 평가 및 교훈

 

1)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왕상 12:28~29).' 말하며, 자신은 물론 백성들이 이를 경배하게" 했다.

- 여로보암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숭배의 대상과 방법, 시간을 정할 경우, 자기 의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고, 공동체는 물론 자기 신앙생활을 패역하게 이끌어갈 수밖에" 없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완악하고 인간적 방법을 배제하고, 하나님 방법대로 섬겨야!" 한다.

 

2)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인정과 북쪽 10지파의 인정을 받아 왕이 될 만큼 유능했지만, 하나님을" 떠났다.

- 여로보암이 "하나님께 징계받은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이처럼 "인간은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하나님 없이는 하나님 심판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다.

- 여로보암처럼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지만, 하나님을 버리면, 나도 버림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3)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왕권에 대적하여 북 왕국이란 새로운 왕국을 건축하여, 후세에 악한 전통을" 남겼다.

- 신앙은 "생명체이기에, 자라고 깊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의 영적 상황을 확인해서, 자라가야 하고, 혹시라도 비판과 공격을 받으면, 그래도! 말씀 앞에서 바로 서서, 삶의 장애물을 이겨나가는 선한 전통을 세워가야!" 한다.

 

* 여로보암을 통하여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도전받고, 적용해야 할지, 메시지를" 찾았는가?

-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 여로보암처럼 영적 곁길로 빠지지 않고, 영적인 정도를 걷고, 십자가 복음으로 주신 영생을 얻을 수" 있다.

- 항상 "하나님이 제일 먼저, 하나님 최우선주의로 살아가며, 여로보암과 달리 승리하기" 원한다.

 

'주중설교 > 성경 인물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압.  (0) 2024.09.05
압살롬.  (1) 2024.09.05
요나단.  (0) 2024.09.05
사무엘.  (2) 2024.09.05
엘리.  (0) 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