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 특새/2023~2024 헛되지 않으려면(전도서 묵상)

2324 특새(08) -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

다솔다윤아빠 2024. 7. 23. 00:25

@ 2324 특새(08~240104) 헛되지 않으려면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12:9~13)

 

* 존 캘빈은 "제네바의 종교 개혁을 위해 헌신할 때, 너무도 많은 어려움과 고난, 영적 도전에 시달려야!" 했다.

- 개혁 중 "핍박과 박해가 극심했고, 사람들의 배신, 신학적 이견으로 인한 치열한 싸움도 적지!" 않았다.

- 그러나 "캘빈은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순간까지 롬 8:18 절을 붙들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캘빈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 땅의 고난보다 천국에 대한 소망, 구원의 확신으로 이를 모두 이겨냈던 것"이다.

 

* 오늘 "우리의 문제는 신앙이 있고, 섬길 교회도 있고, 동역자도 있고, 과거 그 어떤 시대보다 영적으로 깊어짐을 돕는 첨단 도구들이 많지만, 너무 자주, 작고 사소한 일에 신앙이 흔들림에" 있다.

- 불행히도 "캘빈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영혼보다, 흔들리고 넘어지고, 주님을 떠나는 영혼이 적지!" 않다.

- 이유는 "그만큼 우리 신앙이 굳건하지 못하고, 반석 위가 아니라 모래 위에 지은 신앙이기 때문일 것"이다.

- 솔로몬은 "본문 11절에서, 하나님 말씀을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으로 비유하여, 교훈하고" 있다.

 

* 여기서 "잘 박힌 못은, 유대인의 문화에서 비롯된 관용어인데, 유목민은 주거를 위해서 광야에 텐트를" 쳤다.

- 광야이기에 "바람도 많이 불고, 짐승의 공격도 있어서, 못을 깊이 제대로 박아야 안전할 수" 있었다.

- 생각해 보면, "못이 잘 박힌 텐트는 든든했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주님도 "산상수훈을 마치시며, 우리 삶이 반석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 생각할수록 "세상도 악하고, 마귀의 공격도 극심한데, 내 신앙마저 흔들리고 연약하면, 이는 비극일 것"이다.

 

* 실제로 "평생 예수 믿는다고 교회는 다녔는데,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이 아니면, 얼마나" 헛될까?

-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흔들리는 못과 같이 오락가락하는 신앙에 구원이" 있을까?

- 문제는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영적 전쟁이" 치열하다.

- 분명한 것은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을 잃으면, 내 삶과 가정, 교회는 헛되게 될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이제 2024년을 맞이했는데, 잘 박힌 못과 같이 든든한 신앙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

 

* 솔로몬은 "본문 9~10절에서, 본인을 지혜자로 소개하며, 지혜를 가르치기 위한 노력을 이렇게" 고백한다.

- "(자신은) 지혜자로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고,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했고, 진리의 말씀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다."

- 이를 보면, "솔로몬의 잠언과 전도서, 아가서 등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 솔로몬은 "말씀을 가르치고 기록하기 위해서,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며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다.

 

* 그렇게 "솔로몬부터, 지혜를 얻고자 끊임없이 말씀을 배워갔기에, 백성에게 지혜를 가르칠 수" 있었다.

- 그렇게 "솔로몬이 먼저 잘 박힌 못처럼 든든하고 굳건했기에, 여전히 백성에게 지혜를 가르칠 수" 있었다.

-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을 사모한다면, 말씀을 가르치는 자도, 말씀을 배우는 자도, 그 노력과 수고가 일시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야 함을" 도전하신다.

 

*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말씀의 소중함을 알면서, 다양한 핑계로 말씀을 배우는 자리를 회피"한다.

- "바빠서요! 배워도 금방 잊어버려서요,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죠! 저는 옛날에 많이 배워서 괜찮아요!"

- 문제는 "그렇게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내 믿음은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고, 더는 발전할 수" 없다.

- 과거에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았어도, 지금 배우지 않으면, 내 신앙은 흔들리는 못처럼 될 수밖에" 없다.

- 무엇보다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의 믿음보다, 바로 지금, 이 시간 내 믿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심을" 아는가?

 

* 말씀은 "너무 깊고 오묘해서, 과거에 배운 것이 절대로 전부일 수 없고, 지금도 항상 말씀을 사모하며 배워가려고 노력하면, 내가 깨닫지 못한 수많은 지혜와 도전을 줄 수 있는 영적인 보고"이다.

- 그런데 "계속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로 말씀 배움을 거부하는데, 어떻게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이" 가능할까?

- 사무엘은 "삼상 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선민에게 자기 결단을" 고백했다.

 

* 사무엘이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다! 이는 끝까지 말씀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서겠다는 결단"이었다.

-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배우고, 말씀 앞에 서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류하는 삶을 이어가겠다는 결단"이었다.

- 두렵지만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했는데, 말씀을 배우는 것을 쉬는 것도 죄가 됨을" 아는가?

- 우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하루에 세 끼, 두 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야, 건강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 기독교인은 "하나님 말씀이 영의 양식임을 알면서, 이상하게, 말씀을 먹지 않고도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

- 이유는 "자신이 말씀과 멀어지면서, 죽어가는지, 천국과 멀어지는지, 약해지는지조차 잘 모르기 때문"이다.

- 강조하지만, "말씀을 끊임없이 배워야 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이는 생사의 문제"이다.

- 구체적으로 "말씀을 끊임없이 배우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주신 예배를 사모함으로 드려야!" 한다.

- 이유는 "예배 중, 언제나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고, 해석되고, 내 삶에 필요한 적용을 주기 때문"이다.

 

* 또한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석하여, 배우고 묵상하며 자라가야!" 한다.

- 이민자의 "삶이 바쁘고 분주해서, 매일 교회에서 살 수 없지만, 교회의 정기 예배와 성경공부만 잘 참석해도, 말씀과 접점이 늘어나고, 성령님의 교훈과 가르침이 있고, 마침내 내 신앙은 점점 더 든든해질 수" 있다.

- 그렇게 "말씀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시간, 주어진 시간, 주어진 기회만 사모함으로 붙잡아도 문제" 없다.

 

* 딤후서 3: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한다.

- 분명한 것은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 말씀, 성경 붙잡고 살아가는 영혼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 할 수 있는 대로 "끊임없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고 연구하는 자의 삶이 절대로 헛될 수" 없다.

- 2024"끊임없이 말씀 붙잡고 살아서 내 삶이 헛되지 않고, 내 지경과 장막 터가 더욱 넓어지기!" 원한다.

 

2. 잘 박힌 못과 같은 신앙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 많은 사람이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비관적인 관점, 염세적 관점이 강하다고 단정할 때가" 많다.

- 그러나 "솔로몬은 본문 13절 말씀, 이 내용을 결론으로 도출하고 싶어서 그렇게 다양한 표현을 썼던 것"이다.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 헛되지 "않으려면, 잘 박힌 못처럼 살아가려면, 전도서 결론으로 두 가지 동사를 강조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라!' 다른 하나는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 강조하고" 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인데, 솔로몬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래야 그 명령을 지킬 수 있다!'" 말한다.

-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 명령을 삶에서 지키며 살 수" 있겠는가?

-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 오히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내 구주와 주인으로, 천지의 창조주로 믿고 존중하고 높이라는 뜻"이다.

- 하나님만이 "이 땅에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시고, 훗날 천국까지 인도하실 유일한 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아는 영혼만, 기독교인만이 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다.

-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혼만이, 그 명령을 지키며, 헛되지 않고, 잘 박힌 못처럼 살아갈 수" 있다.

- 심지어 "솔로몬은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삶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정의한다.

-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삶이 어떻게 헛됨에 빠질 수" 있겠는가?

 

* 선민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여리고를 정탐하고, 그때 만난 라합과 그 가족을 살려주기로" 한다.

- 당시 "라합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민을 이끄심을 보고 들은 후, 2:11 절에서, 하나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 라합은 "기생이고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고자!" 했다.

 

* 그 결과 "라합은 여리고에서 생존할 수 있었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조상으로 그 이름을" 올렸다.

- 만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면, 헛된 삶에 묻혀 그냥 사라질 여인이, 복된 여인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 이를 보면 "지금 내가 가진 물질의 양이나, 직분이나 오래 믿은 연수보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가, 얼마나 그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가로' 내 신앙생활의 깊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 실제로 "누구도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 이를 측정하고 판단해서 정죄할 자격이" 없다.

-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깊이는, 내가 하나님 명령을 얼마나 지키며 살아가는가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 부족해도 "내가 말씀대로 사랑과 용서로 살아간다면, 겸손함으로 낮아지면,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 말씀대로 "봉사와 헌신, 억울해도 믿음을 지킨다면, 예배를 소중히 여긴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을 인간의 본분이라고" 말씀한다.

 

* 본분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 비록 "말은 그럴듯해서 잘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 믿고 직분이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아감이 아니고, 흔들리는 못과 같아서, 그 삶이 헛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삼상 2:30절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말한다.

 

* 2024년이 "시작되었는데, 격한 표현이지만, 우리가 모두 사람답게,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 첫날 "헛되다. 헤벨은 '실체가 없음, 허무함, 덧없음, 결과가 없음'을 뜻한다고" 말씀드렸다.

- 세상 "누구도 한 번뿐 인생이 헛되어 실체도 없고, 허무하고, 덧없고, 결과 없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기에, 이제부터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며 내 본분을 다하면" 된다.

-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2024,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서, 잘 박힌 못처럼 든든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