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새/2024 잠묵사(잠언을 묵상하는 사순절)

2024 사순절 잠묵사(25) - 우리가 피해야 할 사람(02).

다솔다윤아빠 2024. 8. 21. 23:02

@ 2024년 사순절 특새(25-230313) 우리가 피해야 할 사람(02-20:19~23).

 

* 현대인의 "일상을 보면 먹거리/화장품/생활용품/가구/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학물질로 가득 채워져" 있다.

- 화학물질이 "해로운 줄은 알지만, 오늘 우리는 어떻게, 왜 해로운지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 그런데 "지난 2017년 로랑 슈발리에가 '우리는 어떻게 화학물질에 중독되는가?'란 책에서, '화학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독성이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지 설명하며, 건강해지려면 자연에서 생필품을 찾아야 한다!'" 강조했다.

 

* 이를 보면, "우리 삶에서, 건강과 평안을 위해서, 알게 모르게, 피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 문제는 "건강을 위해 화학물질을 피해야 하듯, 내 영적/심적 건강을 위해서 피해야 할 사람, 관계도" 있다.

- 이유는 "인간은 타인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있지만, 타인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절대로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이에 "우리는 내 생각과 세속적 기준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해서 피해야 할 사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렇게 "피해야 할 사람과 좀 더 멀어지고 신실한 사람과 친밀해진다면, 내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19절은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말한다.

- 솔로몬은 "선하고 신실한 자와 사귀고, 악하고 패역한 자를 멀리하고 사귀지 말라고" 경고한다.

- 이유는 "죄와 악함이 쉽게 감염되고, 처음에는 작게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내 삶을 크게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 솔로몬도 "처음에는 신실했지만, 노년에 이방 여인을 사귀면서, 그 삶이 타락의 길을 가고" 말았다.

-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귀어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고, 국가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경이 경고하는 내용, 사귀지 말라는 사람의 유형을 바로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 무엇보다 "나부터 사귀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사귀어야 할 사람, 환영받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 그렇게 "나부터 사귀어야 할 사람이 될 때, 내 삶과 자녀, 교회와 가정이 더욱 굳건해지지!" 않을까?

- 어제 "우리는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험담하는 사람과 저주하는 사람을 피해야 한다고" 묵상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이 외에도, 어떤 유형의 사람을 피해야 내 삶이 복될지, 살펴보기" 원한다.

 

우리는 자신이 직접 심판하고 결정하려는 사람을 피해야 한다.

 

* 본문 22절은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말씀한다.

-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타인의 악행으로 힘들고 어려워지면, 자신이 당한 악을 직접 갚으려는 본능이" 있다.

- 여기서 "갚겠다. 아솰레마는 '완성하다. 성취하다.'란 뜻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 이는 "내가 당한 불합리와 공격을 직접 갚아서, 상대방도 똑같은 상황이 되길 원하는 마음이 있음을" 뜻한다.

- 문제는 "내가 직접 심판하려 한다면, 그 기준과 심판 방법, 그 결과까지 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 불행히도 "사람은 누구도 매사에 공의롭고 정의롭게 판단할 자격과 능력이 없고, 항상 편중될 수밖에" 없다.

- 그러므로 "성경은, 비록 악함과 어려움을 당해도 직접 나서지 말고, '하나님을 기다리라!'" 말씀한다.

- 여기서 "'여호와를 기다리라!' 이는 악함에 대하여 같은 방법으로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믿음으로 기다리라는 도전"이다.

 

*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아니 더 강하고 힘들게 보복하려 할 때가 더" 많다.

- 두렵지만, "혹자는 '내 눈에 눈물이 나면, 네 눈에는 피눈물이 나야 해!' 악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 문제는 "이처럼 내가 결정하고 판단하여 보복하려는 것이, 실제 삶에서 이루어지기도 어렵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오히려 더욱 큰 불합리와 불공평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 비록 "타인이 행한 악과 공격이 억울하고 힘들지만, 인간의 판단과 보복은 절대로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나는 내 보복과 판단이 옳다고 믿지만, 상대방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이 현실"이다.

- 다윗은 "망명 생활을 하면서 그 고생이 참으로 많았는데, 그러는 중에도, 나발의 가정을 많이" 도와주었다.

- 그런데 "나발은 다윗이 도움을 청하자, 다윗과 그 추종자들을 도망친 노예 취급을 하며, 큰 모욕을" 주었다.

 

* 당시 "다윗은 흥분했고, 나발을 직접 심판하겠다며, 삼상 25:22절에서,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선언하였다.

- 다윗은 "진심으로 나발과 그 가정을 심판할 마음이었는데, 하나님은 아비가일을 통해 이를" 막으셨다.

-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보복을 막으셨고, 하나님 방법대로 나발을 직접 심판"하셨다.

- 만일 "다윗이 나발 가정을 직접 심판해서 몰살했다면, 훗날 다윗에 대한 평가가" 어땠을까?

- 아마도 "'다윗이 잔인하다! 인정사정 안 본다.' 평했을 것이고, 이는 왕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아픔을 직접 보복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직접 보복함을 절대로 선하게 보지!" 않으신다.

- 그러므로 "우리는 어렵고 힘들수록, 내가 나서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맡겨야!" 한다.

-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일하실 때, 내가 당한 악함과 억울함이 가장 선한 방법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나부터, 내가 직접 보복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직접 보복하려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 최근 "영화와 드라마, 방송 콘텐츠를 보면, 많은 내용이 복수와 관련된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 게다가 "복수하는 장면이 통쾌할수록, 그 대리만족이 더 커지고, 시청률도 올라가고, 돈도 더 벌 수" 있다.

- 문제는 "간접적인 복수극은 통쾌하지만, 내가 직접 행하는 복수극은 절대로 선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 더욱 "두려운 것은, 세속적인 복수와 앙갚음은 한 번만 이루어질 수 없고, 항상 계속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 실례로 "내가 복수하면, 더 큰 복수가 오고, 나는 더 강한 복수로 또 복수하고,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진다.

 

* 문제는 "그렇게 직접 복수한다고, 강하게 응징한다고, 내 삶에 무엇이 바뀌고, 내가 무엇을" 얻을까?

- 그래서 "바울도, 12:19절에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말했다.

- 내가 "직접 판단하고 보복하려는 영혼과 가까워지면, 내 마음의 평안과 믿음마저 흔들릴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리며, 직접 보복하는 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지혜로 승리하기" 원한다.

 

2. 우리는 한결같지 않은 사람을 피해야 한다.

 

*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 본문 23절에서 "솔로몬은 저울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무엇이 좋지 않게 보시는지!" 말한다.

- 본문에서 "저울추는 무게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돌로, '에벤'이란 단어가 두 번 반복되고" 있다.

- 솔로몬 때 "혹자는 물건을 살 때와 물건을 팔 때, 사용하는 저울이 달랐다고" 한다.

- 당시 "물건을 살 때는 무거운 저울을 써서 돈을 적게 내고, 팔 때는 가벼운 저울을 써서 돈을 많이" 받았다.

 

* 그러므로 "무게를 정확하게 재야 할 저울이 한결같지 않아서, 오히려 부정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 문제는 "이처럼 한결같지 않음은 저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판단 기준도" 마찬가지이다.

- 우리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 가재는 게 편이다.' 속담을 쓰는데, 이런 속담은 죄인인 인간의 판단 기준이 한결같지 않고,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시간과 호불호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 그렇게 "한결같지 않음으로 잠깐 이득은 볼 수 있지만, 불행히도, 그 이득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한다.

 

* 이유는 "내가 한결같지 않으면, 나도 한결같지 않은 저울로 속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국어사전은 "한결같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똑같다, 여럿이 모두 똑같이 하나와 같다." 말한다.

- 생각해 보면, "여러 사람이 똑같이 하나가 됨은 쉽지 않고, 게다가 이는 그렇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 그러나 "한 사람의 내면과 심령, 그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일에 변함없이 똑같음은 복된 것"이다.

- 이유는 "세상과 모든 사람이 상황과 처지, 시간과 감정에 따라서 너무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 6:9절은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말씀한다.

- 당시 "노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웠고, 완전했고, 매사에 하나님과 동행한 신실한 영혼"이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 심판을 계획하시며, 노아와 그 가족을 살리고 싶으셔서, 방주 건조를" 명하셨다.

- 마침내 "노아는 방주를 짓고, 홍수가 나고, 엄청난 격동의 시기를 가족과 함께 잘" 이겨 냈다.

- 그런데 "그랬던 노아가, 홍수 후 포도나무 농사가 잘 되자,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누워" 잠들었다.

 

* 개인적으로 "성경은 '왜 이처럼 노아의 추태와 탈선을 일부러 기록했을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실제로 "이 이야기가 없어도, 아니, 없어야 노아가 더 돋보이고 신실한 제2의 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무리 신실한 인간도 한결같음을 상실하면 넘어짐을" 경고하셨다.

- 이처럼 "한결같음은 신실함의 표현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덕목임을 기억해야!" 한다.

 

* 그런데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한결같은 기독교인보다, 바뀌고 변질되는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 과거에는 "생명을 다해 봉사하던 분이, 상처받고,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몰라!' 영적 태도가" 변한다.

- 직분이 "있었을 때는 열심히 봉사하지만, 직분을 놓으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 혹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데, 죄송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은 하나님 나라에 갈 시간이 가까이 왔음을 뜻하는데, 오히려 더더욱 한결같음을 회복하고 붙잡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장신대에서 "공부할 때, 가장 까다롭고, 점수를 짜게 주는 분으로 정평이 난 교수가" 있었다.

- 게다가 "이 분은 말이 많이 어눌해서, 수업 중 거의 2/3를 재웠는데, 그런데도, 모두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 이유는 "학자로서 자기 과목에서, 은퇴하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연구하셔서, 매 학기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 여름 "방학이면 에어컨도 잘 안 되는 방에 매일 출근하셔서, 세숫대야에 얼음을 동동 띄워놓고, 언더 셔츠 차림으로 매일 책을 읽으셨고, 많은 교수가 중간에 목회 지를 찾아 나섰지만, 이분은 끝까지 교수로" 헌신했다.

 

* 부족해도 "한결같음은 존경과 인정을 받고, 많은 사람이 사귀기 원하는, 환영받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람을 인정하시고, 그런 영혼과 깊은 사귐의 은혜를" 주신다.

-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태도는 어떠한지, 한결같음이 있는지, 시시때때로 변하는지!" 생각해 보자!

- 사순절인데, "우리가 오락가락하던 신앙생활을 한결같음으로 변화되어서, 사귀고 싶은 사람이 되기" 원한다.